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감독의 취향과 스타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극의 느낌과 주연 배우들의 캐릭터를 형성해 주는 장본인이 감독이기에 난 영화를 보기에 앞서 감독의 이름을 반드시 확인한다. 그렇게 확인하는 감독의 이름은 이름 하나만으로도 나를 흥분시키기도 일말의 기대도 없게 하기도 하는 묘한 선입견으로 자리잡아 내가 영화를 선택하게 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공동경비구역 JSA>와 <복수는 나의 것>으로 스타감독의 반열에 오른 박찬 욱 감독은 솔직이 말해 내가 좋아하는 작품의 성향을 지닌 기대감을 주는 감독은 아니다.
영화 속에서 보여주었던 스타일이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냉소적이고 지나치게 건조함을 주 는 경우가 많았기에, 어떤 상황 속 인간들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극복할 수 없는 한계와 그로 인해 접해지는 처절한 슬픔과 절망스런 고통 같은 것을 보았기에, 착한 주인공들의 선 한 의지와는 상관없이 비극적으로만 치달을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들로 인하여 어 처구니 없는 결말 속의 비극적인 말로를 맞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의 영화적화 법은 보는 이로 하여금 답답함과 허무함을 금치 못하게 하곤 했다. 가뜩이나 살기 힘든 세 상을 더욱 힘겹고 부조리하게만 바라보는 비관적인 그의 시선이 싫었기에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 밀려오는 우울함, 안타까움, 무기력함 등이 나의 기분을 무겁게 했었기에 난 개인적 으로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다. 그의 작품적 성향을 썩 마음에 들 어 하지 않았다. 특히 <복수는 나의 것>에서 보여진 세상에 대한 그의 냉소가 싫었고 시종 따뜻함을 느낄 수 없는 차갑기만 한 건조함이 비관이고 비판적이기만 한 시선이 싫었다. 극단으로 치달아 파국을 맞는 주인공들의 모습, 복수 때문에 스스로 망가져가는 그들의 모 습들이 너무도 안타깝고 슬퍼서 난 그의 작품 자체를 그다지 탐탁지 않게 생각했었다. (물론 이건 박 감독의 작품 성향에 대한 개인적인 취향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지 그의 작품이 완성 도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신작 <올드보이>의 경우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이전의 작품 성향들과 내용면 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도 않고 비극과 절망을 관통하는 정황과 상황이 두드러져 그로 인한 깊음 슬픔을 느낄 것만 같은 예감이 분명한데 이 영화에게선 왠지 모를 이끌림의 마력 같은 것을 느꼈다. 이 영화의 타이틀 롤을 맡은 아주 대조적 느낌으로 굉장히 심각(?)한 변신을 한 두 배우 최민식과 유지태의 모습에서 단적으로 느껴지는 상징적인 영화의 분위기가, 조 금은 변한 듯 화려함과 세련됨이 느끼게 하는 약간의 예고 화면에서 느껴지는 영화의 멋진 스타일이, 무엇보다도 엄청난 반전을 포함 하였다는 미스터리한 내용에 첨가된 비밀스러운 남자들의 이야기에 정말이지 인상적으로 변신한 두 배우가 투입 얼마나 멋진 한편의 미스터 리 드라마로 완성되었을 지가 자못 궁금해져 이 영화를 기다릴 수 밖에 없게 했다. 박찬욱 감독에 대한 나 개인적인 취향이야 어찌 되었던, 확실한 자신만의 확고한 작품 세계를 가진 그가 그 자신의 스타일에 적절하게 배우들의 숨겨진 잠재 역량을 이끌어내는 능력까지 겸 비한 그가 이 작품에선 어떠한 분위기로 배우들을 멋지게 변신시켜 한편의 작품을 완성하 였을까가 무척이나 궁금해 이 영화를 빨리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었다.
영화 <올드보이>는 박찬욱 감독이 만든 또 하나의 복수 영화이다.
