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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걸>[갱스 오브 뉴욕] 마틴 스콜세지가 그리는 뉴욕의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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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스 오브 뉴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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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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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3-08 오후 11:18: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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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열한 거리>, <택시 드라이버>, <분노의 주먹>, <좋은 친구들>, <카지노> 같은 영화들로 유명한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지. 거장이라는 호칭만큼이나 유명한 그의 작품들에게서 받는 인상은 아마도 잔인한 폭력이나 모순된 현실에서 잉태된 비정한 현실이 주는 심각함 일 것이다. 그가 연출했던 다른 작품들(<뉴욕 뉴욕>, <코미디의 왕>, <케이프 피어>, <칼라 오브 머니>, <순수의 시대>,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비상근무> 등)이 모두 심각하고, 폭력으로 일관되고, 비정한 현실만을 비판하고 묘사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가 유독 뉴욕의 어두운 곳의 부조리한 현실에, 그곳에 늘 상주할 것 같은 폭력에 그리고 화려한 뉴욕의 이면에 감추어진 사람들의 고독에 유난히도 집착하는 경향을 보여왔고 섬찟하리만큼 사실적인 내용을 담은 영화들로 많은 관객들과 평단에게 깊은 인상을 각인시켜 온 것이 사실이니 그런 선입견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너무도 사실적인,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냉소적인 그래서 더욱 섬뜩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그의 영화들(앞서 얘기한 갱스터 영화들과 택시 드라이버 같은 영화)은 그 화면이 담고 있는 잔인함보다는 그 내용이 주는 현실성이, 비정한 현실의 어두운 곳에서 실제로 일어날 것만 같은 사실적인 느낌이 충격이 되어 그 강렬한 인상이 오랫동안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경우가 참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이 분명 훌륭한 작품이고 영화 역사상 명작의 반열에 오를 명작들 임을 인정을 하면서도 그의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다거나 여러 번을 반복해서 보면서 두고두고 마음의 영화로 간직했던 영화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의 작품은 작품적인 면에서야 손색이 없을 작품이긴 하지만 대부분 그의 작품은 충격적이고 사실적이라 대체로 암울한 느낌을 주는 것이 영화를 보고 나서의 느낌이 그다지 개운하지 않은 까닭에 난 그의 작품을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감독 마틴 스콜세지가 뉴욕 뒷거리의 무자비한 범죄와 잔인한 폭력, 모순된 현실에 노출된 채 어린 시절을 보내서인지 아니면 이태리계 이민자의 후손인 자신의 혈통 때문에 토착의 미국인들과 완전히 융합하지 못하고 주변에 머물렀어야 하는 아웃사이더적 정서를 갖고 성장해서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태어나고 성장을 한 고향 뉴욕에 대한 이미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포근한 고향의 느낌이라기보다는 고향을 떠나 멀리 타국에 정착한 이주민이 살기에는 힘겹기만 한 비열하고 불합리한 것만이 팽배한 비정한 도시로만 보여진다. 실제로 그가 뉴욕을 사랑하고 있는지, 그가 평생 지니고 있는 뉴욕의 이미지가 그의 묘사만큼 어둡기만 한 곳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화려한 도시의 그늘 속에서 살아야 하는 운명을 지닌 가난할 수 밖에 없는 이주민이나 유색인종들에게 뉴욕이란 도시가 얼마나 고독한 곳인지 얼마나 비참함을 주는 곳인지를 알려야 하는 사명을 지닌 사람인 것인 양 30년 동안 줄곳 끊임없이 뉴욕의 그늘에 대한 탐구로 일관하고 있다. 그가 이야기하는 뉴욕의 스토리는 어쩌면 이주민으로 태어나 도시의 이면에서 어렵게 성장한 자신의 자서전적 독백이며 자신의 몸소 체험했었던 뉴욕이라는 도시가 주는 불합리함이나 모순에 대한 비판적과 애증이 결합된 경험담이었다.
