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再)[이퀼리브리엄]을 보고... (매트릭스와의 단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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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퀼리브리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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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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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20 오후 11:0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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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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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고 그름의 딜레마는 우리를 직관이란 습관에 빠지게 한다. 끝이 허무한가? 반전이 부족한가? 영화를 순간으로 보지 말고 전체로 봐야 한다. 순간은 흥미이지만 전체는 생각이다. 이 영화의 첫 부분은 화려한 액션으로 감상이 지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좀더 꾹 참고 보면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영화이다.
신부, 성직자란 어휘 그리고 기록 열람실에서의 두꺼운 장부가 성당의 성서처럼 놓여져 있는 장면 등은 이 영화는 종교가 소재가 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또한 "이퀄리브리엄(Equilibrium): 균형설(均衡說) 의지(意志)의 자유를 주장하는 비결정론(非決定論)" 즉 어떤 두 가지 상황이 균등한 가치로 있을 때, 의지는 어느 한쪽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의지의 자유'를 뜻하는 제목은 이 영화가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 한다.
프로지움이란 약물을 통해 자율적 감정을 억제 시킴은 직관(=믿음) 이란 이름으로 삶에 충실하라고 강조 한다. 하지만 이유(=진실)는 통치수단으로서의 종속적인 방법임이 은폐되어 있음을 영화에서는 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혼돈하기 쉬운 진실과 믿음이란 단어의 의미를 구분을 정확히 해 본다면, 영화 안에서의 직관과 이유는 현실에서의 '믿음'과 '진실'이란 단어가 서로 매개되어 영화와 종교를 결부 시키는 듯 하다. 신부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희생을 강요하므로 서 삶을 하나의 무의미로 만든다는 것을 영화에서는 말하는 듯 보인다. 결국 주인을 향해서 꼬리를 흔드는 '개(감정=>습관으로 굳어진 직관이 아닌 판단) 보다도 못한 틀(약물로 만들어진) 속의 삶의 지양' 이란 얘기 아닐까?
영화에서 강아지는 죽이지 못하고 경찰(약물)들은 쉽게 죽이는가? 에 대해 생각해 보면 결국 깨어 있음과 그렇지 못함의 차이는 동물과 인간적인 동물. 즉 무의미와 의미의 차이를 말한다고 생각된다. 어떤 외부적 사건이 아닌 '의지'의 자각만으로도 존재의 정당성을 부여 받을 수 있다는 거칠게 과장된 현실이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신부를 사칭한 전달자를 죽이는 장면에서 그는 자신도 감정 노출자임을 고백한다. 그리고 자신을 죽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과 함께 죽인 것은 반증이다. 신부의 질문의 의미를 놓치면 영화의 많은 부분을 놓친 것일 것이다.
이 영화는 종교로 인해서 발생한 맹점을 전면에서 부정하고 있다. 절대로 특정 종교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 있으며 그런 일은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현시에서는 불가능한 능력이다. 또한 이것이 매트릭스 원과 가장 큰 차이이며 의도적 반대 인 듯하다.
이 영화를 보면 매트릭스와 암연에서 비교되는 것이 사실이다. 어떤 이는 액션에 관한 모습만 비교 하는데 그러기에는 액션보다 더 큰 이 두 영화의 공통 분모가 있음이 느껴진다. 또한 일편만의 비교가 가능한 듯 싶다. 일편이 만들어 질 당시에는 속편 계획이 확정된 사실이 아니어서 인지 이편의 스토리 전개 방식 그리고 목적이 상당한 이질감이 있다고 보여지며 이편 제작 시는 삼편 제작이 전제되어서 내용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이 완연이 보여지기 때문이다.
매트릭스 원의 종교적 색체는 액션영화에서 부가적으로 접목시킨 내용상의 흐름을 이끌어 나가기 위한 하나의 재료 였다고 보여진다. '그'에 대한 기다림, '그'에 대한 믿음과 의구심의 갈등은 너무나도 흔히 볼 수 있는 하지만 성역과 끈이 닿아 있어 왠지 편하게 접근 하기 어려운 소재 였을 것 이다. 그러나 이런 얘기는 기독교 만의 전통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 광범위한 대상을 통해 느끼는 흔한 감정의 연장선으로 동질 될 수 있기에 관객의 마음을 액션과 함께 사로 잡았던 것 아닌가 본다. 그런 소비자의 욕구를 더욱 부각 시켜 오히려 역효과를 낸듯한 이편은 차치하기로 한다.
