참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우리영화라는게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몇몇장면을 지나, 연산의 정신적 고통과,
광대들을 통한 당시의 여러 풍자적 이야기 까지.
그런데 영화를 보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 정작 궁금한것은, 엉뚱하게도 영화의 제목이 왜 '왕의 남자'일까 하는
점입니다.
'왕의 남자' 가 주는 뉘앙스는 당연히 동성애의 코드입니다.
영화 예고편에서도 이준기의 여장장면을 부각시켜 이런 느낌을 더 강하게 부각시킵니다.
이것은 영화의 제목과 반응해 초반 영화 흥행에 큰 역할을 한것 같습니다.
그러나, 감독이, 작가가, 제작사가, 단순히 정말 흥미만을 위해서 제목을 '왕의 남자'라고 했을까요?
여기서 부터는 순수한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저는 이영화의 제목이 애초에 '왕들의 남자'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왕들의 남자란 바로 장항선씨가 연기한 내시이구요.(극중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는군요)
왜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느냐구요?
극중에서 그(내시)는 반란의 주역 박원종(맞는지 모르겠습니다)으로 부터 거사에 가담 할 것을 권유 받습니다.
그때 그가 한말이 ' 이미 세분의 왕을 모셨습니다...' 입니다.
이말은 이미 그가 예종과 성종을 가까이서 모셨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렇다면 그는 특히 연산의 친부인 성종. 그리고 연산의 생모인 폐비 윤씨의 일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
이라는 얘기입니다.
영화속에서 엄청난 피의 회오리를 가져온 광대극을 기획하고 연출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하시죠?
바로 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상이 가능하군요.
그(장항선)는 성종을 죽을때 까지 보필한 사람입니다.
성종은 장차 이나라의 군주가 될 연산의 아버지이자, 연산의 생모이고 자신의 정실부인인 윤씨를 폐하고 사사한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건 그의 본심이 아니었습니다. 서슬퍼런 대비와, 밤마다 이불 속에서 간드러진 호소를 하는 후궁들,
그리고 명분에 어긋나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굽히지 않던 수많은 원로 대신들...
인간으로선 용납안되는 일이었지만, 왕 이었기에 내렸어야 할 결정의 순간들...
그리고 차마 그 속사정을 아들 연산에게 전하지 못하는 아비로써의 슬픔...
아마도 내시는 곁에서 그의 이런 인간적인 고뇌를 지켜봤을 겁니다.
그래서... 혹, 성종이 숨을 거두기 전, 그 내시에게 이런 말이라도 하지 않았을까요?
'내 연산에게 어미 얘기는 묻지도, 듣지도 말라 했지만... 진실을 전하지 못하고 죽는 것이 저 세상에 가서도
편히 눈을 감지 못할것 같구나...'
연산에게 해괴한 광대놀음을 선보이고... 경극으로 풍자한 윤씨의 죽음의 진실을 알린후...
그는 왕 계신곳에 절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이제 그의 가장 중요한 임무를 마쳤기 때문입니다.
설마 그가 연산이 야단친 일로 그런 죽음을 택한다고 생각진 않으시겠죠?
그리고... 제가 제목속의 왕의 '남자'를 그 환관(장항선) 으로 생각하는 또 하나의 이유...
그것은 그 '남자'가 어쩌면 반어적 표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어쩌면 당시의 조선왕에게, 진정으로 왕이 소유할 수있는 남자는 환관(내시)들 뿐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남자'를 잃는 대신 평생을 왕의 곁에서 왕과 함께 할수있는 권리를 얻은 유일한(남자아닌) 남자들이기때
문이지요.
따라서 제가 생각하는 '왕의 남자' 는 이준기가 연기한 '공길'이 아닌 바로 그 환관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선왕의 유지를 전하기 위해 연산에게 존재했으므로, '왕(들)의 남자' 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왕의 남자' 에서의 왕은 연산이 아닌 성종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 억지스럽다고 탓하지 말아주세요. 그냥 영화를 여러 시각에서 보면 더 재밌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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