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크랭크인 기사를 읽었을 때부터 무척 기대하고 있던 영화였다. 엄정화가 차가운 연쇄살인범으로 나온다는 것이, 그 무렵 이영애가 <친절한 큼자씨>에서 살인자로 나온다는 것보다 더 기대됐었고,
배우 방은진의 감독 데뷔작이라는 점이 어쩐지 기존의 남성 전형 스릴러와는 다를 기대를 갖게 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은, 기대만큼 스릴러의 묘미가 느껴지진 않지만 나름대로 여성성이 돋보이는 독특한 영화를 만들었구나, 생각했다.
사실 스릴러라고 하면 일반적인 영화의 초점은 ‘범인’이 누구인가에 맞춰진다. 범인을 알 수 없는 가운데 일어나는 살인은, 언제 누구로부터 공격당할지 모른다는 긴장감을 주기 때문에 꽤나 자주 사용되는 수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개 극악한 범인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주인공의 사투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오로라 공주>는 툭 까놓고 “이 여자, 주인공 정순정이 범인이야.”라고 일단 밝히고 들어간다. 결국 정체불명의 범인으로부터 오는 공포와 추리는 포기한 셈이다. 더욱이 주인공이 곧 살인자이다 보니 관객의 입장이 뒤바뀌게 된다. 피살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죽음의 공포가 사라지고, 그 대신 살인자의 철저한 응징 심리에 동참한다. 쉽게 말해 피살자들의 싸가지 없음에 일단 분노하고, 주인공의 살해 욕구에 자신도 모르게 동참하게 된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공포물이나 스릴러물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고 느꼈다. 그나마 공포를 느껴야 했다면 주인공의 잔인한 살해 방식에서 느껴지는 두려움 정도랄까? 오히려 주인공의 살해 광경이 발각될 위기에 처할 때마다 살인을 응원하면서 들킬까봐 전전긍긍하는(-_-;;) 내 자신을 발견했다.
그럼에도 그 감정 이입이 부자연스럽지는 않으니, 그것이 바로 감독이 노린 바가 아닐까 싶다. 주인공의 슬픔과 복수심에 공감하고, 양심에 더께가 쌓인 피살자들의 모습에 분노할 것.
사실 피살된 자들 가운데 대부분은 누구나 무심코 저지를 수 있는 사소한 이기적 행위를 저지른 자들이다. 그 때문에 치러야 했던 대가는 너무 끔찍하지만, 그 사소한 이기심도 타인에겐 삶을 통째로 잃어버린 슬픔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렇게 영화는 주인공의 감정을 전달하는 데는 성공적이지만, 아무래도 전체적인 구성은 지나치게 단순해서 조금 아쉽다. 전반부는 영문을 모른 채 죽어야 하는 연쇄살인이 계속되고, 후반부는 회상을 통해 일시에 그 연관성이 드러나면서 완성된 복수극을 보여준다. 처음부터 미스터리물이길 거부한 시점에서 굳이 복잡한 구성을 취할 필요야 없었겠지만, 그래도 조금만 변주를 달리했더라면 <PM. 11:14>처럼 관객에게 “아하!” 소리 절로 나오는 그런 것도 가능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친절한 금자씨>를 여성의 복수극이라고 얘기했는데, 어쩌면 <오로라 공주>야말로 진짜 여성의 복수극이 아닐까 싶다. 아이를 잃은 모성의 슬픔과 분노라는 설정이 비슷하지만, 글쎄… 남성 감독이 여성의 복수와 증오심을 진심으로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많은 여성들이 정순정의 슬픔에 공감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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