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올드보이>를 수작으로 꼽으시는 분위기네요. 개봉한지 2주가 지났지만, 뒤늦게 평을 적어봅니다.
<올드보이> 저도 물론 좋게 봤습니다. 그리고 기막힌 시나리오라는 것도 인정하고, 감독의 타이트한 연출력도 높이 사주고 싶구요.
하지만 전 <올드보이>를 보며 솔직히 박찬욱 감독에게 조금 실망했습니다.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을 워낙 전율이 흐를 정도로 좋게 봤기때문에, 이번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무척 높았던것에 비하면 영화관을 나서는 발걸음은 불편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영화가 불편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불편한 것으로 치자면 <복수는 나의 것>도 못지않았으니깐요. 전 워낙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즐기는 잡식성 멧돼지형이라 불편한 영화를 보면서도 그 어떤 감흥에 짜릿함을 느끼거든요. 본인이 느낀 불편함이라는 것은 일종의 찝찝함이라고나 할까요.
어쨌든 <올드보이>를 개봉 첫주 금요일 저녁에 봤었는데요. 언론과 마케팅을 통해 시끌벅적했던 반전이 너무너무 궁금했고, 조금이라도 늦게 영화를 보다보면 이미 반전이 소문을 통해서 알려질 것 같은 두려움(?)에 하루라도 빨리 보려고 극장으로 냉큼 달려갔었죠.
얼마전 <아이덴티티>를 저랑 같이 본 2명의 친구들과 <아이덴티티>처럼 기막힌 반전을 예상하며 가슴도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극장안으로 들어섰죠. 오프닝 크레딧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전 솔직히 숨을 제대로 쉴수가 없을 정도로 화면에 푹 빠져들고 있었죠. 그리고 그 반전이라는 것이 등장하기 전까지 정말 열심히 화면을 봤더랬죠.
하지만 반전을 안 순간, 물론 대충 짐작은 했었지만...허탈감과 아쉬움에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니야...이게 반전이 아닐꺼야...라면서 끝까지 화면을 응시했지만 결국 그게 전부더군요. 반전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저를 보면서 다른 분들은 이런 말씀을 하실지도 모르죠. 이 영화는 반전이 다가 아니며, 또한 너무 반전에만 집착해서 봤기 때문에 아쉬움이 있을 것이다라구요.
어쨌든, 일단 반전이라는 것부터 비판해볼까요. 저는 단순히 근친상간이라는 소재 자체를 비판하는 것보다는 박찬욱 감독이 복수라는 주제에서 왜 이런 소재를 다루어야 했었나는 비판을 제기하고 싶은데요.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기위해 무리하게 근친상간이라는 소재를 끌어다 썼다는 혐의를 지우기 어렵더라구요. 그리고 마치 이런 소재를 이용해서 영화를 만든게 대단하게 느껴지는 영화의 분위기가 싫었다는거죠. 다시말하자면 영화를 제작하는 단계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박찬욱 감독이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영화를 내어놓았다는 것이죠.
또한 이 영화가 너무 비현실적인 설정이라는데 문제가 있는것 같았습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아마도 만화를 원작(그것도 일본만화)으로 하다보니 만화적 상상력만 가득 채운 영화가 되었다는거죠. 물론 관객이 영화에 흡입하게 만드는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이 있었기 때문에 관객들이 영화속 주인공들의 삶에 개입할 수 있었지만, 현실을 보고 이 영화를 판단한다면 허구와 과장으로 점철된 영화라는 느낌만 가득할 뿐입니다.
이런 비현실적인 설정에 영향을 받아 주인공들의 연기 또한 전형적으로 비춰질 수 밖에 없더라구요. 이 영화를 보면서 다들 최민식의 연기력에 감탄을 하는데, 물론 최민식, 연기 진짜 대단합니다. 그리고 <올드보이>에서도 그 면모가 유감없이 발휘되었구요. 하지만 이들의 연기는 이들이 뽑아낸 것이 아니라 감독이 뽑아낸 것이라고 봅니다. 애초 시나리오상에 최민식의 연기는 독백체와 악을쓰는(일명 내지르는) 연기를 하게 되어있었죠. 최민식 자리에 독백체와 악쓰는 연기를 이미 선보였던 설경구나 조재현을 갔다놓아도 그럴듯한 그림이 그려지는 것도 이 영화가 배우들의 영화이기보다는 순전히 감독의 영화라는 표현이 더 맞을것 같습니다.
<올드보이>의 최민식의 연기를 <살인의 추억>에 송강호와 비교해볼까요. 앞서 설명했듯이 최민식은 악쓰는 연기, 연기를 위한 연기를 했다는 혐의를 지우기 힘든 반면, 송강호는 어떤가요? 물론 <살인의 추억>이 실화이기 때문에 <올드보이>보다 훨씬 현실적이긴 하지만 송강호의 연기는 '생활밀착형' 연기가 아니었던가요. 따라서 최민식은 악을 쓰면서 소모되는 배우가 아닌 <파이란>처럼 삶의 진정성이 묻어나는 연기에서 빛을 더 발휘한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어쨌든, 위와같은 여러 아쉬움때문에 박찬욱 감독에게 섭섭함을 지울 수 없습니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4명의 주인공들이 한장의 흑백사진에 모아졌던 절묘한 마지막 장면을 보며 영화관에 한참동안 앉자있었고, <복수는 나의 것>에서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도 칼에 찔린 송강호가 주절거렸던 대사에 영화관을 뜰 수 없었으며, <여섯개의 시선>에서 박찬욱 감독의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를 보며 <올드보이>를 한없이 기대하게 만들었던 박찬욱 감독은 이렇게 절 배신(?)하네요. 역시나 영화관을 쉽게 나서지 않게는 만드는데...그것이 찜찜함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