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진 배우, 감독이 합심한 흔적도 없고, 그렇다고 눈요기를 위하여 화려한 CG로 무장한 블록버스터도 아닌 영화가 있다면, 관객들의 주머니에서 선뜻 7,000원을 꺼내기엔 한번 쯤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가 있다. 이걸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냥 비디오나 불법 동영상으로 봐도 큰 지장 없겠지.. 라고 생각되어지는 영화들이 있다. 이 모든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영화가 곧 우리에게 선보여진다. 제목 <허니>.. 그것 참 사랑스럽기보다는 유치 뽕짝, 남녀간의 그저 그런 로맨스 물이거니 미리 짐작해 버리기 딱 좋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의 머릿속에 입력된 잘못된 정보는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할 뿐만 아니라, 영화의 다양성을 망각하게 만드는 바이러스에게 해킹당했다고 필자가 말한다면, 분명 오버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겠다. 오히려 그 영화적 다양성의 딜레마에 이 영화를 찾을 관객들.. 이 글을 읽는 네티즌들에게 알바 아니냐며, 비난을 받을 수도 있겠다.
그 영화적 다양성이라 함은, 분명 관객들에게 자기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는 선택권도 포함되어 있을 터이니, 이렇게 우악스럽게 ‘이 영화 꼭 봐라.. 후회하지 않는다.’ 라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 필자 역시 싫어하는 장르는 죽어도 안 보니까.. 비디오는커녕, 불법 동영상 파일로 조차도 안 건드린다.
필자가 한참 썰을 풀 영화 <허니>는 위와 같이 말한,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모든 단점이라 생각되어질 만한 모든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미리 얘기하지 못한 또 하나의 이유인 멀티플렉스 극장의 스크린 대다수는 어느 한 영화에 독점되어 상영된다는 하소연은 두말하면 입이 아프니까 그만 하기로 하자. 그나마 이 영화는 직배영화이기에 체면치레(?) 정도의 극장 상영을 준비하고 있으니까..
본론으로 들어가.. 영화의 줄거리를 잠깐 소개하고 계속 영화를 말하겠다.
뉴욕 브롱스 헌츠포인트의 청소년 센터에서 아이들에게 힙합을 가르치는 ‘허니 다니엘즈 (제시카 엘바 분)’는 프로 안무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여러 차레 오디션을 봤지만 매니저도 연줄도 없어 매번 낙방의 고배를 마신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그녀의 안무 실력을 보게 된 유명한 뮤직 비디오 감독이 그녀를 찾아온다. 뮤직 비디오 감독의 후원으로 유명 가수들의 뮤직 비디오 안무를 맡으며 스타급 안무가로 떠오른 ‘허니’는 감독을 설득, 뮤직 비디오 촬영 때 자신의 학생들을 출연시키기로 한다. 불우한 환경에서 꿈을 잃고 사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시련이 다가온다. 감독은 ‘허니’에게 흑심을 품고 있었고 그러한 그의 요구를 거절하자 그는 아이들의 출연 약속을 취소해 버리고 ‘허니’를 해고한다. 아이들에게 좌절과 절망 대신에 맘껏 춤을 출 댄스 연습실을 마련하여 희망과 꿈을 심어 주려고 했던 그녀의 꿈이 수포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좌절 하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자선 댄스 공연을 준비하는데...
이 줄거리를 읽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을 검색하여 이미지 컷이나 포스터 비주얼을 찾아본다면, 역시나..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포스터 비주얼의 약세와 아는 배우 한명도 안나오는 원초적인 영화 정보에서부터 점수를 까먹고 들어가는 것이 필자에겐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그러나 의심의 눈초리를 걷고 예고편을 살펴본다면 뜻밖의 수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Mtv 세대인 10대부터 20대 초중반의 관객들에게 조금이나마 어필할 수 있는 흥겨운 리듬과 역동적인 율동이 맛보기로 비춰지고 있을 때 즈음에는 어느 정도 까먹었던 점수를 만회하여 주는 요인이라 생각되어지지만, 어디까지나 필자의 사견임을 밝혀두고 영화를 칭찬하겠다
필자는 이 영화를 대단히 재밌게 봤다. 주연 배우 이름조차, 영화를 보기 전에 전단지 내용과 보고난 후, 조금은 기억을 되짚어 어디 어디 영화에 나왔다는 것만이 전부였었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힘이 있었고, 희망이 있었다. 적어도 요즘같이 ‘이대로가 좋아요’ 하면서 복지부동의 자세로 필자에게 선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어떤 필요악 같은 현실에서, 이 영화는 청량음료처럼 쿨하게 필자의 목마름을 해소시켜 주었다.
돈과 권력.. 더없이 편안한 삶이 ‘허니’.. 그녀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녀는 개인이 누릴 수 있는 그 모든 돈, 권력, 명예보다 인간이 살아가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인 사회적 공동체로서 부대낌을 느낄 수 있는 ‘희망’이라는 삶을 선택한다. 참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것도 22살의 나이에 (극중에서) 재능과 능력, 미모까지 겸비한 그녀가 그렇게 선택하기까지는... 그리고 그 선택의 순간에서 어김없이 몰아치는 시린 고통속에서 다시금 자신을 발견하는 이야기 구조는 정말, 이제까지 보아온 여느 영화와 다를 바 없는 플롯이었으나, 필자는 ‘허니’만큼이나 이 영화에서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비단..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역동적인 리듬의 힙합 댄스가 보여주는 그 ‘매직’같은 흡입력과 아직 이 사회는 살아갈 만한 따뜻한 체취가 있다는 ‘희망’을 제시하는 그 느낌이 필자를 몰입하게 만들었다.
요즘.. 필자는 맘이 뒤숭숭하다. 현실 세계에서 펼쳐지는 꼴불견 같은 일들도 그렇거니와 그렇다고 영화 한편으로 목마름이 해소되고, 영화같은 삶을 꿈꾸기엔 세상은 조금 더 냉정하기 때문에 뜬구름 잡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허니>같이 늘 긍정적인 삶을 통하여 꾸밈없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고, 자기 자신만이 살아가는 세상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적인 모습에서 그녀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딱 93분만 투자하자.. 세상을 잊기엔 짧은 시간일 수 있으나, 어두운 극장에서 한 줄기 빛으로 쏘아지는 스크린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엉덩이가 들썩들썩, 어깨춤이 절로.. 그리고 극중에서 나오는 흥겨운 노래 가락에 맞춰 콧노래로 따라 부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시간이 되도록 ‘허니’가 이끌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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