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에 나눠주는 무가지 중 A.M.7을 가장 좋아한다. 요일마다 바뀌는 기자들의 칼럼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특히 이애리 기자의 ‘내가 사랑하는 배우’ 코너는 기자와 나의 취향이 많이 비슷한지 정말 ‘그래, 이 배우…’하며 탄성을 지르게 한다.
나에게 ‘내가 사랑하는 배우’를 말하라고 한다면 순위 5위 안에는 넣을 수 있을 듯한 두 배우가 이 영화 안에 있다.
상처받은 짐승처럼 날것의 느낌을 풍기는 알 파치노와, 지적이고 아름답지만 불안하고 위태위태한 중년 남성의 독특함을 보여주는 제레미 아이언즈… 이 얼마나 카리스마 넘치는 캐스팅인가.
배우 중심 시스템에 신물이 나면서도 그 이름을 보고 표를 사게 되는 건 이런 배우들 때문이다.
이 훌륭한 배우들은 이름값을 하며 원작의 재해석에 힘을 실었다.
샤일록, 오 불쌍한 샤일록. 우리 어머니는 내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쁜 사람에게 ‘샤일록 같은 놈’이라고 욕을 했는데, 여기서의 ‘샤일록 같은 놈’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돈밖에 모르는 사악한 인간과 동일한 의미였다. 그 정도로 나쁘고 간악한 사람이 이다지도 불쌍하게 느껴진 것을 보면 이 영화가 원작이 주는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덕목을 재현하는 것에는 실패한 것처럼 느껴진다. 모든 것을 잃고 망연자실한 채 서 있는 샤일록의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슬펐고, 그의 악랄함에 대한 책임도 일정 부분(혹은 많은 부분) 사회에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말이다.
성 정체성에 의심이 가는 역할을 두루 섭렵한 제레미 아이언즈, 그가 분한 안토니오 역시 뭐랄까, 오랜 벗 베사니오에 대해 우정 이상의 마음을 간직한 동성애자의 느낌을 풍겼다고 할까? 물론, 르네상스의 광풍을 거쳐 현세적이고 향락적인 분위기가 지배했던 지중해 연안 도시들에선 동성애가 뭐 그리 큰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원작에선 언급을 안했을지도. ㅡ.ㅡ;; 목숨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은 벗에 대한 사랑과 우정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웃겨야할 땐 확실히 웃기고, 슬퍼야할 땐 확실히 슬프며, 왁자지껄해야 할 땐 또 확실히 왁자지껄한 케네스 브레너의 셰익스피어에 익숙한 나로서는 또 다른 느낌의 셰익스피어를 보게 되어 더 없이 좋은 기회였다. 훌륭한 연기와 당시 시대의 철저한 고증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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