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에서 마지막 고난을 그린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감독 멜 깁슨)는 영화를 보고 난 후에 개운하지 않은 느낌이 드는 영화이다. 함께 본 친구는 공포물 같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친구는 지나친 가학적 영상으로 인해 속이 불편하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내가 본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실제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그대로 재현하긴 했으나 감독으로서 멜 깁슨의 영화적 내러티브와 사건 전개의 개연성 부족을 지나치게 시각적인 이미지로 덮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기독교인으로서 일부에선 찬사를 보내기도 하지만, 내가 그 동안 가졌던 기독교 신앙의 범주를 벗어나는 모습이 다분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충분히 이슈화 될 수 있는 문제작이다. 물론, 한 인간으로서 받아야 하는 고난에 촛점을 맞췄다고는 하지만 과연 그렇게까지 자극적일 필요가 있었을까.
영화에서 소소한 사건의 전개에 개연성을 부여하고 절제된 영상미를 통해서 관객에게 의미나 감동을 전달하면 되는 것인데, 이 영화는 최근 몇 해 동안 국내 관객에게 외면받은 헐리우드 대작들이나 국내 블록버스터가 개연성이 부족한 시나리오의 약점을 화려한 스펙타클로 포장한 것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단지, 거대한 스펙터클이 갈퀴나 채찍 등으로 매질을 당하는 예수 그리스도(제임스 카비젤 분)의 잔혹한 모습으로 바뀌었을 뿐 아무리 복음서를 토대로 했다지만 지나친 가학적인 영상으로 치장한 이 작품을 기독교 본래 '구원의 메시지'라 하기엔 너무도 기복적인 요소가 많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자신이 죽는 모습을 스스로 지켜봐야 하는 십자가 형의 잔혹성은 영화 <벤허>나 <십계> 등 과거의 종교 영화와 달리 가학적인 공포, 폭력의 미학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기독교는 결코 자신이 노력을 해서 선한 일을 하거나, 또는 자신이 고난을 받는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그러한 기복 신앙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주어진 은혜에 감사하고 기도, 묵상 등을 행하면 되는 것이고 구원이나 은혜는 절대자의 몫이다.
하지만, 우리 중에는 안식일에 금욕을 하면 그 만큼의 구원이나 복이 돌아올 것을 믿는 어리석음이 있다. 이번 영화에서 감독이 그리려하는 구원의 메시지는 복음서를 잘못 해석한 것이라 할 수 밖에..
이 영화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기도 시간인 오후 3시경에 가장 인상적인 말 한마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이 외마디를 담긴다. 멜 깁슨 감독이 '예수 그리스도가 마지막 고난의 순간에 남긴 이 한마디에 촛점을 맞춰 인간적인 고뇌를 그려냈다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러면, 그가 남긴 외마디는 무엇을 뜻하는 것이었을까.
첫째, '어찌하여'라는 부르짖음에는 절대자 하나님을 향한 저항이자 도전의 표시이다. 견디기 힘든 육체의 고통을 당하면서 '정의'에 대한 질문이자 절대자를 향한 고백이다.
둘째, 이 땅 위에 고난 당하는 의인들에 대한 연대성을 나타낸다. 그들의 억울한 한 맺힘을 십자가에 그대로 수용하며 '내가 너희를 쉬게 할 것이다'라는 소망이 함축되어 있다.
세째, 마지막 고난을 당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외마디에는 단순한 질문이 아닌 절대자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이 함축된 기도이기도 하다.
네째, 과거 구약 시대의 의인과 달리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여, 죄악 많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나를 고통 속에 두십니까'라는 역설적인 질문을 통해 그 앞에서 절대 능력에 대해 조롱하는 군중들과 절대자를 향해 기도를 요청을 하고 있다.
예수는 자신의 죽음으로써 절대자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용서'를 깨닫게 되고, 절대자는 자신의 아들이 십자가 고통에 인내하면서 세상 속에 인간을 생명의 자리에 새롭게 하도록 하고 있다.
영화 속 로마의 제독 빌라도는 십자가형에 처하는 데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제사장이나 군중들은 공포감이 더 할수록 더 포악하게 돌변해 결국 십자가형을 명하게 된다. 이는 스스로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여기는 유대인들의 교만과 함께 군중심리가 그들로 아여금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짓게 만든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눈시울이 적셔왔지만 그를 둘러싼 주변인물의 감정선이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의 눈물은 허락하지 않고 역겨운 구토 증세가 일어난다. 성모 마리아와 제자들의 행동과 감정은 이 영화가 기독교 버전(국내 상영) 외에도 두 가지 버전을 더 제작했다는 흔적을 보이기라도 하듯 메말라 있다.
영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해 십자가를 들고 가는 남자는 인간에게 남겨진 마지막 양심이었나? 하지만, 골고다 언덕에 이를 때 갑자기 영화 속에서 사라져 버린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 앞에 물을 떠주는 여인과 당초 기대했던 막달라 마리아(모니카 벨루치)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이적 가운데 한 에피소드 외엔 도대체 왜 영화 속에 필요했던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만, 이러한 가학적 영상은 고난 속에 절대자에 대한 믿음과 고난 가운데 있는 의인에 동참하면서 십자가에 모두 용납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는 외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 '다 이루었도다'라며 고통과 아픔 속에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절대자의 인간 죄악에 대한 사랑과 용서로 포용하는 것으로 오늘의 나를 반추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 정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