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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n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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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2-24 오전 1:20: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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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명작-내 삶의 불후의 명작을 위하여...
어렸을 때 나의 꿈은 곤충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유독 동물을 좋아하고, 그 중에도 곤충을 무척 좋아했던 나는 곤충이 나오는 TV프로그램은 빼놓지 않고 보았으며, 곤충과 관련된 책이라던가, 사진집 그리고, 만화 등 곤충에 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관심을 보였다. 집에서 조금만 나가면 풀밭이나 조그만 산이 있던 곳에서 곤충 채집이라는 이름으로 잡아 못살게 군 곤충들도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학년이 높아질수록 주위 환경이라든가, 성적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그 꿈은 점차 희미해지고, 지금 공부하고 있는 것은 어렸을 땐 전혀 생각도 못하던 분야이다. 물론, 지금 공부하고 있는 것이 전혀 내게 맞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어릴 때의 그 꿈을 난 잊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이젠 비록 이룰 수 없는 꿈일지라도..
비단 나뿐이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것이 남들 보기에 크고 멋져 보이기도 하고, 때론 작고 소박해 보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 꿈을 가진 자신에게는 평생 이루고픈 자신만의 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역시 꿈일 뿐이다. 물론 자신의 꿈을 위해 평생을 바쳐 결국 이뤄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의 가슴속에는 이루지 못할 꿈, 하지만 언젠가는 꼭 이루고싶은 그런 소망이 하나씩 숨쉬고 있다. 그 꿈이 설령 절대 이룰 수 없는 꿈일 지라도 그것을 품고 있음으로 해서 이 세상을 헤쳐나갈 힘을 얻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영화 "불후의 명작" 주인공 인기(박중훈)역시 그런 사람중의 하나이다. 언젠가는 자신의 "불후의 명작"을 만들겠다는 꿈을 안고 살아가는 영화감독이지만, 실제로는 비디오용 에로영화를 만드는 감독일 뿐이다. 큰 꿈을 가지고 미국 유학도 다녀왔지만, 현실의 벽은 그 유학을 마치지 못한 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하고, 그 현실에 발목이 잡혀 당분간이라는 단서로 에로영화를 만든다. 그에게 에로 영화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발판에 지나지 않는다. 잠시의 아르바이트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그의 사정을 알게된 선배로부터 여경(송윤아)이라는 작가를 소개받으면서 인기의 꿈은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한다. 여경 역시 자신의 작품을 쓰고자하는 꿈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현재는 몇몇 유명인사들의 자서전을 대필해주는 대필 작가일 뿐이다. 그런 두 사람이 만나서 인기의 "불후의 명작"이 될 작품을 쓰면서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인기와 여경이 만드는 영화의 내용 역시 이루지 못할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서커스단 삐에로의 이야기다. 극중에서 삐에로는 단장의 딸을 사랑하지만, 이미 단장 딸의 마음은 공중 곡예를 하는 선배에게 가 있다. 하지만, 인기와 능력을 지닌 그 선배는 좀 더 앞날이 보장되는 다른 서커스단으로 옮기게 되고 삐에로가 속한 서커스단은 특별한 곡예를 상실한 채 하루하루 망해간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삐에로는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해결점과 동시에 단장 딸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공중 곡예에 도전해 힘차게 공중을 날아오르지만, 맞잡아야 하는 단장 딸의 손을 벗어나게 되고, 현실은 안전장치 없는 맨땅으로 떨어지고 만다.
어쩌면 그들이 만든 시나리오의 내용은 인기와 여경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하다. 화려하게 주목을 받으면서 창공으로 날아오르고 싶지만, 결국 그를 기다리는 것은 어머님이 유산으로 남겨놓은 많은 빚이라는 현실이었고, 그 현실은 그의 발목을 잡은 채 놔주질 않는다.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던 에로영화는 그를 에로영화감독이라는 족쇄로 묶어버린 채 자신의 영화도 직접 만들지 못하게 만든다. 삶의 희망이 된 여경에 대한 사랑은 점점 커갔지만 나중에 알게된, 여경이 바라보는 곳은 또 다른 사람이었다.
영화가 상영되는 시간동안 평범한 꿈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그것을 이루지 못하고, 현실에 부딪히며 깨어지며, 또 쓰러지며 살아가는 나를 보고 있었다. 그것은 전혀 희망적이거나 밝은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비참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품게 하는, 그런 이야기였다.
영화 불후의 명작은 박중훈이 많이 보여줬던 코메디 영화도 아니다. 그렇다고 내세울만한 사랑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현란한 특수효과도, 애끓는 슬픔이 있는 영화도 아니었다. 그저 현실에 안주하고 살아가야하는, 하지만 자신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시대의 소시민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박중훈이나 송윤아의 연기 역시 튀지도 않고, 어색하지도 않게, 딱 편안할 만큼 영화에 녹아들었고, 그들의 이야기 또한 내 품속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옥의 티를 꼬집으라면 중간 중간 나타나는 어색한 웃음(인기가 빌린 고물에 가까운 자동차 모습이나 어설픈 코믹연기 등)이라든지, 뻔히 드러나는 합성으로 표현한 반딧불(그 역할은 충분히 이해한다 해도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드는)의 모습 등이 영화 내내 흐르는 잔잔한 흐름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잠시 방해를 하곤 했지만, 그 잔잔한 흐름은 끝까지 이어졌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만의 꿈을 키워가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 꿈은 자신에게 있어서는 필생의 사업이요 불후의 명작이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꿈을 안고 살아가기에 세상 속의 여러 힘든 현실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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