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공포(이른바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영화를 통칭하여 '공포' 영화로 하기로 한다.)
영화를 좋아 하지 않는다.
공포 영화를 보면 보는 장면보다 눈감고 지나가는 장면이 더 많다거나
그날 꿈자리에서 영화의 2편을 빡시게 체험하는 영화적 공포의 잔상효과를 경험해서라기 보다는
동문서답일수도 있지만 제대로 된 공포영화를 만나기가 하늘에 별따기와도 같다는 걸
인정하기 때문이다. 공포영화는 장르 영화의 대표이자 비주류 컬트 영화의 단골 손님이다.
그만큼 공포의 코드의 실체는 분명해졌지만 순간적으로 근육을 긴장시키고
아드레날린 수치를 증가시키는 얕은 공포의 문법들만 다양해졌을 뿐 인간의
심리의 기저를 자극하는 근원 공포를 요리하는 경우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이후
현재까지 변주곡들의 양산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지퍼스 크리퍼스는 결론적으로 '볼만하게' 본 영화 였다.
영화적 내러티브 구조의 측면은 각설하고 장르 영화로서 공포 영화의 ABC인
'공포' 그 자체를 표현함에 있어서 '오바 하지 않았다'는 거 하나 만으로 점수를 줄 만한 영화이다. 오바의 기준에
는 개인차가 있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는 기존의 단발성 자극의 표현 방법을 영화적 공포의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참 후에 생각난 것이, 앞으로 영원히 텍스트로만 존재할 줄 알았던 신화적 판타지의 세계를
일란성 쌍둥이의 형태로 스크린에 복제해낸 영화인 '반지의 제왕'시리즈를 만든 피터잭슨감독이 무명(?)시절 찍었
던 '데드 얼라이브'란 영화였다...
지퍼스 크리퍼스의 최고의 미덕은 역설적으로 확실하지 않은 공포의 실체이다.
이 영화에서 공포의 근원으로 등장하는 '지퍼스 크리퍼스'는 영화가 끝날때까지 'why'와 'what'에
대한 물음을 외면한다. 이것은 현실에서 측정가능한 공포의 실체를 규정하는 최소한의 기준이다.
'지퍼스'의 공포는 그래서 현실성이 결여된 공포이지만 그것을 버리는 대신에 인간의 심리 근본에 잠자고 있는 추
상적 공포를 건드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영화를 다 보고 난후 '휴~ 이건 현실이 아니잖아'라고 안도의 한숨을 짓게 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깨림칙한 기분에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 격이라고 할까..
여기에는 신화적, 설화적 설정과 휴머니즘을 자극하는 이분법적 대결구도가 한 몫을 하고 있다.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다는 염려 때문에 더이상 구체적으로 논거들을 밝힐 수는 없지만
어쨋든 '지퍼스 크리퍼스'는 간만에 괜찮게 본 공포영화 였고
부디 지금의 피터잭슨 감독이 과거 '데드 얼라이브'란 영화를 만들면서 내공을 쌓았듯이
이 영화의 감독인 빅터 살바라는 사람도 그렇게 되길 바라는 것은 나의 지나친 과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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