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사회의 바다에 던져진지 벌써 10년, 이 좋은 머리가 일말의 향기없는 이 무자비한 컴퓨터를 살찌우고 이 아름다운 손이 생명 하나 잉태못하는 불임의 키보드 위를 애무할때, 내 순결한 눈은 어느새 PC라는 포주가 연결해준 한뼘짜리 사각 모니터 안에 벌거벗고 누워있다.
나는 진정 자연의 산물인가, 아니면 거대한 시스템의 자궁(매트릭스)을 꿈꾸는 나비 에 불과 한가..
지난 가을 제 1회 환경영화제를 통해, 되찾은 영혼같은 이 영화 '깃 (감독 송일곤) - 1월 14일 일반 개봉' 을 만난 것은 필자에게 너무 큰 행운이었다. '아는 여자'라는 영화로 팬이 되어버린 장진 감독의 '소나기 - 그 이후' 라는 작품과 함께 환경영화제가 나에게 준 너무나 멋진 선물.
필자가 영화와 동거를 시작한 이후로 이렇게 아름다운 영화를 본 적이 있던가.. 한시간 남짓한 짧은 상영 시간은, 밤의 끝자락을 잡고라도 함께 하고픈 연인과의 헤어짐 처럼 안타깝고, 눈물나게 아름다운 풍광에 마음을 홀라당 뺐긴 순결한 두 눈은 그 동안 묵묵히 참아 온 설움에 북받친 듯 빛나는 별 들을 쏟아냈다.
비양도(제주도의 우도 옆의 섬)에서만 촬영된 이 영화는 영화라기 보다는 한 폭의 풍경과 같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일체의 설명이나 일말의 의도를 찾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영화를 찍은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을 - 배우의 연기까지도 - 채집했을 뿐이라는 감독의 말처럼 이렇게 내러티브와 플롯에 마음 쓰지 않고, 편하게 객석에 앉아 눈과 마음이 호강시킬 수 있는 영화는 일찌기 본 적이 없다.
온통 파랗게 내 속을 채워주는 비양도 푸른 바다, 혈관이 터질듯 갑자기 분노하는 섬 마을 먹구름의 질주, 불안하도록 창백한 저녁 달의 모습, 그 속에 10년 전 애인을 기다리는 남자와 그를 바라보는 아름다운 소녀의 춤사위는 끊임없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이 세상이라는 곳은 '컴퓨터가 꾸는 꿈'일 지도 모른다는 슬픈 가위눌림으로부터 필자는 완전히 해방되고 있었다.
나는 자연의 자식이며 문명인이기 전에 인간이고, 죽어서도 자연으로 돌아가게 될 운명을 가진 '자연인' 이다.
Filmania CRO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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