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ICIDE 3』라는 게임을 아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1997년 Jacobin에서 나온 이 게임은 당시 국산 게임으로서는 획기적으로 각 캐릭터의 대사를 모두 음성으로 지원하는 게임이었다. 제목에서 보여주듯(신을 죽이는 사람이라는 뜻) 내용도 아주 철학적이서 2000년에 이 게임을 하는 동안 97년에 이미 이런 수작이 있었다는 생각에 몇 번이나 감탄을 했던 기억이 난다.
『원더플 데이즈』를 보면서 나는 그 게임을 떠올렸다. 내용도 좋았고 그래픽이나 모든 면에서 당시로서는 기대치를 훨씬 뛰어 넘었던 『DEICIDE 3』였지만, 시장에서는 참혹하게 묻혀져 버리고 말았다. 『원더플 데이즈』를 보던 날, 나는 주말 요금으로 8,000 원을 내고 영화를 관람했지만 극장 안에는 몇 명의 꼬마 아이들을 포함하여 스무 명 정도가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CGV 상암에서는 이 영화의 마지막 상영이 2시 20분이었다. 즉, 그 이후에는 사람들이 많이 보는 영화를 걸었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했듯 『원더플 데이즈』의 오토바이 씬이나 중간 중간에 드러나는 건물의 모습은 탄성을 자아낸다. 하지만 7년 동안 고심해서 이 영화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작진은 그것을 충분히 살려내지 못했다. 왜?
우리는 영화를 보러 간다고 할 때 우선 이야기를 보러 간다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그래픽과 그림들로 가득차 있어도, 그것들이 이야기를 가지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도 없다. 『토이스토리』부터 시작하여 『니모를 찾아서』에 이르기까지, 그 영화들은 애니메이션이 갖고 있는 퀄리티도 퀄리티지만 아주 뛰어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원더플 데이즈』는 뚜렷한 이야기 구조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오염을 에너지원으로 살아가는 인간과 그렇지 못한 인간들의 갈등이라는 상황 설정 자체는 아주 좋았지만 그 뒤에 이야기가 둘의 어설픈 로맨스로 진행되면서 이야기는 흐지부지 되어버린다.
왜 로맨스에 대한 집착을 벗어버리지 못하는가? 나는 『원더플 데이즈』가 그것에 대해 욕심을 버리고 환경 오염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인간 사이의 갈등만 제대로 살렸어도 수작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차라리 그렇게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 중간 중간에 갑자기 어설픈 퀄리티의 애니메이션이 등장하여 애니메이션에 대한 몰입을 깨뜨리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기술력을 세계에 보여주고 싶었던 그 마음은 충분히 인정하지만, 우리가 애니메이션을 보러 갈 때에는 일반 실사 영화가 갖지 못하는 질감이 주는 감동을 기대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보고 감동하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뜨아.. 하는 탄성을 자아낼 장면은 없었지만 훌륭한 이야기로 모두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던 『센과 치히로의 모험』같은 애니메이션을 우리나라도 언젠가 갖게 되길 바란다. 극장 한 자리를 차지한 나의 +1 관객수가, 그것에 대한 소중한 투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