자신의 고향이지만 애증어린 시선을 보여야만 했던, 자신의 모든 영화의 직간접적 모티브가 되었던 뉴욕이라는 도시를 자신만의 시각과 목소리 그리고 그만의 스타일과 방식으로 이야기해오던 거장 마틴 스콜세지가 뉴욕의 태동과 이주민과 토착 갱들간의 피의 역사, 거기에 미국의 암울한 근대 정치사가 맞물려진 한편의 거대한 장편 서사 영화 <갱스 오브 뉴욕(Gangs of New York)>을 연출로 우리에게 다시 다가온 것은 어쩌면 필연으로 느껴진다. 영화 <갱스 오브 뉴욕>은 마틴 스콜세지 영화인생 30년의 숙원이자 필생의 역작이며 초 호화캐스팅과 막대한 제작비를 감수하면서까지 만들어진 최초의 블록 버스터 영화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조상격인 이주민들이 처음 뉴욕에 도착하여 뉴욕을 형성하고 이곳에 정착하면서 겪었을 피의 역사에 대한 고찰이며 그가 여지까지 작품을 통해 보여준 뉴욕에 대한 남다른 비판과 냉소의 시선의 근간과 모태가 되는 영화로 감독 자신에게 굉장히 특별한 의미가 담겨져 있는 영화이며 그런 만큼 감독의 성과 열이 많이 들어있는 영화이다. 그래서일까 난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한 개인의 비극적 대립과 복수 그리고 사랑을 통해 보여주는 부조리한 미국의 근대 역사를 이야기하는 감독의 목소리가 이전의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시선과는 조금은 동떨어짐을 느꼈다. 감독의 뉴욕에 대한 애정이, 자신의 조상들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가득 담겨져 있음을 느꼈다. 비록 토착민에 눌려 목소리조차 낼 수 없었던 조상들의 모습이었고 폭동의 무질서와 미국 근대 정치의 어지러움에 묻혀 그 존재의 의미조차 희미해져 버린 이주민들의 모습이었지만 자신의 신념과 후손에 대한 사랑으로 토착민과 대치해 후손이 정착할 수 있는 영역을 구축하기 위해 협력하고, 부조리에 대항하는 이주민들(어쩌면 그의 조상들일지도 모르는)의 비장한 모습, 그러한 진통의 한가운데를 통과한 그들의 조상이 자랑스러워하는 사랑하는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존경을 하는 감독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따라서 영화는 전반적으로 그가 그리던 영화들의 느낌과는 달리 따뜻하다. 늘 반목하고 배신하며 혼자임을 절실히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고독한 주인공의 모습을 즐겨 그려왔던 스콜세지였지만 <갱스 오브 뉴욕>의 주인공만은 고독하지 않다. 주인공 암스테르담과 뜻을 함께하는 동지들이, 그를 정신적으로 지지하는 연인이, 아버지의 뜻을 잊지 않도록 그에게 정신적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기에 그는 고독하지 않다. 아버지에 대한 복수로, 사랑한 여인에 대한 애증으로, 복수의 대상을 잠시 포근한 부정으로 느껴야 했던 자신에 대한 자책으로 고뇌하던 그였지만 변함없는 사랑과 지지를 해주는 사람들과 함께인 이 영화는 따뜻하고 한편으론 아름답다(정작 영화가 보여주는 내용은 비열하고 잔인하고 폭력적이지만 말이다). 이 영화 속에서 스콜세지식 캐릭터는, 감독이 늘 그려왔던 인물의 모습은 주인공과 대립하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분하는 빌더 부쳐와 더 가깝다. (그래서 빌더 부쳐가 더 인상적인 배역으로 다가오고 있을 수도….) 생존하기 위해, 토착민으로 이주민의 침입(?)으로부터 자신의 영역을 수호해야 하는 도시의 수호자로 모두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기 위해 스스로 무자비함과 잔혹함만이 있는 괴물(?)이 되어 버린 고독한 인물 빌더 부쳐, 단 한 사람 이념이 달라서 적으로 대해야 했지만 신념이 같아서 마음속으로 존경을 간직했던 이를 스스로의 손으로 죽여야 했고, 자신이 딸처럼 거두었던 여인을 원수에게 빼앗긴 쓸쓸한 아버지이며, 자신의 분신 같은 처음으로 자식 같은 부성애를 느끼게 했던 한 소년으로부터 복수의 칼을 받아야 했던, 평생을 힘겨운 인생을 살면서도 내색한 번 할 수 없는 강하고 싶은 약한 인간의 외롭고 쓸쓸한 모습을 통해 뉴욕이라는 도시의 비정함 같은 것을 그곳에서 정착하고 살아가는 사람의 비애 같은 것을 빌더 부쳐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싶어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빌더 부쳐의 고독한 모습은 이주민인 그들은 아직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뉴욕의 뒷골목에 대한 그곳에서 터전을 잡고 살아가야 할 사람들(그 사람이 토착인이던 이주민이던 유색인종들이던)이 짊어지고 가야 할 극복해 나가야 할 운명적 굴레처럼 보인다.
