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영화 <집으로…>의 생각지도 않은 성공 이후, 우리나라의 영화 판은 ‘소박함’을 미덕으로 하는 소위 촌스러운 영화, 작은 영화들의 본격적인 상업화가 형성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화려하지도 세련되지도 않지만 시골의 정겨움과 풋풋한 인심으로 따스함을 전달해 주었던 <선생 김봉두>나 <보리울의 여름>, 못살고 어려웠던 6,70년대의 촌스러운 모습이지만 그런 가난까지도 아련한 그리움으로 느껴지게 하는 <해적, 디스코왕 되다>나 <묻지마 패밀리> 그리고 최근작 <말죽거리 잔혹사>에 이르기까지 상업적이지 않을 것 같은 ‘시골’이나 ‘복고’ 라는 코드는 어느새 우리 영화의 새로운 흥행 코드로 자리잡아 많은 영화들을 양산해 내고 있다.
그런 코드들이 관객들로부터 공감대를 형성하며 사랑을 받는 이유는, 그런 코드들이 흥행에 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이유는 그 영화가 가지는 ‘향수’ 또는 ‘순수’의 이미지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각박하고 힘겨운 현대 도시생활에 찌들어 잃어버릴 수 밖에 없었던 순수를 아직까지도 간직하고 있는 시골이기에, 성인이 되어 순수함을 잃어버렸지만 그래도 한때는 순수함을 간직했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기에 시골의 정겨움이나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소재가 있는 영화들은 늘 우리에게 따뜻함과 아련함을 전달해 주었던 것 같다.
그런 와중에 또 한편의 소박함을 무기로 한, 향수를 자극하는 영화가 완성되어 눈길을 끈다. 영화 <아홉살 인생>. 영화는 1970년대 가난한 산골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9살의 인생을 진지(?)하게 살아가는 한 시골소년 여민의 일상을 통해 우리 내 과거를, 어린 시절을 이야기한다. 넉넉하거나 풍족하지는 않았던, 돌이켜보면 궁상 맞고 지지리도 가난했던 그 시절이지만 그때가 아득하고 그립게 느껴지는 건, 따뜻함과 아련함이 묻어 나는 건 그때처럼 단순한 마음으로 순수하게 인생(?)을 살았던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간의, 친구와의, 이웃간의 정이 진실하고 아름다웠던, 잇속을 따질 줄도 남을 해칠 줄 모르는 순수한 마음이 있었던, 가난하지만 나눌 줄 알고, 상대를 먼저 생각할 줄 알았던 서로를 배려하고 아끼는 모습만이 있는 지금 생각하면 우리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가 싶은 70년대의 어느 한 산골 시골마을의 모습을 담은 영화 <아홉살 인생>은 순수했던 그때를 생각나게 해서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어서 무작정 사랑스럽다. 한편 어른이 되어버린 나를 이젠 속세에 찌들어 버린 나를 되돌아보게 해서 한편 씁쓸하다.
어린이가 주인공인 어른을 위한 동화.
열 살이 채 안 된 아이들이 대거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어린 그들의 소소한 일상이 전부인 영화는 아이들 영화인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실상은 어른들을 위한 환타지 동화다. 그룹을 지어 친구들과 동네를 누비고, 일기장을 배끼다 선생님에게 들키고 벌을 받고, 짝꿍과 책상절반을 사이에 두고 영역다툼을 하고, 친구들과 교실청소를 하고 소풍 때 지적을 하면서 하던 장기자랑, 학급내의 도난사고 때문에 단체로 벌을 서던 일 등 영화는 나의 우리의 일반적인 어린 시절을 고스란히 그리고 생생히 담아내고 있다. 여기에 한번쯤 있었을 법한 어릴 적 여자친구와의 삼각관계가 동반된 풋풋한 연애 담까지, 영화는 어린 시절에 한번쯤 겪었을 법한 에피소드들과 고만한 친구들의 오묘한 감정(사랑(?), 질투, 시기)을 세심하게 표현해 낸다. 그런 어린 친구들의 모습은 70년대 가난한 시골마을에서 자란 어린이들에게 국한된 모습이 아닌 모든 아이들의 평범한 일반적인 모습으로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포괄한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이 너무도 평범한 그들의 모습이 일반적인 어린이들의 모습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70년대를 어린 시절로 보낸 현재의 20대 후반의 성인들에게는 이 영화는 남다른 감회의 느낌으로 다가올 듯하다.
내가 했었던 놀이가, 나의 어린 시절 행했던 행동들과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담긴 영화 속 아이들의 모습은 이제는 성인이 된 현재의 나를 잊고 동심으로 그때의 따뜻했던 추억 속으로 잠시 빠져드는 계기를 만든다. 아무런 근심도, 속내를 감출 필요도 없었던 단순함이 전부였던 착했던 그 ‘시절’이 못내 그리워, 이젠 세상살이에 절어 그때의 그 모습이 마치 환타지 동화에서나 존재하는 비현실적인 세계가 되어버린 것이 안타까워 이 영화가 더 반갑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작은 어른들의 풋풋한 세상사.
