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타지 소설의 바이블로 꼽히는 <반지의 제왕>과 <나니아 연대기>는 곧잘 경쟁적인 비교대상이 되곤 했다. 비슷한 시기에 발표되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선구적 텍스트란 의미도 크지만 그만큼 대중적으로도 많이 읽혔다는 반증일 것. 그러나 정작 원작자인 J. R. R. 톨킨과 C. S. 루이스는 37년간 서로를 격려하고 배려한 친구이자 창작을 돕는 동지였다. 톨킨은 유물론에 심취한 루이스를 기독교로 회심시켜 성서와 복음서에 대한 이해력을 싹 틔웠고, 루이스는 유럽의 민담과 설화에 대한 지식을 나누며 톨킨이 <반지의 제왕>을 집필하는데 많은 도움을 줬다. 판타지 문학의 시금석이 된 두 작품 모두 기독교 세계관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정설이지만, 서로의 작품에 유일한 독자와 팬 역할을 자처했던 두 거장의 끈끈한 우정도 커다란 시너지 효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먼저 세상을 떠난 루이스를 회고하는 톨킨의 글을 읽으면 그런 심증은 더욱 확고해진다.
"나는 그에게 갚을 길 없는 큰 빚을 졌다. 그것은 흔히 말하는 영향이 아니라 아낌없는 배려였다. 그는 오랫동안 나의 유일한 청중이었다. 내 글이 개인적인 취미 이상의 작품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오로지 루이스 덕분이다. 그의 끊임없는 관심과 다음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재촉이 없었다면 나는 <반지의 제왕>을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음이 통하는 벗과 치열한 창작의 고뇌까지 함께 나눴던 두 거장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페이지를 뛰쳐나와 스크린 속에 현신한 <반지의 제왕>과 <나니아 연대기>에 대한 엉뚱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과연 영화를 본 두 사람의 반응은 어땠을까? 세상 많이 좋아졌다는 탄식과 함께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루이스에게 표정관리 제대로 안 되는 톨킨이 위로의 인사를 건네고 있지 않았을지, 아무래도 그런 상상을 쉽게 떨칠 수 없다.

이미 전 세계를 정복한 영화 <반지의 제왕>과 비교 대상이 되는 자체가 부담스러운 약점이지만, 영화 <나니아 연대기 -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이하 나니아 연대기)에는 관객들에게 색다른 판타지의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장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탁월한 상상력으로 방대한 허구세계를 창조했던 톨킨과 달리 현실과 판타지의 접점을 만들고 공간과 차원을 뛰어넘는 워프의 재미를 선사한 루이스는 보다 낙천적이고 밝은 색채의 이상세계를 꿈꿨다. 현실에서는 나약하고 비천한 존재지만 자신만의 꿈의 공간에 들어서면 절대자가 될 수도 있다는 설정은 루이스가 창조한 판타지의 가장 달콤한 노른자위다. 그러므로 현실과 나니아의 접점인 옷장은 단순한 ‘통로’ 외에도 ‘일탈’과 ‘성장’의 중요한 키워드 기능을 갖고 있다. 일탈의 욕망과 고향으로의 회귀본능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매개체로서 보다 부각되어야 했을 이슈였던 것. 더구나 1편 <마법사의 조카>를 건너뛰고 곧바로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생략된 여러 에피소드들, 예컨대 위대한 사자 아슬란과 하얀 마녀의 적대 관계 형성이나 나니아를 지배하는 마법 예언의 탄생에 관한 섹션들은 간단하게 생략해서는 안 될 중요한 연결고리와 단서였다. 주인공 4자매가 나니아 세계의 예언을 받아들여야 하는 필연적 이유와 악의 세력에 맞서 대 격돌을 펼쳐야 하는 확고한 명분, 그리고 결국 형제의 우애가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가르치는 근거까지, 영화 <나니아 연대기>의 찬란한 외형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그런 탄탄한 이야기의 짜임새가 필요했지만 연결고리와 단서가 희박한 까닭에 엉성하고 옹색한 모양새가 되 버렸다. 또한 주연으로 발탁된 신인들의 불안정한 연기력까지 더해지면서 극의 내러티브는 원작의 유쾌한 서사를 잃어버린 체 비틀거리고, 후반부를 이끄는 스펙터클의 위력도 현저하게 반감되고 만다. 독특한 원작의 장점을 십분 살리지 못하고 그래픽 기술이 만든 군상과 어설픈 꼬마들의 맥 빠진 영웅놀음이 되버린 <나니아 연대기>. 탄성을 자아내는 CG 만으로는 결코 좋은 영화가 될 수 없음을 미처 몰랐던 것이 분명하다. 번득이는 패러디의 귀재 앤드류 아담슨은 아마도.

원작의 완성도로 감히 우열을 논할 수 없었던 판타지 문학의 양대 바이블이 스크린에 와서 확연한 무게 차이를 보인 이유는 역시 연출력의 역량 차이 때문일 것이다. 위대한 원작과 진보한 영화기술의 교감에 관한 모범 답안이었던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매 평균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무리 없이 아우른 피터 잭슨의 뛰어난 연출력 없이는 불가능한 작품이었다. 굳이 경쟁적인 비교대상을 삼지 않더라도, 많은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할 좋은 영화라면 강약의 리듬과 여러 요소들을 이상적으로 조합한 뚜렷한 결정체여야만 한다. 더구나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을 경쟁상대로 벤치마킹한 디즈니라면 다음 시리즈에 대한 각오가 남달라야 할 것이다. 제작사의 브랜드 이미지와 달러 파워로 단순하게 승부를 냈던 시절과는 차원이 다른 영화 시장이기 때문이다. 세계 각지에서 비범한 실력을 갖춘 자국 영화들과 겨뤄 이기려면 인종과 국경을 초월해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를 품고 있어야 한다. 돈과 기술력만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좋은’ 영화의 가치,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든 우리 영화든 간에 심각하게 고민하고 걱정해야할 문제가 아닐까. 일편 생각하면 치열한 창작의 고통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었던 톨킨과 루이스가 현대의 영화감독들 보다는 행복한 입장이었을 것이다. 인생에서 믿을 수 있는 친구만큼 가치 있는 존재도 드물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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