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과 탈법의 기준이 때론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할 때가 있다. 벌레 한 마리 제대로 죽이지 못할 것 같은 선량한 사람이 어느날 절박한 상황에 몰려 탈법 행위를 저지르게 되는 영화는 수없이 많다.
정원이 딸린 저택에서 이웃과 차를 나누며 평온하게 사는 고운 아줌마 그레이스. 그녀에게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과 사업 실패라는 위기가 닥친다. 아끼던 집과 정원은 남의 손에 넘어갈 처지고, 급기야 남편의 정부까지 나타나 그녀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그러나 당장 꺼야 할 불은 마구 날라 오는 청구서들을 막는 일, 결국 그녀는 그녀의 팔을 걷고 나선다.
<오! 그레이스>는 갑작스럽게 경제적 위기에 처한 여인이 대마초 재배로 돌파구를 찾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국 영화다.
언뜻 한 여인의 처절한 수난사이거나, 대마초를 피우도록 부추기는 불온하기 그지 없는 영화가 아닌가 싶지만 이야기가 얼마 지나지 않아 관객들은 시골 마을의 순진한 사람들이 엮어내는 경쾌한 코미디란 것을 알게 된다.
주인공 그레이스가 '금보다 더 값나가는' 풀과 알콩달콩 대화하며 생의 온기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노라면 웃지 않을 수 없고 드라마의 분위기는 시종 따뜻하고 은은하다. <오! 그레이스>는 '풀몬티'로 대표되는 영국식 코미디 영화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다. 평범한 이웃들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그림으로서 웃음을 이끌어내는 점이야말로 영국 코미디의 특징, <오! 그레이스>에서는 그레이스가 어설픈 마약상 차림으로 런던 거리에서 직접 대마초 거래상과 접촉을 시도하는 장면이 백미이다. 온동네 사람들이 대마 연기에 취해 한마음으로 떠들썩한 난장판 파티를 벌이는 마지막 장면도 인상적이다. 다만 그레이스가 애써 기른 대마초를 서둘러 몽땅 불태워 버리는 행동에서는 억지가 보인다.
극이 진행되면 '그레이스'가 과연 대마초로 위기에서 탈출할 것인가가 관객들에게 궁금증을 자아낸다. 하지만 소재의 도발성에 비해 마지막 결론은 다소 진부하고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따뜻한 홍차 같고 때로는 상쾌한 탄산수 같은 이 영화는 삶의 통찰력까지 녹아 있다. 늘 밝은 그레이스가 바닷가에서 매튜와 함께 대마초를 피우며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웃는 모습에선 삶의 우울이 가득하다. 힘들지만 살아가야 하는 삶. 눈물을 흘리기보다 웃음을 짓는 것이 우리의 갈 길이라고 <오! 그레이스>는 토닥인다.
'비밀과 거짓말'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블렌다 블레신'의 연기는 나이답지 않은 발랄함과 편안한 여유가 조화를 이뤄 <오! 그레이스>에서 다시 한번 그의 연기의 진면목을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