영화 <갱스 오브 뉴욕>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 다우면서도 그답지 않은 방식으로 영화를 그려나가는 묘한 매력의 작품이다. 스콜세지 답지않은 방대한 스케일의 블록 버스터. 감독은 30년전 1840년대에서 60년대를 아우르는 초창기 뉴욕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하고 영화가 가져올 비극의 역사와 미국의 초기 역사를 아우르는 내용의 방대함이 가져올 제작비의 부담 때문에 이 영화의 영화화를 미루어야만 했었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의 변화를 겪으면서도 영화화에 대한 시도는 계속되었지만 그때마다 그 시대의 트랜드와는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작품의 현실화가 미루어지는 현실을 겪으며 감독은 일종의 타협 같은 것을 했었던 것 같다. 내용적으론 자신의 작품다운 비극적 이주민의 역사와 부조리한 정치를 표현하는 뉴욕의 태동기의 역사에 대한 문제의식을 보여주면서도 겉으로는 스타 시스템과 거대한 스케일의 세트를 이용한 블록 버스터의 외향을 갖춤으로써 영화의 내실과 외실을 함께 기하는 이 영화를 평생의 숙제로 생각했던 그만의 해법이었던 것 같다. 따라서 영화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현실의 부조리와 문제점을 정면으로 다루면서도 신념에 따라 불의에 대항하고 좌절에 맞서는 주인공의 모습을 현실의 모순을 개혁하고 선친의 의지 그러한 신념으로 자신의 동족의 리더가 되어 그것을 실행에 옮길 줄 아는 주인공을 그린다. 암스테르담이 16년을 벼르던 복수의 결과가 허무할지도 모르지만 현실이 그들에게 던져주는 상황이 그다지 희망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영화 <갱스 오브 뉴욕>의 주인공은 암스테르담은 가진 행복한 인물이다. 아버지에 대한 복수도 완성하고, 토착민의 마수로부터 자신의 동족을 지키는 데도 성공을 했으며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할 미래가 있다는 데 희망적이다. 비록 그들에게 닥친 정치적 현실이 결코 녹녹하지 않겠지만은 이주민인 그들이 앞으로 살아나가야 할 험란한 세상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지만 뜻을 같이하는 동지가 있기에 신념이 있기에 연인이 있기에 그들에겐 희망이 있다. 영화의 마지막 점점 변화해가는, 발전해 가는 뉴욕의 모습을 보여주는 감독의 의도는 그들의 희생 속에 더욱 발전할 수 있었던, 후손에게 화려한 도시를 선사하려고 노력했던 그들의 공로를, 그리고 남겨진 이들이 만들어야 갈 희망찬 미래에 대한 메시지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2001년에 완성해서 이미 쌍둥이 빌딩이 자취를 감춘 이후에 완성되고도 쌍둥이 빌딩이 있던 뉴욕의 모습을 영화 속에 삽입했던 건 그런 도시를 만들고자 노력했었던 도시 개척기의 그들의 노고(?)를 더욱 강조하고 싶은 감독의 의도는 아니었을지…
화려한 캐스팅 그러나 멋진 호흡 영화는 블록버스터를 표방하는 규모와 스케일에 걸맞는 스타시스템으로 관객을 유혹한다.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라면 빠지지 않을 인물들, 로버트 드 니로, 조 페시, 하비 케이틀 등의 배우는 이 영화엔 없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카메론 디아즈로 이루어지는 주연군은 스타과 동시에 대작에 어울리는 연기력을 함께 갖춘 배우들로 캐스팅되었고 리암 니슨, 트위드역의 짐 브로드벤트, 브랜던 글리슨 등의 조연군 역시 많은 영화 속에서 선이 굵고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온 배우들을 대거 포진시키며 영화는 블록버스터의 위용을 갖추는 동시에 뉴욕의 역사에 대한 서사라는 영화의 내용이 주는 무게도 함께 담길 바라는 이중적인 효과를 노린다. 스콜세지가 스타급 배우들을 기용하면서까지 블록버스터급으로 영화를 완성하여 자신의 숙원을 풀고자 했던 것 만큼 이 영화에 임하는 배우들의 모습도 자못 남다르다. 