하지만 이퀄리브리엄은 제목에서 보듯 기획단계에서 부 터 작정한 듯 하다. 종교는 인간 마음의 피난처를 제공한다. 어딘 가로 회피할 수 있는 공간의 존재는 인간에게 더 없는 위로 이지만 긍정적일 수 있는 자극을 상쇄시키는 효과도 있다. 그것을 악 이용하는 정치 집단의 사악함을 보여주기 위함이 영화의 전면에 걸린 듯 하다. 무엇보다 오해 해서는 안 될 부분은 영화에서 통치자는 신부였으며 그의 행동 또한 절대로 신이라는 존재의 의도가 아니 였다는 것이다. 신과 관련 되어서 그를 비판하거나 하지 않았으며 오직 그의 이름을 이용한 신부라는 이 들을 고발한 것 아닐까? 현실과 연관 시킨다면 사이비 종교 집단의 목사나 교주쯤이 될 것이다.
기독교의 반발을 우려해서 파더(신부, 숀퍼트위란 )를 총사령관으로 세인트(성직자, 크리스챤 베일)를 집행자라고 번역해서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럴 필요 까지야...
액션을 부정하고 싶지 않고 나 역시 화려한 액션에 감동 하지만 지금 이 글의 관점은 액션이 아닐 뿐 이다. 따라서 액션은 찰나의 재미 이상도 이하도 아닌것이 되는 것이다. 또한 그것만으로 보기에는 꺼리가 어느 정도는 있는 영화다. 다른 영화도 결국 비슷하지만... 영화를 거창하게 이해할 필요 없다. 내가 보는 영화 내가 재미 있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말한다. 흥미로만 자신을 보지 말아 달라고. 진정한 재미로 봐 달라고. 영화의 비교도 좋고 비평도 좋다. 하지만 우리가 비교 하고 있는 영화를 우리는 얼마나 잘 알고 말하고 있는가? 매트릭스 투의 내용은 짜증날 정도로 많은 관념을 담고 있는 듯 하다. 카오스, 종교, 동양철학등 이루 말하기 힘들다. 그러기에 나 같은 빈곤층은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 하다. 철학자들에게 자문 받으며 만든 영화를 누가 맘편하게 볼 수 있을까 싶다. 비록 영화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액션 너머에 보이는 흐릿한 연상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 절대로 "매도" 하지는 않는 다는 것이 내가 아는 영화 감상법 중 으뜸 이다. 영화 중 이런 대사가 있다. 아들이 약을 복용하지 않음을 말하는 장면인데 "아버지가 뭘 생각하는지 아는 것이 저의 일 입니다"란 아들의 대사이다. 내용상은 아들이 아버지를 감시하는 듯한 대화가 그 전에 오갔음을 상기하면서 농담조로 말한 내용이다. 하지만 문장만으로 해석한다면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좀더 확대 해석하면 우리는 어떤 상대로서 영화를 보며 그 영화를 분석한다. 고딩때 시를 배우고 소설을 배우면서 주제 졸라 찾는 것도 그것이다.
진정한 재미일지도 모른다는 이름으로 어쩌면 또 다른 직관과 거짓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이 생각하므로 존재한다는 사유법칙 만큼 자명한 듯 느껴진다.
-------------------------------------------------------------------- 네이버에서 (satware9)란 분이 이런 글을 썼더라고요. 참고 하세요~
현재 미국의 부시 행정부 입장으로서 상당히 불쾌해 할만한 요소들을 많이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선.. 미래 사회를 종교 색이 강한 파시스트 국가로 묘사하고 있는데.. 부시의 공화당 정권의 강한 종교 색과.. 그로부터 비롯된 기독교적 세계관을 어느 정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인데다(현 백악관에서는.. 매주 기도회가 열리고 있고.. 미국 내에서는.. 이런 사항에 대해 지나친 것 아니냐며 사회 한쪽에서 비꼬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반정부적인 메시지 등, 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소지를 충분히 갖고 있지요. 게다가.. 이 영화가 개봉되었던 당시.. 미국은 한창 이라크와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던 시기였는데.. 부시 정권으로선 이런 영화가 나와 사람들을 자극하는 것을 달가워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 행정부 내의 분위기가 전달되었는지.. 미라맥스의 밥과 하비 와인스타인이 이 영화의 와이드 릴리스를 지레 포기했다..라는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설득력 있는 루머가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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