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가 국내에서 또다시 리메이크 되었다. 바로 동명원작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이하 [세중사])를 리메이크 한 [파랑주의보]다. 이 영화의 화제거리는 두 가지로 압출 될 수 있다. 첫째, 리메이크 작품이라는 점이고 둘째, 브라운관에서 만인의 연인으로 통하는 송혜교의 스크린 데뷔작이라는 점이다.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작품이기 때문에 많은 주목을 받고 있지만, [세중사]와 비교대상이 되면서 크게 다를 것 없다는 밍숭맹숭한 반응을 듣고 있다. 도대체 어떤 정수기를 통하여 대한민국화(!) 되었는지 그 과정에 따른 결과물을 살펴보지 아니 할 수 없겠다.
일단 제목부터 훑고 넘어가자. [세중사]라는 제목이 참 독특하고 참신했듯이, [파랑주의보]라는 제목 역시 뒤지지 않는다. 기상예보에 도가 튼 사람이라면, 2001년 '풍랑주의보'로 명칭이 바뀌기 전까지 사용한 이 전문용어를 특이할 것 없다 하겠지만, 눈에 띄는 제목임에는 틀림없다. 게다가 '파랑'이라는 어감이 너무나도 정감어린 느낌이기 때문에 영화의 분위기가 더욱 물씬 느껴진다.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알겠지만, 영화 속 교복의 색이나 파란 바다와 푸른 하늘까지, 비록 영화의 스토리는 슬픈 멜로영화일지라도 영화의 색깔은 '파랑색'이라고 느낄 것이다. 그러니 제목 한번 멋드러지게 지었다고 할 수 있겠다.
어딘지 모르게 조금은 맹해 보이지만 착하디 착한 수호(차태현 분)와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학교의 대표퀸카 수은(송혜교 분)은 같은 반이다. 수호는 수은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었지만, 수은은 중학교 때부터 쭈욱 수호를 지켜봐 왔었다. 당돌한 캐릭터답게 수은은 고로케를 사달라고 조르며 작업의 정석(!)을 시행에 옮긴다. 그 날 이후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둘은 공식커플이 되버린다. 그리고 그날로 수호는 뭇 남학생들의 시기와 질투를 한몸에 받게 된다. 하물며 친한 친구들에게까지도 말이다. 하지만 바다를 닮은 소년 수호밖에 모르는 수은은 마냥 즐거워한다. 수호도 처음엔 당황했지만, 그런 수은이 싫지않고 마치 자신도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것처럼 사랑을 부풀려 나간다. 영화는 이처럼 [세중사]의 스토리 라인과 별반 차이가 없다. 다만 주목할 점은 조연들에게 비춰진 포인트가 더 와닿는다는 점이다. '웃찾사'의 '행님아'로 열연중인 김신영이 수호의 다른행성(!) 출신 동생으로 분했고, 수호의 친구들 역시 저마다 개성있는 캐릭터이다. 그리고 [세중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조연이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캐릭터가 있다. 바로 손자와 맥주마시기를 좋아하고, 관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시는 수호의 할아버지(이순재 분)다. 액자식 구성으로 삽입되는 수호 할아버지의 짠~한 러브스토리는 수호와 수은 뿐만아니라, 관객들의 눈시울까지 붉어지게 만든다. [세중사]에 비해 수호할아버지의 러브스토리가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파랑주의보]가 더 마음에 든다. 또 지나칠 수 없는 감초가 있는데, 바로 여행간 섬의 민박집 주인 할머니다. 어찌나 청력이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이신지, 투숙객이 중얼거리기만 하면 즉각 서비스에, 'Dog마케팅'은 정말 획기적이었다.
