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즈음 읽었던 '베니스의 상인'은 일종의 그림 동화 스타일이었습니다(지금 생각해보니 참 황당). 아마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번역도 쉽게 했을 테고, 어쩌면 내용마저도 변형되었을지 모르겠군요. 다시 말해 선악의 확연한 대립 구도로 판을 재편해 놓았을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실제로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저를 지배하던 샤일록의 이미지는 악랄한 고리대금업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처음 '베니스의 상인'을 접한 이후로 이미 수천 일이 흘러가버렸습니다. '정의'의 편에만 환호하던 아이는 '악당'에도 마음이 끌릴 수 있는 어른이 됐고, 세상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지를 깨달을 만큼의 성인이 됐습니다. 그리고 영화 <베니스의 상인>은 딱 그에 어울리는 내용으로 다가왔습니다.
앞선 내용으로 짐작했겠지만 어린 시절과 완연히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 인물은 샤일록입니다. 어린 시절 기억에 따르면, 그는 기일 내에 돈을 못 갚았으니 보증인의 생살 1파운드를 가져야겠다던 악덕 고리대금업자였어요. 하지만 영화에 나오는 샤일록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입니다. 모든 이가 그를 짐승이라 부르지만 사람을 차별하는 그 시대의 편견이 없었다면, 짐승이라 부르는 그 모든 이들의 편견이 없었다면 샤일록이란 인물은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바로 그런 생각들이 머리에 떠올라서였을까요? 재판정에서 무너지는 샤일록을 보자니 가슴이 아려오더군요. 급기야는 기독교로 개종하라는 공작의 질문에 샤일록이 'No'라고 외쳐주길 바라는 저를 발견하고야 말았습니다. 그가 'Yes'라고 했을 때 어찌나 가슴 한 구석이 찡하던지.
그만큼 영화는 선악의 이야기가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우정은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사랑은 미소를 지울 수 없을 만큼 즐겁고 설렙니다. 그 감정 속에서 배우들은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죠. 가장 돋보이는 건 알 파치노와 조셉 파인즈지만 친구의 부담을 없애주려는 제레미 아이언즈의 재판정 장면도 버릴 구석이라곤 없어 보였어요.
<베니스의 상인>은 매력적인 영화입니다. 원작인 셰익스피어의 희곡이 지금과는 다른 시대 배경과 감성 위에서 창조되었다 할지라도 비극적 운명을 맞는 샤일록이나 기지 넘치고 대담한 포시아 등은 시간을 초월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습니다. 영화를 보고나니 제대로 번역된 원작을 읽어봐야겠다는 욕구가 불끈 솟네요. 어렸을 때 읽은, 무지막지한 선악 구도로 재편해버린 정체불명의 '베니스의 상인'이 아닌 제대로 번역된 '베니스의 상인'을. 분명 영화와는 또 다른 맛이겠죠. 셰익스피어의 문장은 일상적 현상과 감정에 독특한 생기를 불어넣어 그 자신만의 세계로 바꾸어버리더군요. 그런 문장을 접할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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