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저마다의 사랑을 꿈꾼다. 누구나 아름답고 달콤하고 즐거운 로맨스를 머릿속에 그리며 현실에서의 조우를 고대한다.
사랑을 해본자와 해보지 않은 자의 차이는 경험에 있다. 첫사랑의 풋풋한 순수함은 사랑이 반복될수록 색이 바래고 빛을 잃는다. 처음 사랑에 접근할 때의 순수한 감정은 시간의 필터에 의해 걸러지고 걸러져 결국 현실이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아름답던 기대감으로 출발했던 사랑이 가슴아픈 실망으로 남아 가슴속의 빈잔을 채우기도 한다. 현실에 부딪치며 사랑을 경험한 이들은 사랑을 그만큼 기대하지 않는다.
사랑은 아름답지만 때론 추하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의 틀안에서 자꾸 사랑을 계산하는 법을 배우고 사랑을 색안경쓰고 보는 법을 익힌다.
그래도 그런 사랑앞에서 콩깍지가 씌이면 어쩔 수 없다. 계산하기도 전에 사랑이라는 올가미의 덫에 발목을 잡히면 두뇌의 회전보다도 심장의 박동이 한발 앞서 나가니까. 감정의 흔들림은 때론 이성의 치밀함보다도 강한 유혹을 부르는 법이다.
어진(전미선 역)의 현실은 거친 바다위의 파도다. 멀리 내다보이는 부산 앞바다의 잔잔한 물결처럼 살고 싶겠지만 현실의 파도는 그녀를 매몰차게 원치 않는 어려움으로 자꾸 이끌어나간다.
무능력한 남편을 대신해 두 아이를 먹여살리기 위해서 그녀는 추악한 밤거리의 네온싸인을 헤맨다. 아줌마이기 때문에 그녀가 아무리 현실에 순응하지 않으려 해도 현실은 그녀에게 더러운거래를 요구한다. 그리고 삶의 괴로움은 그녀에게 남편과의 헤어짐을 요구하고 그것조차도 그녀는 쉽게 결정하고 쉽게 지나쳐나간다. 무감각해진 현실 앞에서 그녀는 여리고 가냘프지만 더욱더 매몰차고 독하게 깎여나간다.
처음 남자와의 잠자리를 가진 여자의 잃어버린 순결은 그때부터 그 육체의 가치를 상실한다. 남자들에게 여자의 육체가 탐닉의 대상으로 여겨질 때부터 여자의 가치는 성적인 만족이상의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를 이용해 삶을 꾸려나가는 여성들의 현실은 자신의 떳떳하지 못함을 가리기 위해 떳떳함으로 위장한채 더욱 더 노골적으로 남성들을 유혹하고 화대를 받아낸다. 그네들의 그러함을 손가락질하며 혀를 차는 우리네 사회 현실은 남성 중심사회의 폭력성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몸을 팔아서 죄인이지만 몸을 샀기 때문에 죄인이라는 법을 억울하게 여기는 우리네 남성들의 방어적 핑계는 치졸해보일 뿐 설득력있어 보이지 않는다.
밤거리의 네온싸인은 대낮처럼 밝은 거리를 만들지만 그 불빛이 이 도시 전체를 감싸지 못하듯이 우리네 밤의 어느 술집들에서 벌어지는 남녀간의 만남은 우리가 꿈꾸는 사랑의 아름다움에 미치지 못한다. 그저 타락한 본능이 꿈틀대는 남자들의 욕망이 밤거리를 헤맬 때 그러한 욕망에 결부한 가식적인 눈웃음이 거리만을 밝히는 네온싸인 불빛처럼 초라하게 어두운 삶을 밝힌다.
영화는 초반 10여초간의 페이드아웃과 영화의 부분부분에 스틸컷을 감상적으로 늘여놓는 등의 독특한 영상미를 선보인다. 마치 현실의 혼란함을 정적인 영상과 감상적인 기법으로써 단지 현실적인 눈으로만 영화를 감상하지 않도록 관객들을 유도한다.
달콤한 제목으로 영화를 기대한 이들에게는 비수같은 충격이 꽂힐 채비를 하는 영화다. 영화는 제목의 달콤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을만큼 처절함과 서글픔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현실앞에서 쉽게 허물어지는 사랑과 남성앞에서 만원짜리 몇푼으로 자신의 삶의 가치를 평가받는 여성의 모습..고단하고 피곤한 일상의 무게 앞에서의 무너지는 삶에 대한 허망함 등을 섬세하고도 치밀하게 영화는 묘사하고 있다.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서로간에 달콤한 사랑을 나누는 연인간의 이야기만이 연애는 아니다. 몸을 파는 밤의 여자가 그 와중에 마음이 가는 상대를 만난것도 전화방에서 우연히 연락하게 된 얼굴도 모르는 이와의 통화도 그녀에게는 모두가 다 연애다. 연애는 마음이 중요한 거니까. 가슴 떨리는 그순간의 감정이 진심이었다면 상황은 중요치 않으니까. 끝은 어떨지 몰라도 그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면 그 것도 달콤한 연애였다고 말할 수 있다고 영화는 우리에게 은근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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