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공주>에는 총 다섯 번의 살인과 한 번의 살인 미수가 등장한다. (에필로그의 장면과 열린 결말에 대해서는 일단 논하지 않기로 하자.) 영화에 다섯 번의 살인이 등장하는 데, 첫 번째 살인은 무려 오프닝 시퀀스로 사용된다. 이것이 바로 <오로라공주>를 규정하는 키포인트다. 이처럼 <오로라공주>의 템포는 무척이나 빠르다. 첫번째 살인을 영화 제목이 채 뜨기 전에 해치워 버리고, 두번째 살인과의 갭 역시 크지 않다. 보편적인 스릴러의 속도마저 배반하는 이 영화는, 살인 그 자체와 범인 규명, 체포 여부 같은 역시 보편적 스릴러의 중요한 요소들도 과감히 배제해 버린다. 그런 뒤에 <오로라공주>에 남는 것은 복수극의 잔상과 모성 자체다.
극이 중반에 다다르면 <오로라공주>는 정순정의 범죄 동기와 오 형사와의 관계 등을 적극적으로 노출한다. 그 말은 스릴러나 연쇄살인극으로서의 잔가지를 완전히 쳐낸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고 나면 영화의 나머지는 모두 정순정의 범행 동기, 즉 납치 살해당한 딸의 복수로 귀결된다. 관객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영화 중반 이후에 벌어지는 모든 행동을 '딸의 복수'라는 측면과 연결시킨다는 뜻이다. 갈비집 아들 장명길에 대한 살인이 대표적인데, 이 살인은 정순정에 대한 비밀이 한 꺼풀 벗겨지기 이전에 시작되고, 비밀이 알려진 다음에 종료된다. 살인 계획이 시작될 때 - 즉 오 형사가 정순정의 집에서 한성갈비집의 사진을 발견했을 때 - 관객은 이 곳에서 다음 살인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엉뚱하게도 다음 희생자는 택시기사 박달수다. 이처럼 엇갈리게 삽입된 시퀀스로 인해 관객은 혼동을 일으키지만, 비밀이 알려진 다음부터는 그 라인이 비교적 명확해진다.
<오로라공주>가 치장한 스릴러의 껍질을 벗겨내고 나면 그 뒤에 여성 - 어머니 - 의 복수극이 나온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왜냐면 몇 달 전에 이미 여성의 복수극을 모토로 한 화제작을 만나본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로라공주>는 <친절한 금자씨>와의 비교를 피할 수가 없는데, <친절한 금자씨>가 여성(혹은 모성)으로 시작해서 구원의 모티프로 끝을 맺었다면, <오로라공주>는 반대로 정의 사회 구현을 목표로 내세우는 듯한 분위기에서 모정의 살인극으로 달려가는 영화다. 즉 서로 간에 대척점을 차지하고 있단 말이다. 그래서 <오로라공주>는 박찬욱이라는 '아버지'가 만든 여성의 복수극에 대한 '어머니' 방은진의 대답이란 느낌을 준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는, 오성호의 존재로서 더욱 신빙성을 갖게 된다. 오성호는 형사지만, 형사를 때려치고 목사를 지망하고 있다. 그 점이 더욱 우습다. 딸이 죽어가는 순간에도 경찰 업무 때문에 발벗고 나서지 못했던 아버지가 정작 형사에 별 흥미를 두지 않고 있다는 점은 결국 아버지의 무기력, 무능력을 돋보이는 장치가 된다. 가만히 보면 형사라는 것, 목사를 지망한다는 것 역시 아버지와 어머니의 강력한 대조를 위한 발판이 된다. 살인범과 형사, 살인범과 목사, 복수자와 그것을 제압하려는 자, 어머니의 복수심과 아버지의 무기력과 같은 요소들은 말 그대로 정순정과 오성호를 철저하게 대비시킨다.
그리하여 마침내 영화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려 할 때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세워 둔 강력한 대비체제를 일거에 뒤집어 놓는다. 정순정이 처단한 네 사람은 사실상 변두리 인물들. 물론 이들이 없었다면 딸이 죽지 않았겠지만, 결정적으로 딸을 죽인 직접적 범인과 그를 변호한 김우택이 남아 있는 이상 완벽한 복수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불가결한 조력자로 오성호가 변모한다. 오성호는 정신병원에 수감된 순정에게 면도칼을 건네주며, 김우택에게는 직접 복수를 위해 따라나선다. 앞서 <친절한 금자씨>와 <오로라공주>를 견주었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를 언급한 바 있다. 두 작품의 관계를 오성호와 정순정의 관계로 형상화했다고 볼 때, <오로라공주>의 결말은 아무래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를테면, '진짜 엄마의 복수는 이런거야'라고 한 수 가르치는 느낌이랄까.
<오로라공주>는 스릴러를 가장하고 있지만 분명 복수극의 성격이 강하다. 한발 나아가서, <오로라공주>는 감히 스릴러가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다. 이 영화는 스릴러임을 주창하기엔 너무 많은 '장르의 배반'을 저질렀고, 굳이 그것이 아니더라도 이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결코 스릴러로 전달할 만한 것이 아니다. 모성애의 지나친 스포트라이트와 속도감을 주기 위해 무리수를 두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우연성에 의한 전개는 다소 거슬리지만, 차가운 금속성의 화면에 모성애라는 촉매를 넣어 튀지 않게 풀어낸 <오로라공주>는 신인감독의 데뷔작으로서 결코 나쁘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