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인사를 하러 왔던 박진희가 홈페이지에 응모된 한 남자의 사연을 읽었다. 실제로 자리에 와 있다고 해서 무대로 나왔는데, 사연처럼 절절한 외모는 아니었지만 말 하나는 잘 하더라. 요약해 인용하자면, ‘남들에겐 별 것 아닐 당신의 사연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멋진 것일 수 있다’는 것.
맞는 얘기다. 사연의 주인공들도, 영화 속의 서니, 영신, 지석도 그렇게 별 것 아닌 사연이 깃든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아파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당신들은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이별하고 있는지, 절절 끓는 외로움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는지 묻고 있다. 그 대답은? 물론 YES.
예고편의 서늘한 느낌 때문이었을까. 나는 이 영화가 마치 신경숙의 소설 ‘깊은 슬픔’ 같을 거라 생각했다. 서니(배종옥)와 영신(박진희)이 나누는 대화가 은서와 화연의 대화 같을 거라 여겼다. 그래서 단번에, ‘이 영화는 내 영화야.’ 하고 단정 지어버렸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내 발에 맞는 신발은 아니었지만…rit.과 accel을 반복하는 영화의 흐름이 인상적이었다.
이야기의 배경은 따갑게 내리쬐는 햇볕이 인상적인 LA
성공을 위해 스스로 외로워진, 그녀 말마따나 ‘그냥 여자도 아니고, 많이 망가진 여자’인 서니와 자유를 꿈꾸며 LA로 날아온 영신, 그런 영신을 잊지 못해 그녀의 자취를 따라온 지석의 일상은 영화 곳곳에서 오버랩된다. 서로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갈 때쯤, 서니의 집에서 있었던 파티, 서니의 전남편이 등장하는 결정적 사건(사실, 난 이 결정적인 사건이 이 영화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유일한 요소라고 본다.)을 계기로 그들의 외로움과 무미건조한 일상이 폭발한다. 더 이상 망가지지 않기 위해, 더 이상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다시 용기를 내며 각자의 삶을 찾아가는 인물들을 비추며 끝나는 영화.
사랑을 추억하고, 추억하다 외로워지고, 외롭지만 다시 사랑하기 두려워하는 주인공들에 공감할 수 있는 건 우리가 모두 한번쯤은 경험해 본 감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무엇보다도 이러한 감정을 충실히, 그리고 완벽한 섬세함으로 표현해준 배종옥에 갈채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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