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6일에 개봉했던 <내츄럴 시티>는 '한국 SF 영화의 르네상스를 몰고 올 신호탄'이라는 평가와 '표절까지는 아니더라도 진부하고 뻔한 설정'이라는 극과 극의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 이러한 열띤 논쟁 속에서 <내츄럴 시티>의 중간 성적표는 분명 기대이하이다. 76억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만들었기에 관객이 300만 명 이상은 들어야 손익 분기점을 넘길 수 있지만 관객들의 철저한 외면으로 다시 한번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재앙'이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과연 <내츄럴 시티>가 형편없는 영화인가?....
'분명 아니다'라는 것이 나의 대답이다. 우선 <유령>에서 보여주었던 [민병천] 감독의 실험적인 영상미가 <내츄럴 시티>에 와서 빛을 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각종 매체에서 화두로 삼는 발전된 CG기술은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유령>에서 다 보여주지 못한 박진감 넘치는 격투신들은 그의 숨겨진 연출 실력을 유감없이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더욱이 도시와 폐허같은 빈민가의 대비라든지, 주인공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 화면을 가득 메우는 황토빛 석양은 화면 자체만으로 분위기를 이끈다.
그리고 혹자는 스토리 라인의 중심축인 [R(유지태)]과 [리아(서린)]의 사랑에 대한 설명이 너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혹은 개연성이 부족한 듯 뭔가 허전한 느낌을 주지 않나 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스토리 라인은 철저히 계산된 설정이라고 본다. [R]과 [리아]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에 세우면서 [R]과 [싸이퍼(정두홍)]의 대립, [R]과 [노마(윤찬)]의 갈등을 배치하여 각자의 이야기가 쉽게 한데 엮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설정은 <내츄럴 시티>가 뜨뜻미지근한 신파로 빠지는 것을 방지하면서 SF영화로서 하나의 그릇 안에 다양한 이야기 거리가 서로에게 양념이 되어 다양한 맛을 내고 있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R]과 [리아]의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는 결말만 보여줌으로써 완성된 '기승전결'이 갖추어진 이야기를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실망을 줄지 모르지만, 상상의 여지를 남겨두면서 <내츄럴 시티> 면면에 흐르는 디스토피아적 미래관과 부합하여 상승효과를 낸다.
또 [민병천] 감독의 작품들이 받는 눈총의 원인 중에 하나가 그의 작품들이 풍기는 '표절' 내지는 '모방'의 냄새라는 것이다. <유령>은 <크림슨 타이드>를 <내츄럴 시티>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1982년작 <블레이드 러너>와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1995년작 <공각기동대>를 너무 닮았다고 하는 것이 논쟁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블레이드 러너>는 [필립 K.딕]의 소설인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을 꿈꾸는가? 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고, <공각기동대>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 자신도 <블레이드 러너>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 작품으로 <내츄럴 시티>는 '표절'도 '모방'도 아닌 앞선 이 작품들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분명 <내츄럴 시티>에서 느낄 수 있는 음울한 분위기와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들은 <블레이드 러너>와 <공각기동대>의 그림자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겠지만 그것을 토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고 있는 <내츄럴 시티>는 아무래도 밉게 보이지 않는다.
뮤지션들 사이에서도 존경하는 선배 뮤지션에게 '트리뷰트' 음반을 헌정하기도 하는 것처럼 자신이 지금 걸어가고 있는 길을 앞서 걸어간 개척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마주'라는 가면을 쓴 표절이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 '오마주'라면 말이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내츄럴 시티>는 흥행에서 실패를 했다. 이는 우리나라 영화계에 <원더풀 데이즈>를 필두로 SF영화가 편입되는 과도기에 있기 때문에 주류에 밀려난 비주류의 비애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적어도 내 생각은 이렇다. <삼국지>의 [장비]가 조선시대의 우리나라에 태어났다면 과연 천하를 호령하는 맹장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백정의 신분으로 소를 때려잡다가 구월산에 올라가 산적이 된 [임꺽정]과 같은 처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