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에 대한 가장 흔하고 진부한 어구 중에 하나가 바로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말이다. 아무리 베어도 결국은 하나로 합쳐지게 마련인 물처럼, 부부사이도 그렇게 서로 으르렁거리더라도 결국은 다시 합쳐지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말이 한창 권태기가 찾아온 부부 사이에선 아마도 예외일 것이다. 상대방의 사소한 것 하나가 꼴보기 싫고, 그렇게 되면 작은 실수 하나가 큰 화를 불러올 소지가 있을지도 모르니.
여기, 단순히 부부싸움이 칼로 물베기 수준이 아닌 부부가 있다. 이들은 한번 부부싸움이 난다면 서로 칼이나 총, 심지어 바주카포까지 들고 서로 목숨을 향해 덤빌, 그 스케일부터 다른 부부싸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부의 이러한 무지막지한 부부싸움은 무섭기는커녕 스릴넘치고 화끈하며 섹시하기까지 하다. 두 부부의 절묘한 조합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문자 그대로 선남선녀 부부라고 할 수 있는 존 스미스(브래드 피트)와 제인 스미스(안젤리나 졸리) 부부. 이들은 겉으로는 각자 건축업자와 컴퓨터 전문가이지만, 실은 최고 실력을 자랑하는 프로페셔널 킬러이다. 물론 자신들은 서로의 그런 정체를 모르고 있지만. 이들은 타지에서 첫눈에 반해 열정적인 사랑에 힘입어 결혼에 골인한 고속도로 커플이다. 그러나 이들의 이런 사랑도 잠시, 5~6년 지나면서부터 둘 사이에는 조금씩 냉기가 돌기 시작한다. 집안에서 나누는 대화도 극히 생활적이고 전형적인 대화들 뿐이고, 사랑한다는 마음마저 식어가려고 하고 있다. 부부상담에서 일주일동안 부부관계를 몇번 가졌냐는 질문을 받으면 얼버무리기 일쑤이고. 그러다가 그들에게 또 하나의 임무가 부여되는데, 공교롭게도 그들의 임무는 서로가 같다. 당연히 그들은 각자의 임무에서 서로를 만나게 되고, 라이벌 조직에 있는 두 사람은 각자의 조직으로부터 걸림돌이 되는 서로를 제거하라는 임무를 받게 되는데...
일단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점 하나는, 이보다 더 황금비율적일 수 없는 배우들의 조합이다. 이 영화를 놓고 이혼과 염문설이 끊임없이 흘러나왔지만 이런 외부적인 것들을 제외하고보면, 두 배우(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의 만남은 그대로 '딱 좋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현재 각자 남녀 섹시스타 1위를 다투고 있는 두 남녀 배우가 한 영화에서, 그것도 대단히 도발적인 상황에 있는 부부 연기를 하는 광경을 보기란 분명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에서의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의 부부연기는 그들이 단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란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숨막히는 매력을 자아낸다. 그뿐인가, 이들 덕분에 별것 아닌 사소한 생활들조차 섹시한 도발이 되어버린다. 반찬투정을 하고 사소한 시비를 주고받으며 진행되는 저녁식사 장면을 보라. 그들은 단지 식탁을 사이에 두고 상당히 멀리 앉은채 건조한 대화를 주고 받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전기는 왠만한 베드신 저리가라할 만큼 그 파워가 피카츄 백만볼트마냥 강력하다.
이렇게 배우들의 조합이 환상적인 이상, 영화 자체도 두 배우의 매력을 맘껏 발산시킨다. 여자 관객들은 브래드 피트의 섹시함과 더불어 투정도 자주 부리는 귀여운 모습에, 남자 관객들은 안젤리나 졸리의 완벽한 S자 라인 몸매와 파워풀한 액션과 더불어 도도해서 더 섹시한 모습에 매료당할 것이다. 본인은 남자인지라 당연히 안젤리나 졸리의 섹시한 카리스마에 절로 압도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많은 출연작을 봤지만, 왜 그녀가 이토록 섹시스타 대접을 받는지를 이 영화에서야 절실히 깨달았는지 모르겠다.
