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영화에, 그 파격성(?)까지 더해져, 정말 올드보이에 대한 의견들이 분분하네요. 비평이라기보다는, 그냥 영화를 보면서 받은 제 느낌을 적어봅니다.
일단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영화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흡인력 있는 연출. (특히 오대수가 숨겨진 과거를 기억하는 장면.) "복수극"에 "비극"인 이야기에 어울리면서도 관객에게 웃음을 주는 대사들. 그리고 영화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음악까지 말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요.
"왜 너를 가뒀는지가 아니라, 왜 너를 풀어줬는지를 생각했어야지."
이 말은 이우진이 오대수에게 하는 말이지만, 실은 감독이 관객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주인공 오대수의 의문점에 관객의 초점이 맞춰지는 동안 잊혀져 있던 이우진의 시점으로 풀어지는 영화 후반부의 "진짜 복수", 15년 감금의 "진짜 목적"은 관객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고 봅니다. 치밀하게 짜여진 구성.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 만들어졌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가 "재미있었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제 감정은 오히려 무서움, 불쾌함, 그리고 찝찝함. 뭐 그런 종류의 것들이었으니까요.
반전이 있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쪽으로는 생각도 못한 채 그저 오대수와 미도의 감정에 몰입하여 영화 보는 내내 숨을 졸여가던 저로서는 (제가 워낙 단순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영화의 클라이막스 부분, 죽이고 싶어하던 자의 발에 매달려 개의 흉내를 내던 오대수의 처절함보다, 그를 보고 울음에 가까운 웃음을 터트리던 우진이 더 끔찍스러웠습니다. 어떻게 한 사람을 저런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겁니다.
제 주변에서 이 영화를 본 사람들 거의 대부분은 "오대수가 왜 그렇게까지 당했어야 했나" 라는 의문과 함께 "자신의 잘못까지 오대수에게 뒤집어씌워 복수에 눈이 먼 이우진이 잘못했다, (또는 재수없다)" 등의 감상을 말하더군요. 심지어 "돈 많은 자에게 말을 함부로 하면 안된다" 가 이 영화의 교훈이라는 반농담(?)과 함께. -_-;
저의 느낌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랑한 누이의 죽음에 대한 이우진의 복수의 집념은 그의 평생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고, 아무리 상처가 깊었다지만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이우진" 이기 때문입니다. "이우진"은 그런 캐릭터로 "설정"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끔찍한 캐릭터가 영화 속에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물론 아무한테나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광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감독이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도 바로 그 광기가 아니었을까요. 논리적으로는 절대 설명될 수 없는, 복수심이라는 광기. 그것이 얼마나 사람을 끔찍한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사람을 잔인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2시간 남짓 본 후에는 정말 무섭더군요.
오대수가 왜 그렇게까지 당했어야 했나, 차라리 직접 이우진을 죽여 한풀이에 도움이라도 됐으면 안되었나 하는 원망도 생깁니다만, 그랬다면 이 영화가 이렇게까지 소름끼치진 않았을 듯 하네요. 세상일이란 것이, 무조건 주는 것만큼 받게 되어 있지는 않으니까요. "자신만의 복수" 를 실행한 이우진으로 인해 삶이 파멸되다시피 한 오대수의 모습은, 상대적으로 이우진의 광기를 더 부각시킵니다. (돈 많고 힘있는 이우진의 복수를 보며 "빈익빈 부익부" 의 부당함을 느낀 건 어쩔 수 없지만 말이지요. -_-;)
그래도 마지막에 조금 위안이 된 건, 미도의 말이었습니다.
"사랑해요, 아저씨."
영화를 본 사람들과 꽤 의견이 분분했던 것인데, 개인적으로, 저는 미도가 자신의 오대수의 딸이라는 것을 알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의 첫 부분, 오대수는 그의 4살박이 딸에게 술에 취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아빠 곧 갈게. 기다려." 라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영화의 끝 부분, 그는 미도에게 울음섞인(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절박하고 무서웠던) 목소리로 내가 곧 갈테니 기다리라고 하지요. 어쩌면, 미도는 그 때 옛기억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우진은 미도에게 앨범을 보여주지 말라고 명령했지만, 앨범을 보았을지도 모르고요. (저는 만일 미도가 진실을 알았다면 전자에 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우진은 오대수를 마지막으로 보며 "누나와 나는 서로를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사랑했어." 라고 말하지요. 어쩌면 미도와 오대수도(적어도 미도는) 그랬을지도 모르겠네요. 너무 낭만적인 추측이긴 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저당잡혀 가장 참혹한 복수를 감행한 이우진과 기억을 최면술로 지우고 벙어리가 된 채 애인이자 딸인 미도옆에 남은 오대수. 둘 중 누가 더 불행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미도의 사랑이 기억을 감당못해 무너져버린 오대수의 위안이 될 거라는 생각은 듭니다.
쓰다보니 오대수 동정론이 되어버렸네요 -_-; 사실 저는 주인공 편입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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