[파랑주의보]는 영상미가 매우 뛰어나다. 마치 곽재용 감독의 영화를 보는 듯 하다. [베사메무쵸]라는 불륜영화를 만들었던 전윤수 감독이 이 영화의 메가폰을 바꿔잡았다길래, 과연 불륜영화와는 상반되는 첫사랑영화의 감성을 잘 잡아낼 수 있을까? 하고 걱정했던게 이 영화에 대한 자그마한 불안감이었는데, 싹 사라졌다. CG까지 동원한 아름다운 영상미가 이 영화의 풋풋한 첫사랑의 감성과 잘 맞아 떨어진 것 같다. 수은과 수호의 애정행각은 소설 속 멘트를 날리거나, 시를 함께 낭독하는 등 둘 다 너무 감성이 풍부한 닭살커플이다. 하지만 이런 간드러지는 두 사람의 첫사랑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보다는, 순수함에 대한 동경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은 영상미가 그 감성을 잘 감싸준 덕분인 듯 하다.
[세중사]의 나가사와 마사미와 [파랑주의보]의 송혜교는 정말 누가봐도 빠져들만한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다. 그렇게 누구나 호감을 갖는 여성에 대해, 조금은 어수룩하고 순한 남성 캐릭터가 함께 사랑을 만들어 나간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원작은 선망의 공감대를 형성한 것 같다. 거꾸로 뒤짚어 보면 최근 신데렐라 코드가 드라마나 영화의 트렌드라는 점과 빗댈 수 있겠다. [파랑주의보]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두 배우가 만든 영화였기 때문에 [세중사]보다 우위에 놓고싶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일본멜로의 나긋나긋하고 늘어지는 분위기를 싫어하는 사람으로서 런닝타임은 짧지만 흡입력있게 알짜배기만 담은 [파랑주의보]를 깔끔하다고 평하고 싶다. 어쩌면 한국정서에 더 걸맞는 영화라고 본다. 그리고 차태현의 고등학생 열연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원작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세중사]의 남자주인공보다 차태현이 오히려 더 캐릭터소화를 잘 해낸게 아닐까? 게다가 김종국과 같은 용띠클럽으로서 어쩜 그렇게 교복이 잘 어울리는지 감탄할 따름이다.
영화의 스토리가 끝자락에 닿으면서 감정적으로 극에 달하는 부분에 명장면을 하나 꼽고 싶다. 바로 시한부 인생을 살게된 수은과 그것을 지켜봐야 하는 수호가 서로 삐삐에 음성을 남기는 장면이다. 수은은 정말 가슴 속 깊이 숨겨둔 진심을 토로하고, 수호는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늘어 놓는다. 그리고는 서로 슬퍼하며 3번(취소버튼)을 누르는 모습에서 영화의 슬픈감정은 최고치로 치솟는다. 그렇게 놓기 싫었고 놓치기 싫었던 그네들은 정말 짧은 순간이었지만 세상이 넘치도록 사랑을 했다. 태풍의 한가운데 별이 떠있을 만큼의 확률로 만난 인연이었지만, 평생 잊지 못할 첫사랑의 아픈 기억으로 그려지는 수은과 수호의 사랑은 현재가 아닌 과거라는 점에서 더욱 애잔함을 가져오는 것 같다. 그 추억은 분홍꽃 언덕에서 느껴지는 감성으로 대변될 것이다.
[파랑주의보]는 자체평가보다 [세중사]와 비교평가하려하기 때문에, 단점을 많이 캐내는 것 같은데,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비교해봤자 [파랑주의보]가 우위이므로 상관없지만, [세중사]가 있기때문에 [파랑주의보]의 재미가 반감되는 것 같아 아쉽다. [파랑주의보]를 독자적인 영화 한편으로 본다면 부담없는 아름다운 멜로영화가 될 것이다. 영화 속 대사를 빌려 짧게 평한다면 [파랑주의보]는 생각보다 재밌지는 않지만, 생각만큼 재밌는 영화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첫사랑을 추억한다. 이 영화는 첫사랑의 아픔을 끄집어 내는 영화가 아니다. 그리고 꼭 첫사랑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는 것이다. 다만 사랑했던 순간과 순수했던 마음이 때로는 힘이 되어준다는 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순수함에 대한 동경은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것이고, 삶에 지치고 현실에 치일 때 순수한 마음이야말로 삶의 용기를 북돋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가장 슬프지만, 천국보다 아름다웠던 사랑이야기! [파랑주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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