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성급한 감이 있지만서도, 올해 한국 영화계가 거둔 가장 의미있는 수확은 [내츄럴 시티]가 되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살인의 추억]이나 최근의 [바람난 가족] 등 뛰어난 작품성들을 지닌 여러 영화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작에서 더 큰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은, 사실 지극히 주관적인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블록버스터. [쉬리] 이후, 수많은 영화들이 블록버스터라는 타이틀을 걸고 흥행에 도전했으나 대부분은 모래성처럼 이내 허물어져버렸지요. 작년의 [아유레디]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그야말로 참담하다고 할만한 성적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내츄럴 시티]는 오지 않으리라 믿었던 미래에 관한 영화라 할만 하지요. 본작이 구현해내는 영상과 액션은 영화팬의 한사람으로서 희열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99년의 [유령] 이후 두번째 작품을 들고 돌아온 민병천 감독은 단 두 작품만으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확고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냈지요. 본작의 CG는 분명 이전의 국내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수준입니다. 프린팅 작업이 80% 진행된 상태의 필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사회장의 관객들은 그 영상에 감탄했지요. 무채색과 유채색으로 구분해낸 색감도 뛰어나고, 영화 음악 역시도 화면과 썩 잘 어울렸습니다. 혹자는 영상과 액션에 비해 이야기가 빈약하다고 평했습니다만, 키스씬 한번 없이 펼쳐지는 R과 리아의 사랑은 별 무리없이 몰입할 수 있을만한 것이었고 와이어 액션 등 몇몇 씬은 매우 빼어난 수준이었습니다.
이제 충무로에 없어서는 안될 배우로 자리를 굳혀가는 유지태는 꼭 적정선이라고 할만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거울 속으로]에 이어서 [내츄럴 시티]에서도 안정된 연기를 보여준 유지태로 인해 [올드 보이]는 한층 더 기대가 가는 작품이 되었지요. 가장 돋보이는 배우는 싸이퍼를 연기한 정두홍이었습니다. 몇마디 대사도 없이 표정과 액션만으로 자신의 존재를 깊이 각인시키던 정두홍의 모습은 분명 스턴트맨이 아닌 한명의 배우였지요. 개인적으로는 [예스터데이]의 골리앗보다 훨씬 충실하게 표현된 캐릭터였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내츄럴 시티]의 내러티브는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와 유사한 점이 많으며. [공각 기동대]의 오시이 마모루 등 일본쪽 감독들의 몇몇 작품들로부터 차용한 부분들도 눈에 띕니다. 그러나 본작은 한국적 정서를 저변에 둔 재해석과 차용한 이미지들의 적절한 재배치를 통해 온전한 한편의 창작물로 탄생하는데 성공했지요. 오지 않으리라 믿고 있는 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관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비교적 적확하게 짚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 블록버스터의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부디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램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