딱 여민이 눈높이의, 여민가 살아왔던 아홉 해 인생만큼의 높이와 깊이로 써내려 간 <아홉 살 인생>은 작은 어른들의 세상을 풋풋하게 반영한다.
가난한 부모님을 배려할 줄 아는 더 가난한 친구와 밥을 나누어먹을 줄 아는, 어머니의 선물을 위해 용돈을 벌어 모을 줄 아는 의젓하고 어른스런 아들이, 갑작스럽게 다가온 사랑의 감정을 서툴게 우직하게 표현하는 소년이, 소년의 감정이 반갑지만 내숭으로 화답하는 새침데기 소녀의 모습이 그런 그들을 질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또 다른 소녀의 풋풋한 삼각관계가 담긴, 친구들간에 있을 수 있는 작은 시기와 오해 그리고 화해를 담고 있는 영화 속 이들의 세상은 일면 어른들의 비정한 세상을 일부 반영한 듯 그들의 작은 마음에 상처를 남기기도 하지만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하려 하고 남의 잘못을 꾸짖고 또 용기 있게 진실을 밝힐 줄 아는 당당한 그들의 모습은 이기적이고 계산적이며 배려하지 못하는 어른들을 훈계하고 가르치는 느낌이다. 서툴더라도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진심으로 넓은 포용력으로 세상을 살아가면 세상살기가 훨씬 수월할 거라고 일침을 놓는 것 같다.
마냥 반갑고 흐뭇하고 소중해서 보는 내내 따뜻함과 흐뭇함이 느껴지는 영화<아홉살 인생>이지만 70년대 산골 소년소녀의 모습으로 거듭나 리얼한 연기를 보여주는 깜찍한 아역배우들과 자신을 던져버린 듯 모습 그 자체만으로 가난한 시골의 촌구석의 아저씨, 아줌마의 자연스러움이 배어나는 성인 조연 연기자들의 모습이 잘 어우러진 영화 <아홉살 인생>이지만 지나치게 아이들의 모습에만 집착하고 그들의 깜찍함만을 무기화하려 했던 영화는 후반으로 진행될수록 허술해지는 구성으로 많은 아쉬움을 준다.
꽤 괜찮게 배치된 성인 조연 연기자들의 모습은 영화의 후반으로 갈수록 그 존재가치를 잃고 표류하며 어린 친구들의 들러리로 전락하게 됨을 느낀다. 여민의 어른스러움과 의젓함의 근간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신 착한 부모님, 여민을 포함한 어린 친구들의 생활 대부분을 보내는 학교생활을 이끌어주시는 담임 선생님, 동네 아저씨 아주머니들과 사랑에 아파하는 팔봉이 형님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의 에피소드들에 소소히 등장, 그들의 곁에서 든든하고 묵묵히 후원자구실을 하는 그들의 모습이 짧지만 꽤나 인상적이게 느껴지지만 그 모습은 효과적이고 인상적인 등장일 뿐 구체적인 성격이 부여되어 있지 않고 있어서 그들의 행동양식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지나치게 두드러진 아이들의 발칙한(?)모습에 묻혀 흐지부지 희석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래서 드라마는 여민의 인성이 형성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는 아픔을 통한 성장 담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기 보다 그저 어린 시절에 있을 수 있는 그 시절 소년, 소녀들에게 있을 수 있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나열식으로 쭈욱 늘어 놓아 관객의 감성을 자극(?)하기에만 급급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꽉 차고 알찬 드라마라는 느낌을 받는다기 보다는 극이 진행될수록 구성의 허점 같은 것이 보이며 어딘가 부족하다고 내용적으로는 조금은 아쉽다는 느낌까지 든다.
지나치게 어린 아이들의 깜찍한 모습만을 강조하는 모습이 70년대의 찢어지게 가난한 분위기를 아련한 추억처럼 아름답게 형상화하는 극의 분위기가 소박하고 촌스러운 영화에서 자칫 부족할 상업적인 면을 보강하기 위한 안간힘 같은 느껴져 조금은 안타깝기까지 하다.
어쩌면 <아홉살 인생>은 또 한번의 <집으로…> 신화에 도전하고 있는 듯하다.
시골이라는, 1970년대라는 시,공간을 배경으로 표면적으로는 소박하고 촌스럽고 초라하기만 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순수함과 진실함, 어린 시절의 아련한 향수 같은 것이 담뿍 느껴지는 그래서 보는 내내 흐뭇함과 따스함이 느껴지는 <집으로…>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 영화는 충분히 자극(?)적이고 매력 있으며 관객을 끄는 힘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어쩌면 <집으로> 만큼의 공감을 관객의 지지를 얻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지나친 복고분위기나 촌스러움이, 어린 친구들의 부각이 조금 상업적으로 느껴지기는 하지만, 극의 구성이나 드라마의 완성도에 아쉬움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영화자체가 표방하는 순수 때문에 극중 아이들의 해맑고 깜찍한 모습 때문에 영화는 충분히 사랑스럽고 예쁘며 볼만하다. 영화가 전달하는 아련하고 따뜻한 추억 바이러스로 힘겨운 세상을 잠시 아주 잠시 잊고 어린 시절의 따뜻한 기억으로 빠져드는 행복한 일탈을 느끼게 되어 그냥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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