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작 부분에 초원이의 나레이션이 흘러나온다.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에는~~"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그러면서 차디찬 잿빛 시멘트벽은 얼룩말이 풀을 뜯는 초원의 형상으로 잠시 모습을 바꾼다.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차가운 현실 속에 외면 당하는 자폐아 초원이의 바람은 아니었을까? 초원이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는 바로 "동물의 왕국"이다. 초원이가 바라보는 그 TV화면에서는 영화와는 쌩뚱맞게, 하지만 "동물의 왕국"에서는 흔한 짝짓기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어쩌면 초원이는 인간의 가장 시원적인 본능으로 돌아가 남과 같다는 것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처럼 이 영화는 자폐아 초원이가 현실 속에서 부딪히게 되는 벽 앞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전제되어 있다.
말아톤! 왜 말아톤인지는 보면 안다. "말아톤은 초원이의 그림일기 속에 있는거죠?"
초원이의 엄마는 남편의 바깥생활, 작은아들의 비행에 아랑곳하지 않고 초원이의 마라톤에 열정을 기울인다. 그러다가 만난 코치 선생님... 음주운전으로 사회봉사활동을 하러 온 10년 전 마라톤 때려친 금메달급 마라톤 선수라는 설정 참 영화로서는 적격이다. 나중에 보면 알겠지만, 초원이에게 영향을 행사한다기 보다는 함께 상부상조를 통해 동화되어 간다. 하지만 처음 그의 태도는 네가지(!)를 넘어서 다섯가지나 없게 느껴진다. 초원이를 대하는 태도, 초원이 엄마에게 내뿜는 언행, 모두가 그를 비하하게 만든다. 그 안에 재미가 있다. 틀어진 관계 속의 회복은 언제나 마음을 들뜨게 한다. "자두"로 부터 시작된 에피소드는 코치와 초원이 간의 미소를 짓게 하는 해프닝을 일으킨다. 점점 마음을 열어가는 코치 선생님... 양재천 마라톤 대회에서 자전거로 코치를 하던 그는 함께 뛴다. 그 때 제껴두었던 그 자전거,,, 10년 간 마음 속 깊이깊이 꽁꽁 숨겨두었던 자존심을 이제서야 버리게 된 것이다. 함께 땀에 젖어 심장이 콩닥콩닥 아니, 벌떡벌떡 뛰는 두 남자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둘은 같아 보인다.
항상 아들은 남들과 다른 게 없다고 믿는 초원이 엄마! 하지만 점점 세상과 부딪힐수록 그 믿음은 버거워만 진다. 뛸 때만큼만은 남들과 다를 게 없다고 마음을 고쳐 먹지만 그 마음 마져도 후반에 가서는 마라톤에 대한 불신으로 사그러 들고 만다. 이제 아들이 남과 뚜렷이 다르다고 믿고, 아들에게 마라톤을 강요한 자신을 원망하고 지난 시간을 회의하고 있을 적, 초원이는 코치와 함께 그 반대로 달려간다. 초원이가 마라톤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초원이가 마라톤을 하고 있는 모습을 엄마가 좋아했던 것이다?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랬었더라면 아이러니하게도 초원이의 존재가 짓밟히는 것이다. 초원이가 원래 마라톤을 좋아했든, 엄마로 인해 좋아졌든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엄마의 손잡아 줌으로 인해서 세상과 호흡할 수 있고, 자연과 나눌 수 있는 기쁨을 누리게 된 것이다.
어린시절 동물원에서 초원이가 없어진 적이 있다. 엄마는 놓지 말아야 할 손을 버거움과 부담감 그리고 교차하는 귀차니즘으로 인해 놓아버린 것이다. 그 때를 기억하는 초원이... 엄마가 삶 앞에서 힘들어 할 때 그 순간순간을 기억하는 초원이! 어쩌면 그 고마움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마라톤을 꿋꿋이 해내고, 힘들어도 안힘들다고 싫어도 좋다고 한 것은 아닐까? 어쩌면 초원이의 다리는 육백만불짜리 다리가 아니라, 힘없고 야윈 다리는 아니었을까? 마음이 저미어 온다. 하지만 코치의 설득에도 초원이 엄마의 마라톤에 대한 불신감은 돌아서질 않는다.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춘천 마라톤 대회날, 초원이는 무작정 신발을 신고 대회에 참석한다. 이제는 엄마의 강요가 없어도 아니, 원래부터 마라톤을 사랑했을지도 모르는 초원이는 뛰는 것만을 위해서 자신의 앞에 놓인 벽을 무찌르기 위해서 달리기를 선택한다. 뒤늦게 도착해서 초원이를 잡은 엄마, 상황은 어린시절 동물원에서와 똑같다. 하지만 정황이 다르다. 비로소 진정한 순간 초원이의 손을 놓아 준 엄마의 손 끝은 파르르 떨리지만, 힘있게 세상을 향해 달려나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는 어머니의 모습은 훌륭했다.
"우리 아이에겐 장애가 있어요~" 정말 장애가 있었지만 그런 아들보다 하루 늦게 죽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 어쩌면 현실적인 장애 앞에서 절규하는 마지막 바람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엄마는 이 세상 그 어느 엄마보다도 훌륭한 어머니의 역할을 해냈다. 아들을 숨쉴 수 있게 했고, 가쁜 숨을 내쉬는 아들에게 자연과 호흡을 나누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모자간의 깊은 카타르시스가 피어나는 영화다. 장애우 가정을 다시한번 돌아보게 하고 자폐아에 대한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 준 영화다. 단지 어려움 속에 피어난 한 줄기 꽃이기 보다는 실화라는 것을 통해서 우리 현실 속에 자리잡은 잡초같은 삶에 대해 조명된 영화인 것 같다. 인간 누구에게나 있는 본성 깊은 곳에 잠재된, 그런 감정을 흔들어 놓은 미묘한 바람과도 같은 영화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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