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세상에 여자의 모성만큼 위대한 것이 또 있을까'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 모성의 양면성을 필자는 오늘 깨달았다.
잘 나가는 산부인과 전문의 도일, 그리고 직물 디자이너 미숙... 다정하고 자상한 남편 도일과 시아버지 미숙에게는 그런 일상이 행복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 행복한 가정에는 흠이라면 한가지 흠이 있었다. 바로 10년째 아이가 없는 것. 결국 도일과 미숙은 입양을 결심한다. 미숙은 예전 전시회에서 보았던 인상적인 그림을 입양을 위해 찾아간 보육원에서 또 다시 보게된다.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 미숙은 그림을 그린 진성을 입양한다. 도일은 6살이라는 나이가 입양하기에는 부담스러웠지만 미숙의 의견을 따른다. 아이는 매일 기괴하고 어두운 색으로 나무를 그린다. 늘 조용하고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고 죽은 벌레를 손에 쥐고 다닌다. 그러나 미숙은 이 아이를 보듬어준다. 할아버지, 아빠, 엄마와 행복한 일상을 보내던 진성. 미숙이 기적적으로 임신을 하게되면서 이 행복한 가정은 서서히 깨어지기 시작한다. 둘째가 태어나고 진성은 점점 자신의 자리를 잃어가고 있음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억수같은 비가 쏟아지던 날 진성은 사라진다. 진성이 사라진 순간부터 미숙과 미숙의 집에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사라진 진성을 기다리며 넋이 나간 미숙. 그리고 무언가를 목격한 듯한 옆집아이와 할아버지. 이에 아랑곳 않고 시종일관 냉소적인 도일. 그리고 서서히 죽은 나무 가지에서 피어오르는 아카시아 꽃. 아카시아 나무가 그 향과 가지로 집안을 서서히 위협해오면서 마침내 진실이 밝혀진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스크린에 얼굴을 내비친 심혜진, 탄탄하게 다져진 연기실력과 집안 내력인 끼로 이중적인 면을 잘 살린 김진근, 그리고 무표정한 연기의 완결편을 보여준 진성역의 문우빈. 대체적으로 연기자들의 연기는 크게 어설프지 않았다. 허나 별로 기대를 하지 않고 간 필자조차도 결말을 보고 실망했다. 사실 필자는 여고괴담이란 영화의 흥행성은 인정하지만 좋아하지는 않는다. 두 번째 이야기는 아주 감성적이고 섬세한 면이 있어 좋아하지만 첫 번째 이야기나 여우계단은 솔직히 별로였다. 박기형 감독의 실력에 감탄했던 건 역시 귀신이 타닥 타닥 다가오는 그 씬... 단지 그거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아카시아도 크게 기대를 걸지 않았다. 아카시아는 학교라는 폐쇄적 공간이 단란해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입양가정으로 옮겨가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이 주된 요소다. 그리고 그 갈등을 극대화하고 더 나아가 두려운 존재로 형상화하는 것이 아카시아 나무다. 조용히 집을 지켜보던 아카시아 나무의 분노... 진부할 수 있지만 다시보면 매우 독창적인 소재였다고 생각한다. 좀 더 세심하게 만들었다거나 스토리 구조를 좀 더 단단히 했다면 좋은 영화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소재로 진부한 결말을 만드는 건 보는 이로 하여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영화도 장화홍련처럼 소리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 영화다. 링이나 살인의 추억 등 사운드에 쉽게 놀라는 사람이라면 심장을 가다듬으며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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