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놀이, 땅따먹기. 으레 어린시절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놀이이다. 머리에 냄비 뒤집어쓰고 아무데서나 주운 나무막대기 들고 '나를 따르라!'하면서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다니던 전쟁놀이나, 분필같은 것으로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그림을 그려놓고 돌을 던져가며 아슬아슬 깽깽이 걸음으로 뛰어다니던 땅따먹기 놀이나, 생각해보면 참 천진난만하게 즐겼었던 놀이다.(사실 전쟁놀이는 해보지는 않았고 예전 모습에 대한 각종 영상물에서만 자주 봤지만 그래도 친근하게 느껴지긴 한다) 어떤 사심없이, 그저 아이들끼리 부대끼고 웃으면서 하는 그런 놀이. 근데 이런 전쟁과 땅따먹기 같은 걸 놀이로가 아닌, 진짜로 하는 아이들이 있다. 진짜 실탄이 든 총을 들고 전쟁터마냥 서로 총을 쏴대고, 그저 분필로 그어논 작은 땅바닥이 아닌 진짜 도시를 대상으로 땅따먹기 대결을 하는 아이들이 있다. 1960~70년대, 브라질 최고의 도시라고 불리는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시티 오브 갓'이라는 도시에 사는 아이들은 그렇게 했다. 속된 말로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았을 어렸을 적부터 총을 벗삼고, 불법적인 수단으로 강탈하고 거래하는 걸 재미삼아 하면서 말이다. 영화 <시티 오브 갓>은 이렇게 '거칠다'는 말로도 모자란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의 거친 인생을 담아낸 영화였다. 줄거리는 어떻게 딱 꼬집어 말할 수가 없고,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돌아간다. 영화의 나레이터이자 주인공인 부스카페(알렉산드레 로드리게즈)는 그나마 나은 편. 총맞는 게 두려워서 범죄라는 것에 쉽게 가담을 하지 못한 채 거의 관찰자에 가까운 입장에 서 있는 아이이다. 이 아이는 특히 사진찍는 걸 매우 좋아해서, 시티 오브 갓에서 일어나는 온갖 험악한 일들을 카메라로 담으며 사진기자의 길로 성장해나간다. 이에 반해 제빼게노(레안드로 피르미노)는 어려서부터 총과 살인을 밥먹듯이 해온 냉혈한 중의 냉혈한이다. 열살도 안됐을 무렵에 살인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으며, 그로 인해 사람 죽이는 걸 파리 죽이는 것보다 쉽게 생각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아이이다. 권력에 대한 욕심은 또 어찌 그리 강한지, 마약거래를 통한 세력확장을 통해 시티 오브 갓의 최고 권력자로 오르려는 욕심 또한 가지고 있다. 또 다른 주인공인 베네(펠리페 하겐센)라는 아이는 제빼게노와 어려서부터 단짝이라 역시나 범죄에 가담하고 있으나, 제빼게노처럼 막나가는 성격은 아니다. 스타일을 중시해서 자기 꾸미는 것에도 소홀히 하지 않으며, 사랑에 관해서도 기꺼이 자신을 바칠 줄 아는, 그래서 같은 깡패라도 대단히 멋진 놈으로 통하는 아이이다. 이들이 1960년대 '텐더 트리오'라는 전설적 무리가 있었던 유년기, 1970년대 소년기를 거치면서 시티 오브 갓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범죄의 한 가운데를 지나게 된다. 마약, 살인으로 점철된 시티 오브 갓의 세력 경쟁 속에서, 아직 스무살도 채 되지 않은 이 아이들이 목숨이 걸린 위험한 대결에 맞닥뜨리게 된다. 일단 이 영화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미국, 일본, 중국, 프랑스 등의 나라에서 만든 영화가 아니다. 브라질에서 만들어진 영화라 말투도 대단히 생소하고, 주변 환경도 꽤 새롭게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가 별로 접해보지 못한 브라질 영화라고 해서 허접하게 만들어졌을 것이라 생각하면 대단한 오산이 될 수 있다. 빈민가의 참혹한 일상을 그린 이 영화는 입이 벌어질 만큼 세련되고 스타일리쉬했으며, 속도감 또한 탁월했다. 잠시 깜박 졸게 만들 만큼의 고요한 구석도 없이, 쉴새 없이 보는 사람을 뜨거운 폭풍 한가운데로 몰아넣었다. 스크린에서도 그대로 느껴지는 브라질 특유의 후텁지근한 날씨의 분위기까지 더해져, 영화는 그야말로 열대기후에서 느끼는 끈적한 한바탕 폭풍을 맞는듯한 느낌을 주었다. 영화에선 거의 처음 듣는 브라질 말투라 확실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배우들의 연기 역시 꽤 자연스러웠다. 