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이 영화 <저스트 라이크 헤븐>. 포스터만 봐서는 영락없는 로맨틱 코미디이다. 꽃밭을 배경으로 두 남녀가 누워서 손가락을 접촉하는 모습은, 뭔가 로맨틱한 분위기가 잔뜩 흐르고도 남는다. 물론, 이 영화엔 아리따운 영혼 리즈 위더스푼과 편안한 남자 마크 러팔로의 순수한 사랑이 주된 내용으로 깔려 있기도 하다. 그러나, 마냥 핑크빛 로맨틱 코미디로만 기대한다면 이 영화는 그 강도 면에서는 좀 약할 것이다. 주인공들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도 러닝타임이 좀 짧다보니 설득력이 다소 떨어지는 면도 있고, 그래서 두 사람이 사랑으로 엮어지는 순간도 좀 뜬금없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보면 이 영화를 괜찮게 볼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이 영화를 '로맨스가 주가 되는 코미디'라고 생각하기보다, '로맨스가 곁들여진 코미디 드라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이 영화를 보면, 어쩌면 그 이상의 것을 건질 수 있을 지 모른다. 우리의 두 주인공 엘리자베스(리즈 위더스푼)과 데이비드(마크 러팔로)는 둘 다 인간관계 면에 있어서 많이 결핍되어 있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엘리자베스는 왠종일 병원에서 일에만 집중하는 레지던트라 기타 취미생활이나 인간관계같은 건 신경 쓸 겨를이 전혀 없고, 데이비드는 사랑했던 아내와 사별한 뒤로 사랑에 관해서 너무 소극적으로 변해버린 경우다. 데이비드는 사별의 아픔을 떨쳐버리기 위해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하는데, 그 새로운 집에 뜬금없이 왠 여인이 나타나서 자기 집이라고 우기니 그녀가 바로 엘리자베스다. 엘리자베스는 분명 직장에서 퇴근하고는 아무렇지 않게 집에 왔는데 딴 남자가 떡하니 자리잡고 앉아 있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그런데 머지않아 데이비드는 엘리자베스가 사람이 아닌 영혼이라는 걸 알게 된다. 문제는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이름조차 알쏭달쏭하고, 자기 자신을 제외한 외부와 관련된 어떤 정보도 모두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데이비드는 엘리자베스의 반협박(?)과 더불어 엘리자베스의 정체성을 찾는 것을 도와주러 나서는데,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예상치 못한 진실에 부딪치는데... 일단 이 영화의 매력의 절반은 리즈 위더스푼의 매력이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이전까지 많은 로맨틱 코미디에서 특유의 아기자기하고 귀여우면서 도시적인 매력을 선보여왔던 그녀는 이 영화에서도 역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아리땁고 당찬 모습을 보여주었다. 영혼도 그녀가 역할을 맡으니 마냥 슬프고 조용한 영혼이 아닌, 한없이 잔소리를 늘어놓고 돌아다니기에 바쁜 푼수 영혼이 되니 또 색다른 매력을 발산했다. 그러나 간간히 보여주는 때론 고민에 잠겨 있고, 때론 진지한 사랑의 감정에 망설이는 여인의 모습은 차츰 그녀의 연기가 어른스러워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마침 최근에 미국에서 개봉한 신작 <워크 더 라인>을 통해 내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데, 앞으로의 더욱 성숙한 연기가 기대된다. 리즈 위더스푼보단 국내에서 인지도가 다소 낮지만 남자주인공 데이비드 역의 마크 러팔로도 딱 안성맞춤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가지 없는 것>, <이터널 선샤인> 등 일련의 영화들에서 과묵하고 내성적인 남자 역할을 주로 맡아왔던 그는, 이번 영화에서도 역시나 내성적이어서 쉽게 마음이 다치고 그러면서도 정성을 다하는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로맨틱 코미디에 딱 어울릴 만한 멋진 남성상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외향적이고 활달한 리즈 위더스푼의 캐릭터와, 내성적이지만 정성이 지극한 마크 러팔로의 캐릭터가 잘 어우러져 꽤 어울리는 커플로 완성되지 않았나 싶다. 사실, 이 영화는 처음 설정부터가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두 사람의 사랑의 진행 과정, 사건의 전개에서 현실적이다 비현실적이다를 쉽게 판단하기가 힘들다. 