영문도 모른 체 납치되어 15년 동안 감금방에 갇혀, 세상과 단절된 체, 가족을 잃고 생을 잃어버려야 했었던 한 사내의, 비참한 그리고 절망적인 삶의 처절함을 어쩔 수 없이 경험 할 수 밖에 없게 없었던 한 사내가 그에게 그런 삶을 선물(?)한 사람을, 그렇게까지 한 사 람의 인생을 밑바닥으로 추락시킬 만큼 증오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밝혀내는 과정 에 얽힌 두 남자의 인생이 주는 교훈에 대한 이야기이며 복수가 주는 허망함과 삶 자체를 되돌아보게 하는 자기 성찰의 영화이다.
얼핏 보기에 영화 <올드보이>는 박찬욱 감독의 전작 <복수는 나의 것>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여자와 두 남자가 얽힌 복수에 관한 이야기니 그 런 선입견을 갖게 되는 건 어쩜 자연스러운 결과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전작 <복수의 나의 것>이 비극적 느낌만으로 점철된 지나치게 냉소적이고 건조한 느낌만을 주는 비정한 복수 이야기이었던 것에 반해 <올드보이>는 내용이나 스타일등 모든 면에서 <복수는 나의 것>과는 아주 상반된 화려한 느낌이다.
겉으로 보여지는 화면의 세련된 스타일이나 인상적인 등장인물들의 이미지 그리고 그것을 더욱 인상적으로 부각시키는 세심한 음악적 표현, 거기에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대립구조를 곁들인 미스터리 복수 극이라는 영화의 줄거리는 영화 자체의 재미 외에 많은 볼거리를 제 공해 주는 등 전작 <복수는 나의 것>의 모노톤의 이미지와는 아주 상반된 화려한 컬러의 이미지를 준다. 대중적 흥행몰이의 분위기를 은근히 점치게 한다.
왠지 모를 절망과 비극의 냄새를 풍기는 냉소적인 느낌의 박찬욱 그만의 영화 스타일은 여 전하다. 하지만 그 비극을 포장하는 모양새가 남다르다. 미스터리함으로 포장된 두 남자 사이의 비밀과 그 미스터리함을 증폭시키는 세심하게 배려 된 듯한 밀실(갇힌자가 기거하는 밀실감옥과 가둔 자가 살고 있는 팬트하우스, 어딘지 어두 운 느낌의 미도의 집)들의 세트의 이미지 거기에 미스터리한 줄거리에 적절하게 조화되는 풍성한 영화적 스타일(화면의 색채, 세트의 디자인, 편집에서 느껴지는 영화적 호흡 등)들은 영화를 좀더 볼만하게 재미있게 하고 흥미진진하게 하여 영화에 점점 몰입하게 한다. 가둔 자의 갇힌 자에 대한 원한(?)을 밝혀내는 흥미진진한 영화의 줄거리, 극의 초반부터 등장하는 도발적이며 오히려 여유롭기만 한 가해자, 오히려 갇혔던 자를 조롱하듯 자신을 잡을 수 있는 미끼를 하나하나 던져주는 더 여유로운 악인의 그가 가진 자신감의 실체가 더 궁금해 지게 하는 치밀하게 짜맞춘 듯한 연출 등 영화는 극적 완성도와 재미 모든 측면을 만족시키며 관객을 사로잡으려고 만반의 채비를 하고 있는 듯 여유롭다.
최민식 VS. 유지태 혹은 오대수 VS. 이우진 + 미도
영화 <올드보이>가 예외적으로 관심을 끌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최민식과 유지태의 이례적 인 모습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이는 두드러진 캐스팅의 면면에 있었다.
연기 잘하는 배우 최민식이 연기하는 극중 오대수는 과연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면서 그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을 만큼 더 이상의 캐스팅은 없을 정도로 완벽한 오대수 그 자 체다. 배역을 위해 실제로 오랜 시간 감금 생활을 했던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분노와 고통으로 일그러진 듯 초췌하고 살기가 넘치는 최민식의 모습은 15년을 감금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는 오대수의 모습인양 처절하다. 부드러운 인상의 착한 청년 같은 외모 에서 느껴지는 순수함과 천진한 기존의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강철로 만들어진 심장을 가진 듯 무자비하게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리는가 하면 그의 복수를 위해선 어떠한 살인이나 무자비한 악행도 서슴지 않는 어쩌면 일말의 양심조차 없는 것 같은 그의 모습은 이전에 보았던 어떤 악인의 모습보다 더 무섭고 비정해 보인다. 하지만 언뜻 스치는 슬픈 듯 우울한 표정과 아픔을 삭이는 듯한 모습은 어쩔 수 없이 스스로를 악인으로 몰아가는 처 절함 같은 것이 홀로 고립되고자 하는 처절한 외로움이 느껴지는 것 같아 한편 슬프다. 이런 인상적이고 대립적인 이미지의 두 배우 최민식과 유지태의 변신한 모습에서 이 영화의 생명력을 느끼고 드라마에 대한 기대를 증폭시킨다. 관객을 끌어들이는 힘을 느낀다.