자연히, 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벌이는 부부 사이의 신경전은 여느 부부싸움에서 상상할 수 있는 파워를 훨씬 능가하고도 남는다. 별다른 효과음이나 특수효과 없이 얌전하기만 한 두 사람의 저녁식사 암살 방어전 장면은 불꽃튀는 두 사람 사이의 눈치 싸움과 더불어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식의 기술 대결로 왠만한 액션 장면 못지 않은 긴장감을 선사하고, 이러한 긴장감은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각종 무기를 들고 육탄전을 벌이면서부터 극대화된다. 간지러운 멘트를 날리면서 무지막지한 파괴력의 총도 쏘고, 도끼같은 칼를 집어던지면서 벌어지는 그들의 부부싸움(?)은 끔찍하거나 지독하다고 느껴지긴커녕, 그 화끈한 스릴감 덕분에 '좀 더 싸울 순 없나'하는 생각마저 들게 만든다. 이들이 비록 생각보다 너무 일찍 갑작스럽게 화해를 해버려 좀 어설픈 면이 없지 않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이들이 보다 격렬하게 전기를 빠지직거리며 싸우는 게 미덕이라는 걸 감독은 몰랐던 것인가...;;
물론 이들의 대결은 이렇게 늘 긴장감만 조성하는 건 아니다.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부분도 만만치 않게 있다. 일상과는 다소 멀어보이는 그들의 원래 직업과 지극히 평범한 일상들이 서로 어우러지고 괴리도 겪으면서 상당한 재미를 자아낸다. 부엌에서 마치 오븐에서 음식 꺼내듯 칼과 총을 꺼내는 모습, 금방 막 임무를 수행하고 들른 탓에 옆집 파티에 남사스런 망사 스타킹을 입고 오는 모습, 한창 액션 상황에 휘말리다가도 두 사람간의 사소한 과거때문에 간지러운 막간의 부부싸움도 하는 등, 스파이 액션 영화같은 비현실적인 면에다일상적인 코미디 부분이 겹치니 그 묘한 조화가 상당한 재미를 주었다.
이러한 잔재미는 번역된 대사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다시 생각하는 거지만, 이거 번역하신 분 센스가 장난아니신 듯 하다. 잠시 토라진 존이 제인의 말에 '됐거든~'하고 날리는 멘트나, 제인이 존에게 당신과 함께 죽겠다는 낭만적인 멘트를 날리자 좋아라 하는 존에게 '좋댄다~'하는 멘트를 날리는 제인의 모습은 참 재치넘치는 번역이 없었더라면 그 재미가 더 반감되었을지도 모를 듯 싶다.
이 영화를 두고 부부관계에 대한 풍자도 곁들여져 있다고도 하지만, 사실 이런 부분은 지극히 형식적인 데 지나지 않나 싶다. 결혼한지 얼마나 됐는지에 대해서조차도 의견차이가 있는 부부사이에서 권태기가 일고, 이것이 서로를 제거하라는 임무로 인해 폭발한다는 설정은 부부사이에서 흔히 생길 수 있는 권태기에 대한 과장이자 풍자가 될 수 있겠지만, 이런 부분은 나중에 두 사람이 순간적인 감정의 격랑으로 갑작스레 화해하면서 순식간에 희석되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중간에 제인이 '자꾸 서로에 대한 벽이 높아지는 것만 같고 속내를 감추려고 하는 것같다'며 '이런 걸 뭐라고 하는 거죠?'라는 질문에 박사가 '결혼이오'라고 대답하는 부분에선,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따르려는 사람들에 대한 일침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마지막에 강조하는 '부부관계의 위기는 두 사람이 열심히 이겨내는 것뿐'이라는 메시지는 역시 지극히 도식적이고 뻔한 게 사실이다.
이런 영화에서 깊은 메시지를 괜히 찾으려 하려는 것보다는 전반부에 벌어지는 정신적인 심리전, 후반부에 벌어지는 육체적인 전면전을 그저 오락적으로 즐기는 것이 훨씬 이득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그 부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어할 만큼의 쾌감을 자랑하니 말이다. 언제 한번 최고의 섹시스타들이 부부가 되어 불꽃을 튀기며 대판 싸우는 광경을 보고 흥분의 도가니에 빠질 수 있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할 수 있겠는가.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흔치 않은 볼거리를 갖고 있다. 온갖 첨단 무기들이 오가는 사상 초유의 부부 대결, 거기에 두 배우의 화면을 가득 메우는 거대한 스케일의 매력까지 더해져, 이 영화는 부부싸움계의 그야말로 스펙터클 블럭버스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