감독이 영화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실제 시티 오브 갓에 거주하는 아이들을 캐스팅했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의 연기는 처음 하는 것일텐데도 불구하고 어색하게 느껴지기보다는 실제 감정이 자연스레 녹아든 듯한 대담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덕분에 감독의 의도대로 영화가 정말 실제 상황에 카메라를 들이댄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이 직접 나레이션을 하는 것 답게, 영화는 주인공의 입장에 맞춰 잠시 쉬어갈 틈을 주지 않고 곧바로 시선이 닿는대로 이야기를 뻗어나간다. 현재 주인공이 처한 곤란한 상황에서 '아, 이런 적은 예전에도 많이 있었다'하면서 주저없이 어렸을 적으로 돌아가 그 때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그 당시를 주름잡던 인물들, 텐더 트리오의 세 멤버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따라가다보면 어느 새 세월이 흐르고, 그들의 바통을 이어받은 새로운 인물들, 부스까페와 제빼게노와 베네 등이 등장해 또다시 자기들의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식이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 순서대로 전개해야지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기 보다는, 그때 그때 등장하는 장소, 인물에 따라서 즉흥적으로 얘기를 풀어나간다고나 할까. 거기다 이 시티 오브 갓이라는 곳이 워낙에 총이 장난감처럼 쉽게 쓰이고 살인도 막무가내로 벌어지는 곳이라 언제 누가 무슨 일을 겪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그 긴장감 또한 상당하다. 동시기의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오가며 보여주고, 그 연결이 어느 쪽으로 이어질지 불규칙하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이야기 전개를 정리하기가 꽤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언제 어떤 쪽으로 얘기가 이어져 나갈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보는 사람 입장에서 한시도 눈을 떼고 여유를 부렸다간 곤란한 상황이 된다. 다행히 이야기들은 각각 뚜렷한 제목을 지녀서 어느 정도 구분을 할 수 있게 해주고, 덕분에 영화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헷갈리지 않고 대단히 집중하고 한눈을 팔 수 없게끔 만드는 상당한 흡인력을 지니고 있다. 시티 오브 갓 이곳 저곳을 훑고 돌아다니는 카메라워크 또한 마치 보는 사람 또한 3D로 시티 오브 갓의 풍경을 체험하고 있는 듯 사실적인 느낌을 더해준다. 이런 식으로 주저하지 않고 내키는 대로 스토리가 뻗어져 나가고, 여느 스릴러 공식처럼 뻔한 수순으로 조였다 푸는 게 아니라, 빠른 럭비공같은 예측불허의 전개로 처음부터 끊임없이 조여가면서 절정으로 향해 가기 때문에, 여느 헐리웃 스릴러에서 어느 정도 느꼈던 좀 틀에 박힌 듯한 느낌을 전혀 가질 수 없는 신선함으로 가득한 영화가 되지 않았나 싶다. 거기에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까지 힘입어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까지 더해서 헐리웃 영화처럼 정제되고 가공된 듯한 스릴감이 아닌, 날것 그대로 심장을 마구 조여오는 살아있는 스릴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열대기후 분위기가 물씬 풍기면서 비트감 또한 상당한 영화음악 또한 이런 스릴감을 한층 강화시켜주었다. 이렇게 전혀 느껴보지 못한 신선한 스릴감을 더 몸소 와닿게 해줬던 것이 바로 영화 속 주인공, 그리고 그들이 처해 있는 환경의 모습이다. 우선 이 영화의 제목이자 배경이기도 한 '시티 오브 갓'이라는 도시는 단순히 주인공이 활동하는 배경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름은 엄연히 '신의 도시'라면서 축복받은 듯하지만 실은 영화 속 부스까페의 말처럼 신이 "정직이 밥먹여주냐?"라는 냉소적 멘트만 날릴 것 같은 버려진 이 도시. 