오대수의 내면을 형상화 한 듯 어둡고 좁은 8평짜리 콘크리트 사설감옥의 제한된 공간에서 그는 15년 동안 복수를 다짐하며 권투보고 권투를 하며 체력을 유지한다. 자신에게 처해진 황당한 처지를 잊고 스스로를 추스리기엔 빈 몸뚱이 외엔 아무것도 남겨진 것이 없는 철저 히 혼자 버려진 그에게 있어서 헝그리 정신만큼 삶의 버팀목이 되는 것도 없었으리라.. 그가 몰두하는 권투는 그의 복수에 대한 수련이기에 앞서 그가 살아남기 위한 스스로와의 투쟁이며 살아가는 방법론이었을 것이다.
이와는 정 반대로 세련되고 화려한 가진 자의 재력이 단적으로 보여주는 100평짜리 팬트하 우스에 살고 있는 우진의 공간은 그의 내면을 닮은 듯 황량하고 공허하며 쓸쓸함과 외로움 으로 점철되어진 느낌이다. 이곳에서 그는 자신만이 감추어온 슬픔을 이기듯, 외로움을 극 복하듯, 고행스러운 요가자세로 심신을 수련한다. 마치 자신의 수행하는 고통스러운 요가자 세의 힘겨움으로, 육체의 고행으로 오랜 정신적 고통을 삶의 힘겨움을 덜어내고자 하려는 듯, 그가 보여주는 요가의 자세는 마음속 깊은 곳의 슬픔이 담겨진듯 처절하다. 그야말로 나쁜 놈이고 그의 복수극엔 일말의 동정심도 보여주지 못할 만큼의 잔인함이 배어있지만 오랜 슬픔에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표정에서 완벽한 복수로 인해 오히려 허탈해 진 그의 모 습에서 죽음마져도 초월한 듯한 초탈한 그의 태도에서 언뜻언뜻 느껴지는 또 하나의 숨겨진 비극을 예감하게 한다.
영화 속 오대수와 이우진, 두 배우의 인상적인 대립 때문에 어쩌면 간과하고 넘어갈지도 모르는 미도는 이우진과 오대수 사이에 얽혀진 복수극에서 없어선 안되는 핵심적 인물이다. 그녀가 보여주는 역할이 두 남자배우의 비중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비하여서 너무도 쟁쟁한 배우들 틈에 낀 신인배우인 덕에 그녀의 역할이 가진 배역의 극적 비중에 비해 상대적으로 초라하고 무시될 수 있을 만큼 미비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우진이 오대수에게 벌이고 있는 복수의 키이며 완벽한 이우진의 복수를 철저하게 하는 핵심적 인물이며 또한 오대수가 자신이 벌인 잘못에 대한 대가를 스스로 치루는 이유가 된다. 그녀의 배역으로 인하여 드라마의 완성도가 짜임새가 더 탄탄해짐을 느낀다. 미도역을 맡은 강혜정이라는 배 우가 신인이었기에 그의 역량이 다른 배우들에 비해 조금은 아쉬움을 주었기에 극 속에서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한편 하지만 어쩌면 감독이 의도적으로 신인을 기 용함으로써 미도라는 배역 속에 감추어진 진실을 꼭꼭 숨겨두려는 의도는 아니었는지 하는 생각도 해보게 한다.
영화를 통해 풀어가는 수수께끼.
이 영화가 가진 비밀에 대한 열쇠는 영화의 초반 20분속에 모두 담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 이 아닐 정도로 영화는 비밀의 키를 풀 수 있는 흔적들을 풀어놓는다. 마치 이우진이 자신 을 찾을 수 있도록 계속적으로 오대수의 주위를 맴돌면서 그를 약올리는 것처럼.
