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아톤>을 보았습니다.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고, 배우의 연기도 좋았습니다. 이런저런 감동 요소들을 꽉꽉 채워서 한상차린 느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끼한 음식은 없더라구요. 무엇보다도 첫 씬이 굉장히 아름다웠습니다. 또한 동물의 왕국 프로그램의 내래이션에서 천천히 의사의 목소리, "엄마가 아플때 초원이는 기분이 어떨까.. 기쁠까?..슬플까?.. 화가날까?.." 하는 반복적 대사는 상당한 임팩트를 주는 것 같습니다. 화면 가득 차는 아이의 표정 그림은 마치 초원이의 알 수 없는 마음 속에 꿈틀거리는 감정들, 초원이가 홀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만 같았구요. 이야기 자체는 단순하지만, 그 안에 과장되지 않은 삶의 모습이 진정한 감동을 주네요.
다만 중간 부분에 뭔가 이야기전개가 톡톡 건너뛴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편집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와 코치의 갈등 장면이나, 아버지, 중원이와 어머니의 갈등 원인이나 배경이 좀 축소된 것 같았는데요, 앞부분에서 감독이 보여주는 세밀하고 침착한 연출과 전개를 봤을때, 아무래도 찍기는 했는데 나중에 편집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드네요.
공중파 방송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데, 투병기라던가 장애 극복기 등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나옵니다. 아무래도 고난을 극복하는 스토리는 예전이건 지금이건 보는 사람의마음을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장애를 앓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도 살면서 느끼는 수많은 좌절과 고통의 드라마를 갖게 되기 마련인데, 이러한 고통이 물리적이고 육체적인 부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공감이 가고요. <말아톤>은 그러한 극복의 이야기를 긍정적이고 밝은 분위기로 소화해가면서 동시에 극복에서 오는 감동도 줍니다.
또 하나 대단한 것은, 감독의 세밀한 연출인 것 같습니다. 지하철에서 성추행범으로 몰렸을 때 장면도 인상적이었지만, 개인적으로 명장면이라고 생각했던 점은, 아무도 없는 조립실에서 선풍기 바람을 맞는 장면이었습니다. 아무도 초원이의 마음을 모르고(그래서 가족들이 더욱 지친다고 하네요), 어머니조차도 마라톤이 초원이를 위한 것인지 자신을 위한 것인지 혼란스러워할때 사실 초원이가 정말로 뛰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명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아무런 과장도 억지도 없이 자연스럽게 표해내는 배우와 감독의 연출과 시나리오의 탄탄함 모두 대단합니다. 선풍기 바람을 통해서 달릴때 이마를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싶어하고 손을 벌려 공기 흐름을 느끼는 초원이의 모습, 그리고 그것을 말로 표현 못하는 초원이의 모습을 나타낸 이 장면에서 이야기의 전체적 방향이 다시 잡힌다고나 할까요. 또 하나, 이영화의 미덕은 과장되지 않았다는 점이 큰 미덕인 것 같습니다. 어느 부분에서도 눈물을 쥐어짜내지 않고, 지나치게 희화화되지도 않고, 상투적으로 보일 수 있는 갈등 요소들을 진실되게 표현한 데서 감동의 원천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같이 개봉한 <공공의 적2>가 결코 따라갈수 없는 미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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