영혼이 다시 자신의 몸으로 어떻게 하면 들어갈 수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경험해 보지도 못했기에 영화 속에서 '이렇게 하면 다시 몸과 영혼이 합쳐질 수 있다'고 하면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영화적이고 억지스럽다고 느껴질지 몰라도 일단 처음 설정(영혼과 인간의 사랑)부터가 영화적이기 때문에 어떻게 세부적으로 딴지를 걸기도 힘들다. 이런 점을 일단 제쳐두면, 이 영화는 꽤나 인간적으로 따뜻한 영화다. 전작인 <퀸카로 살아남는 법>에서 미국 10대 소녀들의 살벌한 경쟁심리를 예리한 통찰력으로 짚어 냈던 마크 워터스 감독은 이번 영화에선 그렇게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면보다는 따사롭고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킨다. 인간 관계 면에 있어서 분명하게 결핍된 부분이 있는 두 남녀가 서로 만나게 되고 교감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결핍된 부분을 메워가는 부분이 꽤 따뜻하게 그려진다. 특히나 영화는 그렇게 인간 관계에 충실함에 있어서 '나중'은 없음을 넌지시 얘기한다. 다만 인간 관계 뿐 아니라 인생의 목표, 문화 생활, 당장의 숙제도 '나중'으로 미룰 수는 없겠지만, 이 영화는 그 중에서도 특히 인간 관계에 대해서만은 나중으로 미루지 마라고 얘기한다. 특히 엘리자베스의 경우에서 두드러진다. 집에 가지도 않고 내리 26시간을 병원에서 일할 만큼 철두철미한 일벌레지만 인생에 있어서 만족감은 단지 그녀의 직업에서만 느낄 뿐 직장을 제외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는 메말라 있기 그지 없다. 오죽하면 남자친구가 있다니까 사람들이 '걔가 설마 그럴리가...'하는 시선을 보낼까. 이웃에 얘기를 해봐도 '그런 여자 모른다'고만 얘기할 뿐이다. 데이비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토록 사랑하던 아내와 사별한 뒤로 그는 좀처럼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를 시작하기를 꺼려한다. 그저 아내를 잃은 슬픔 속에 꿍하니 틀어박혀서는 좀처럼 빠져나오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엘리자베스의 상황을 통해 영화는 '그렇게 외적인 성공을 향해 달리다가 진정한 행복은 언제 챙길래?'하고 묻는다. 영화 속에서도 엘리자베스는 한탄한다. 자신이 영혼이 되었음을 안 뒤에 엘리자베스는 '나중에 행복한 생활을 하려고 열심히 일해왔는데, 그 나중이 오지 않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라고 말한다. 그말이 맞다. 우리는 항상 습관적으로 '나중에 해야지', '나중을 위해서 일단은 아껴둬야지'하고 얘기하는데, 인생이라는 건 그렇게 예측하기가 쉬운 게 아니어서 당장 우리가 얘기하는 나중(내일, 1달 뒤, 10년 뒤...)이 정말 우리에게 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당장 나중이 오리라고 기약할 수도 없는데 그 나중을 위해서 지금은 일단 삶의 즐거움을 아껴두는 것, 그 얼마나 위험한 도박인가 하고 영화는 묻는다. 영화는 그저 나중은 없을 것처럼, 당장 지금 해야 할 것처럼 모든 일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라고 얘기한다. 특히 삶을 더욱 따뜻하고 아름답게 만들 인간 관계, 애정 관계에 있어서 말이다. 어떻게 보면 빨리 사랑을 만들라고 재촉한다고도 볼 수 있어서 한편으로 솔로를 지향하는 이들에게는 상당히 부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살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이라는 말이 있다.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이 정도가 될 것이다. 이 영화 <저스트 라이크 헤븐>은 일단 헐리웃의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모양을 띄고 있지만(사랑 전개 과정이나 고백 장면도 상당히 전형적이다), 조금 다르게 보면 이렇게 삶에 대해서 뭐든지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처럼 하라는 메시지도 담고 있다. 괜히 행복을 아껴뒀다가 죽어서야 '천국'을 경험하지 말고, 지금 실컷 행복을 풀어놓으면서 지금 이 세상을 '마치 천국인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살아보자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본다면, 이 영화는 꽤 괜찮은 헐리웃 코미디다. 물론 어떻게 생각하면서 영화를 볼 지는 여러분 몫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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