영화의 첫 장면 옥상에서 이상한 포즈로 서있는 오대수의 모습, 술에 취한 오대수가 경찰 서에서 쉴새 없이 떠드는 모습, 감금된 오대수가 뉴스를 통해 접한 아내의 살인사건과 자 신이 범인으로 몰리는 상황, 그가 잠든 사이 잠시 왔다가는 비밀스런 분위기의 여성, 15 년간의 감금생활, 5일 간의 여유시간, 에버그린 이라는 아이디 등 감독은 이우진과 오대수의 비밀에 관련된 상징적인 장면과 힌트들을 영화 전체에 포진시킴으로써 영화가 주는 비밀을 함께 풀어가자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한편 영화 속 이우진의 모습이 감독의 모습이 되어 이 렇게 하나하나 가르쳐 주고 있는데도 아직도 모르겠냐는 듯 조롱을 하는 것 같은 느낌도 일면 들기도 하지만 이렇게 감독이 주었던 키들의 실체가 드러나는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는 그것의 의미들을 비로소 깨닫고 알아내게 된 이후에는 그런 식으로 비밀의 흔적들을 표시해준 감독의 세심한 연출에 그러한 흔적들을 포함되고도 시종 극적인 긴장감을 놓칠 수 없는 연출의 힘에 감탄하게 된다.
스타일리쉬하지 않은 박찬욱 감독의 스타일리쉬한 신작 <올드보이>.
솔직이 박찬욱 감독이 자기 색이 분명한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고집스럽게 고수하고 있는 감독임은 인정하고 있지만 그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세련된 스타일과 멋스러운 화 면으로 화려하게 잘 연출해 내는 영상이나 음악이 돋보이는 스타일리쉬하고 감각적인 영화 를 만드는 감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영화 <올드보이>는 예외적으로 느껴진다.
때로는 짧게 때로는 길게 편집된 화면(특히 오대수가 자신이 15년 동안 감금되었던 사설감 옥을 찾아 그곳의 책임 및 관리자들과 1대 다수의 격투를 롱 케이크로 표현한 장면은 어떤 액션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굉장한 명장면이며 오대수가 갖고 있는 복수의 깊이를 가늠케 하게 하는 멋진 장면이다.)들과 인물의 마음속 깊은 내면을 관찰하는 듯한 인물에 가까이 때로는 조금은 떨어져서 앞으로 전개될 인물들의 행보를 관찰하려는 듯한 유려하게 움직 이는 카메라의 움직임과 앵글, 다양하게 드러나는 화면의 색채(하얀, 푸른, 초록의 그리고 핏빛의) 그리고 그런 화려한 화면 위로 웅장하게 때론 구슬프게 흘러나오는 세심히 배려 된 듯한 음악 등 이 영화를 어느 것 하나 놓치기 싫은 마력 같은 것이 존재한다.
영화가 완성 높아서 세련되어서 재미있어서라기 보단(물론 이것들이 영화를 더욱 풍성하고 볼만하게 해 주는 건 사실이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비극적 얽힘이 너무도 안타까워서 사소 한 그 어떤 것(?)이 원망스러워 영화를 본 이후에도 영화 생각을 떨칠 수 없게 한다.
아마도 영화 <올드보이>는 박찬욱 감독의 개인적인 작품성향이 투영되어 있으면서도 한편, 관객의 흥미도 유발시킬 수 있는 작품의 완성도와 대중적 흥행코드를 모두 지닌 꽤 괜찮은 영화인 듯싶다. 나 자신의 경우처럼 박찬욱 감독의 냉소적, 절망적, 비극적 느낌의 작 품 성향을 그다지 반기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영화 <올드보이>만큼은 집중하여 흥미롭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될 것 같다. 나 역시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게 몰입하여서 보았고 드라마의 모든 비밀이 밝혀지는 종국에선 감탄을 금치 못할 짜임새를 느꼈으므로 감독의 정교한 연출의 힘을 느꼈으니까.
단, 잔인하거나 무서운 영화를 싫어하는 분들에게는 권하지 않겠다. 한 사람의 평생의 원한이 점철된 이야기이므로 비명을 지르고 싶을 만큼 소름끼치는 장면이 몇몇 등장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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