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슈렉]에서 나를 당황시켰던 한장면.
덩키가 자신을 구해준 슈렉을 뒤따라가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러
자 슈렉은 노래를 그치라며 소리지르지요. 이후에도 덩키가 노래를 부를라
치면, 슈렉은 그가 한 소절도 부르기 전에 닥치라고 고함을 지릅니다. 결국
덩키는 노래는 부르지 못한채 음만 흥얼흥얼 허밍을 하지요.
이 장면이 저를 당황케 했던 까닭은, [슈렉]이 디즈니와는 전혀 다르게 이
야기를 펼쳐나가는 것을 너무나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방식 때문이었습니다.
디즈니의 캐릭터들이 극중에서 자주 노래를 불러대는데 비해서, [슈렉]의
캐릭터들은 노래를 부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예 노래를 부르지도 못하게
하지요. 이건 그냥 노래가 나오지 않는 것보다 더 노골적으로 '우린 노래
같은거 안불러!'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보다 저를
더 당황시켰던 이유가 있었어요.
그것은 바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을 뮤지컬화 시킨 장본인이 바로 제프리
카젠버그였기 때문입니다. 흔히 디즈니 애니메이션=뮤지컬 형식 이라고 생
각하기 쉽지만, 사실 이러한 등식은 89년 디즈니를 경영난의 나락으로부터
부활시키고 제프리 카젠버그를 애니메이션계의 마이더스의 손으로 만든 작
품인 [인어공주]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전의 디즈니 애니메이션들을
보면, 노래가 아예 나오지 않거나, 오프닝 크레딧과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노래까지 합해도 3~4곡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거든요. 그러다가 [인어공주]
서부터는 한편에 거의 20곡에 가까운 노래들이 나오기 시작했지요. 그러한
애니메이션의 뮤지컬화와 동화의 현대적 각색, 그리고 배경의 사실적 표현
등은 제프리 카젠버그가 이루어 놓은 일들이지요. 그런데 이를 사정없이 비
틀어버리고, 또 이작품에서 가장 많이-그리고 노골적으로 패러디되는 [미녀
와 야수] 또한 그가 손을 댄 작품 이었음을 생각해보면(사실 이작품 전체가
[미녀와 야수]의 뒤집기라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는 정말로 디즈니 회장
인 마이클 아이즈너에게 상당히 감정을 가지고 있었나 봅니다. 제자식이나
다름없는 작품들을 그렇게 사정없이 비틀다니요. 그러고보니 정말 파콰드
영주는 아이즈너 회장을 닮아보입니다. 특히 넓적한 얼굴과 코와 입부분을
보면 꽤 비슷해 보여요. 기분 탓인가?
이 파콰드라는 영주, 설정 자체도 아이즈너 회장과 비슷해 보입니다. 실제
로 94년 자리다툼에 밀려난 카젠버그가 디즈니를 나와서 드림웍스를 설립하
고난 뒤 디즈니의 작품들은 더이상 동화를 소재로 하고있지 않습니다. [포
카혼타스](94년) [노틀담의 꼽추](96년) [헤라클레스](97년) [뮬란](98년)
[타잔](99년) [쿠스코?쿠스코!](2000년) [아틀란티스](2001년) 까지, 여기
에 디즈니가 만들어온 3D애니메이션들 [토이스토리1,2] [벅스 라이프] [다
이노소어]를 봐도 동화를 소재로한 작품은 하나도 없군요. [슈렉]식의 표현
에 의하자면, '동화속 캐릭터들을 성에서 쫓아낸 것'이지요. 사실 그 목적
은 어린이들에게만 어필할 수 있는 동화라는 소재를 벗어나서 성인 관객들
을 끌어들여 보겠다는 속셈이었는데요. 다시금 [슈렉]식 표현을 빌리자면
'자신의 완벽한 왕국 건설을 위해 영주 파콰드가 동화속 캐릭터들을 쫓아
낸 것'이지요.
더군다나, 파콰드가 동화속 캐릭터를 쫓아내는 방식은 50년대 헐리우드를
휩쓸었던 매카시즘의 열풍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때당시 월트 디즈니는 앞
장서서 동료 영화인들을 FBI에 공산주의자로 고발했다죠. 특히 파콰드가 사
람모양의 쿠키를 고문해서 숨어있는 동화 캐릭터들을 찾아내는 장면은 꽤
낯 익네요.
아무래도 카젠버그는 디즈니에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는것 같습니다. 90년대
디즈니 부흥의 주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이클 아이즈너에게 밀려 2
인자의 자리를 지켜야 했지요. 사실 두사람은 84년에 디즈니에 같이 나란히
스카웃된 처지라, 어쩌면 그래서 더욱 분한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마지막 엔딩은 카젠버그가 너무 흥분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따지고 보면 파콰드 영주 또한 컴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그에게는 아무런 구원도 내려주지 않은채 지옥의 나락으로나 꺼져버
리라고 하는군요. 용에게 한입에 집어삼켜지던 그 장면은 제프리 카젠버그
의 속내를 보는것 같아 영화 전체에서 가장 섬찟한 장면이었습니다. 아이즈
너 회장, 그렇지 않아도 요즘 [진주만]과 [아틀란티스]의 연속 실패로 잠도
잘 안올텐데 이 작품을 보고나서는 밤마다 용에게 집어삼켜지는 악몽에 시
달리지 않을까요. 카젠버그의 얼굴을 한 용에게 말이죠.
그러나 카젠버그, 속은 시원할진 모르겠지만 그는 큰 실수를 한 겁니다. 파
콰드를 그의 컴플렉스에서 구원해 주는 길만이 그가 자신의 컴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었을 텐데요. 슈렉과 피오나는 자신들의 컴플렉스에
서 벗어나 결실을 맺었지만 카젠버그의 컴플렉스는 다음 작품까지 기다려봐
야 결과를 알것 같습니다. 그런데 혹시, 미처 벗어나지 못한 컴플렉스에서
보다 확실하게 벗어나기 위함이라면 [슈렉2]는 제발 말리고 싶군요. 그때쯤
되면 그건 히스테릭이지요. 그보다는, 이제 컴플렉스에서 벗어난 그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노선을 가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패러디와 비꼬기가 아
닌, 자신들의 세상, 자신들의 이야기를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라면 언제라
도 환영합니다.
카젠버그의 컴플렉스가 들어가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렉]은 정
말이지 워너 브라더스의 [아이언 자이언트]와 더불어 최고의 애니메이션 작
품이라 할만한 작품입니다. 진정한 패러디의 정수를 보여주는 한편으로 마
지막에는 여운과 감동을 주지요. 아이러니하게도, 이작품은 동화를 비틀고
있지만, 결국 마지막에 가서 온전한 동화의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마치 베
베 꼬아놓은 뫼비우스의 띠가 결국은 같은 면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말
이죠.
ps.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중에도 컴플렉스를 다룬 작품중 훌륭한 것이 많습
니다. [미녀와 야수]나 [피노키오]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의미를 오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야수가 왕자로 변하는 것이나 피노키오가 소년이 되는것은
컴플렉스를 극복한 끝에 보다 훌륭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슈렉]은 컴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그냥 받아들
이며 사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디즈니 작품 중에는 [아기 코끼
리 덤보]가 그와 유사한 경우인데요. 덤보는 그에서 더 나아가 아예 컴플렉
스를(단점을) 장점으로 바꿔 버리는 적극성을 발휘하지요. 이러한 생각들을
어느쪽이 더 훌륭하다라고는 말할수는 없겠죠. 이겨내거나 순응하는 것, 제
프리 카젠버그는 어떤것을 선택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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