윗사람들은 그저 자기 잇속 챙기기에 바쁘고, 정작 서민들은 자기 집조차 챙길 수 없는 감당하기 힘든 가난을 지고 살아야 하는, 거기에 마땅히 정당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자리도 별로 없는 이 곳에서, 아이들이 올곧게 자라는 것은 오히려 더 힘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은 결국 10대에 채 들어서지도 않은 나이 때부터 남들로부터 무언가 빼앗는 걸 생활 수단으로 여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끈적함이 제대로 느껴지는 더운 날씨와 찢어질 듯한 가난이 공존하는 이 도시 속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실로 충격적인 모습을 패키지로 보여준다. 아직 '꼬마'라는 호칭이 어울릴 나이의 아이들이 서로 총을 겨누면서 목숨을 위협한다. 아무것도 모른채 그저 목놓아 울고 있는 어린 아이를 역시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총으로 죽여야 할 상황에 놓이는 건 보통이다. 옆에서 자기 조직에 들어오려면 그걸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아이들은 그저 재밌다는 듯 웃고 있다. 마약봉지를 두고 자기들도 이걸 살 수 없는지 막 조르기도 한다. '우리가 이제 마약 황제다!'하면서 함성을 지르는 건 보통이다. 마약과 살인이 이 도시에서 출세의 길에 오르는 방법임을 일찌감치 깨달은 아이들에게 총의 차디찬 감촉과 마약 봉지들은 더 이상 생소하고 위험하기는커녕, 친구와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런 아이들이 키득키득 웃으면서 사람을 향해 총을 쏘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걸 즐기고, 마약을 마치 장난감 사달라는 듯 구걸하는 모습은 충격을 넘어 소름끼치기까지 했다. 이렇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너무가 거리가 먼 아이들의 생활상이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걸 느끼게 되면, 이 영화를 통해서 단순히 스릴러가 주는 긴장감과 카타르시스만 느낄 뿐 아니라 지독하게 끔찍한 현실에 대해 또한번 억! 소리가 절로 나게 된다. 어른들이 맞닥뜨리기에도 험악하기 짝이 없는 마약과 살인의 아수라장에서, 그것도 아이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씁쓸할 뿐이었다. 거기에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나오는 영화 속 등장인물 중 한 명인 마네의 실제 인터뷰 장면을 보면, 절로 입이 벌어진다. 영화 속 대사와 실제 인터뷰에서 한 말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았다. 그렇게 참혹하고 차마 영화 속에서도 상상하기 힘들 일들이 실제로 그대로 일어났다는 것을 그 장면은 그대로 증명하고 있었다. 때론 '영화같은 삶' 운운하는 얘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현실만큼 영화같은 게 또 없다. 이 영화 속 이야기가 바로 그렇다. 영화 속에서 온전히 허구만으로도 차마 아이들이 살인을 일삼고, 마약을 거래해 세력을 확장한다는 식의 스토리는 구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그런 충격적 현실이 날것 그대로 담겨져 있다. 감독의 망설임없는 연출과 쭉쭉 뻗어나가는 스토리 전개로 스릴러로서의 미덕을 제대로 만끽하고 있는 동안, 이러한 놀라운 현실에 또한 마음 한구석은 한없이 무거워졌다. 이 영화가 역대 스릴러 부문 1위로 뽑힌 건 이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는 단순히 스릴러라는 장르적 재미만을 단발적으로 추구하지 않았다. 현실을 바탕으로 해서 그것으로 스릴감을 더 강조했고, 한편으로 그 현실을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영화가 강조하는 사회적 문제를 뼛속 깊이 느낄 수 있게 한 것이다. 손에 땀을 쥐면서 한시도 한눈 팔지 않고 스릴러적 재미를 만끽하면서, 동시에 영화 속에 그대로 드러나는 아이들의 가혹한 현실에 절로 할말을 잃게 하는, 이런 두 가지 극단적 감정을 선사하는 영화가 어디 또 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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