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TV에서 방영했던 만화영화 중 서유기를 인용해서 만든 '별나라손오공'이란 만화가 있었다.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은 누구나 아는 캐릭터지만 '오로라 공주'만큼은 이 만화를 보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다.'삼장법사'를 여자로 바꾼듯한 '오로라 공주'라는 캐릭터는 이 만화의 홍일점이자 가장 원작과 차별성을 부여할만한 캐릭터였으니까..
어쨌건 최근에 극장에 다시 오로라공주가 찾아왔다. 손오공과 저팔계, 사오정은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무슨 연유로 우리에게 다시 찾아왔을까.
복수는 언제나 영화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로 쓰여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화계의 큰 화제였던 '친절한 금자씨'도 그 유명한 박찬욱 감독의 복수3부작의 완결이 아니었던가.
인간의 본성중 가장 강하면서도 추악하고 무서운 것이 복수근성이 아닐까 싶다.적어도 무엇인가를 손해보게 되면 되갚음의 심정을 갖게 되는 것은 아무리 한없이 맘이 넓은 사람일지라도 한번쯤은 맘속에 치밀어오르는 본연의 감정이 아닐까.
그래서 복수라는 소재는 우리의 삶을 화면으로 특별하게 재구성해 보이는 영화에 더없이 매력적인 소재로 쓰이지 않을수가 없을것이다.
이 영화도 기본적인 모티브는 복수다. 말그대로 자신의 맺힌 한을 풀어내기 위해 피의 복수극을 펼치는 주인공의 끔찍한 일탈적인 행위를 보고 즐겨야 하는 영화란 것이다.
복수를 한다는 것은 복수를 해야할 이유가 있다는 것..영화에서 흔히 복수라는 소재를 다룰때 중요한 건 복수의 행위에도 있지만 복수의 이유 역시 만만찮은 비중이 필요하다.
복수의 행위자체가 무거워질수록 필연적인 복수의 원인을 관객에게 잘 설득해야만 관객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게 만드는 힘이 부여되는 법이다.
이 영화는 여러가지로 그러한 면에서는 일단의 합격점이 보인다.
적어도 엄정화가 연기하는 정순정이라는 역할이 지니는 복수의 잔인함이 어느정도 설득력을 얻게 된다는 것은 스토리와 줄거리의 진행 자체가 관객에게 나쁘지 않은 구성력을 선보인다는 것이다.
초반의 충격적인 씬 역시 우발적임이 아닌 필연적인 과정이었음까지도 후반에 느껴지는 쏠쏠한 재미로 다가온다. 그만큼 이영화는 영화의 시작부터 결말까지 나아가는 관객의 궁금증을 적당히 해소시킬 줄 아는 결말의 미덕을 충분히 지닌 영화다.
방은진 감독이 배우에서 감독으로 변신의 첫 발걸음은 이로써 상당히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로써 다음 작품에 대한 행보 역시 어느정도 관객에게 기대감을 부여할 수 있는 감독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가에 대한 시험무대가 될 것이다.
엄정화의 연기는 언제나 그렇듯이 천연덕스럽다. 그녀는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다. 최근 동시에 극장에 내걸리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서의 로맨틱함과 이 영화에서의 잔인함은 이 배우가 지닐 수 있는 멀티플레이의 능력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다만 이영화에서의 아쉬움은 그녀의 연기가 다소 박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섬뜩함까지는 닿지 못하는 그녀의 히스테리컬함이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굳히 필요했을까하는 불필요한 노출씬 역시나 영화의 완성도에 흠집으로 남는 기분이다. 적어도 '올드보이'에서의 베드씬이 영화의 결말에 얹어주던 충격의 미덕을 고려했어야 하지 않을까.
복수라는 키워드에서 이 영화는 '친절한 금자씨'와 묘한 비교선상에 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영화는 다분히 현실적으로 잔인하고 치밀하다. '친절한 금자씨'는 만화적인 판타지가 가미된 영화였다는 점에서 두 영화의 우위를 점하는 비교는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아보인다.
생각보다 괜찮은 영화다. 영화의 때깔이 2%부족해 보일지언정 영화가 관객에게 만족시켜줄 98%탄탄함이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형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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