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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목]"이문식의 [나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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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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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e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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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28 오전 9:33:19 |
730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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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는 매우 불쾌한 영화다. 완성도에 대한 언급을 하기도 전에 보는이의 심정을 심히 불쾌하게 만드는 , 진정 관객에 대한 배려라고는 바늘귀만큼도 없는 어떠한 의미에서라도 동의할수 없는 이상한 영화다. 일단, 우리가 주의해야 할점은, 나비의 홍보는 김민종과 김정은의 슬픈 멜로드라마를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실상, 영화가 내내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삼청교육대와 80년대 군사독재정권의 부조리의 잔학상이라는것이다.
마치 홀로코스트를 연상시키는 끔찍하고 잔인한 장면들은 근간 한국영화에서 단한번도 보지 못한(누가 복수는 나의것을 잔인하다고 했으며, 지구를 지켜라를 끔찍하다고 했는가.) 인정머리가 완전히 증발해버린 끔찍한 악몽이다. 감독과 제작진이 애써서 전달하고자 했던 역사적 잔학상을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야 알겠으나, 그 방법에 있어서 조금의 "의식적잣대"가 없으니, 이보다 더 끔찍한 악몽은 근 수년간 없다 싶다.
영화는, 민재와 혜미의 1975년.으로 시작한다. 남루해 보이는 화면속의 두사람은 (의도적으로)신파조의 헤어짐을 선보이는데, 영화는 오프닝에서부터 자멸의 길을 스스로 선택했음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오프닝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 보여준 그들의 과거는 오직 "헤어짐"뿐이다. 영화의 전부를 차지하는 "줄거리"에 동요되어야 할 관객의 심정을 움직이게 할 그 무언가. 받침이 오프닝에 제대로 짜여져 있지 않았던 것은 이영화의 결정적 실수로 보여진다. 영화의 오프닝이 김정은(혜미)의 뒷모습으로 시작한것은 감독의 이해할수 없는 선택이다. 두사람의 감정의 오감이 완전하게 생략된채 사건을 풀어나가려고 했던 크나큰 욕심은 과욕이었다. 제아무리 막강한 신파극에도 "사연"은 있는법. 민재와 혜미가 왜그렇게 절절히 사랑해야 하는지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채 영화는 두배우에게 눈물을 강요하고, 절규를 지시하는 우스꽝스러운 반복을 감행한다. 민재의 "한방"에 뜨겠다는 과욕은 캐릭터가 반드시 가져야 할 "매력"을 모두 잠식시키는 커다란 결점이다. 혜미가 왜그렇게 민재를 사랑할수 밖에 없는지, 그렇듯 아무런 생각없이(이기적이라고도 표현하기에도 힘들다. 그저 아무런 계획과 비젼이 없는 공허한 상태일뿐.)여자를 떠나버린 남자를 죽도록 사랑해야만 하는 이유를 관객은 이해할수 없다.
혜미를 소유하려드는 허대령(독고영재)의 캐릭터는 지나치게 전형적이어서 단 한씬에서조차 납득하기 어려우며, 허대령이 혜미를 구타하는 장면은 감독의 상식을 의심하게 만드는 비상식적인 장면이어서 심히 불쾌하다. (물론 이러한 장면들이 한두군데는 아니지만 말이다.) 폭력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것과, 아무런 생각없이 공격적으로 그리려고만 드는 버릇없는 심정은 분명히 구분된다. 물론 나비에서 보여주는 모든 "폭력"은 분명한 후자이다. 허대령의 허욕과 잔인함을 드러내는 방법을 감독은 분명하게 잘못선택했다.
혜미를 소유하려고 드는 그의 전형적인 캐릭터가 견딜수 없을만큼 불쾌한것은 문제의 발단에 지나지 않으며, 그가 하는 그 이후의 행동들은 극장을 뛰쳐나가고 싶게 만드는 끔찍한 악몽일뿐이다. 영화는 단 한순간도 인간의 진정성을 내보이지 않는다. 이상하리 만치 삼청교육대의 실상을 고발하는데만 집중하며(그래서 어쩌자는 것인가? 어떠한 대안도. 과거에 대한 반성도 느껴지지 않게 만드는. 이 납득할수 없는 폭력을 관객은 어떻게 용서해야 하는가?)혜미와 민재의 신파조의 로맨스는 단 한순간도 슬픔을 전달해내지 못한다.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황대위(이종원)의 혜미에 대한 감정들, 죽도록 민재를 구하려고 달려드는 혜미의 감정들은 이 영화가 얼마나 허술한 드라마 구조를 가지고 완성되었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뚜렷한 증거물이다. 감독은 부적절한 씬연결로 모든 인물들의 호흡을 끊어놓고 숨통을 죄이며 "울어라. 이렇게 슬픈데 어떻게 울지 않을수 있겠는가? 심장이 있다면 울란 말이다!"라며 관객을 징벌하려 달려든다. 예상대로라면, 의도대로라면 온 극장이 울음바다가 되어 떠내려 나가야 하는 순간에 나를 포함한 모든 관객들은 짜증섞인 한숨으로 핸드폰의 시계를 반복적으로 확인했다.
유일한 영화의 구세주는 배우 이문식이다. 이문식의 연기는 배우로서 받아야할 최고의 극찬조차 남루하게 만드는 "자연스러움"과 "독창성"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그의 연기에 흠집을 내는 비난은 단연코 무의미하다. 분노의 순간에서조차 미소짓게 만드는 그의 작은 체구와 조그만 눈은 인간이 인간에게 애정을 갖는 다는일이 결코 어려운일만은 아니라는 "진리"를 깨닫게 만든다. 단연코 정의내리건데 이영화는 이문식의 "나비"이다. (이문식의 파트너로 나오는 김승욱의 연기도 눈여겨볼만 하다.)
그외 다수의 출연자들은 이영화에서 "부작용"처럼 움직이는 "조연"으로 밖에 기억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또한 이러한 최악의 상황으로 영화를 완성시킬수 밖에 없었던 것은 부족한 감독의 역량이라는 사실을(우리는 부족한 연기력을 소유한 많은 배우들이 결정적인 감독들을 만나면서 그 역량이 순간적으로 확장되는 사실을 여러번 목격했었다. 이것은 단언코, 배우들의 잘못만이 아니다.)깨닫는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영화 나비는 어쩌면 시도에서 조차 다시한번 생각해보았어야 할 영화다. 2003년 한국영화시장은 뜬금없는 80년대에 대한 추억과 자연으로의 회귀(아이들과 자연의 맞물림)의 조류에 휩싸여 있다. 이러한 두가지 조류에 자연스럽게 합류하고자 했던 나비의 제작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것은 이영화는 어떠한 역사적 고발도, 시대의 암울함에 대한 진지한 반성도, 두남녀의 이루지 못했던 슬픈 사랑에 대한 통곡도, 뛰어난 재미도, 신선함도 ...전달해 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영화를 단지 이문식이 출연했던 "나비"라고 기억할수 밖에, 이영화를 달리 기억할수 있는 뚜렷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살인의 추억과 같은 걸작이 나오는 요즘 시기에 맞물려 나비와 같은 영화가 탄생되었다는 사실은 분명 비보(悲報)가 아닐수 없다.(제작진과 관객. 모두에게.)
덧붙이기 : 김민종과 김정은 이종원의 연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말자. 관객도 때로는 침묵해야 할 때가 있으니. 바로 지금이다. 지금은 나비의 개봉전...이 아닌가? 쉽지않게 완성된 한편의 우리영화앞에서 내가 갖출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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