보다 성숙한 남성의 느낌으로 분노와 복수에 대한 비장함과 그리고 비극적 사랑에 괴로워하는 암스테르담을 진지하게 연기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천박한 소매치기의 모습이지만 도도하고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카리스마를 느끼게 하는 제니역의 카메론 디아즈 그리고 무자비한 빌더 부쳐역에 맞게 자신의 얼굴마져도 비열하게 일그러뜨리고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전혀 다른 모습으로 악역을 연기하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모습은 영화의 완성도를 더욱 높여준다.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와 악역이라는 정반대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인상적인 빌더 부쳐의 연기는 새롭게 영화 속에서 아마도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될 만큼 깊은 인상으로 다가온다. 스콜세지 다운 비극적 뉴욕사 그러나 그답지 않은 희망적 느낌의 엔딩. 영화는 표면적으로 자신의 지역을 지키려는 토착세력과 이 지역에서 자신의 영역을 얻으려는 아일랜드계 이주민들의 대립으로 시작된다. 영화는 토착민 갱과 이주민의 갱간의 대립과 빌더 부쳐와 암스테르담 발론의 개인적 원한을 피비린내 나는 투쟁의 역사를 그리며 동시에 그런 그들이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국가의 정치이지만 그들이 속해있는 국가의 부조리와 불합리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희생되어야 했던 개인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초기 비장감 넘치던 토착민과 이주민간의 결투가 강렬하게 보여지며 이후 벌어질 암스테르담의 분노와 복수에 대한 예감을 빌더 부쳐의 무자비함을 강하게 보여주었던 것에 비해 영화의 막바지에서 보여지는 빌더 부쳐와 암스테르담의 복수극이 군대의 폭격으로 허무하게 폭염과 함께 묻혀버린 것으로 마무리된 건 그들간에 있었던 복수가 주는 허무함과 동시에 그들의 투쟁의 역사의 마감을 또한 역사 속에 묻힐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존재를 역설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로 보여진다. 적의 손이 아닌 폭동의 아수라장 속에서 군인들의 총에 의해 희생될 수 밖에 없었던 그들, 자욱한 폭염의 흑면지 속에 묻힐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투쟁,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거대 미국의 정치에 반대하는 거대한 드래프트 폭동에 혼란스럽게 희생당하는 미약하고 무의미할 수 밖에 없는 개인, 소수 집단의 모습은 그들의 삶이 얼마나 허무하고 아이러니 한 비극적 역사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아수라장 속에서도 자신의 복수를 완수한 암스테르담과 만신창이가 되어버렸지만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앞으로의 희망을 가진 두 사람의 뒷모습으로 마무리되는 영화의 엔딩은 그러한 비극적 역사를 통과해온 그들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또한 서로를 존경하면서도 살아있을 때엔 반목할 수 밖에 없었지만 발론과 빌더 부쳐가 나란히 묻혀있는 무덤은 죽어서 화해하는 토착민과 이주민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희망적인 부분이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필생의 역작 <갱스 오브 뉴욕>은 너무 긴 러닝타임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아버지의 복수를 해야 한다는 죽은 토끼 집단을 부활시켜야 하는)을 잠시 잊고 빌더 부쳐에 그늘에 안주하는, 독기는 있으나 상대적으로 초라하게만 보여지는 초반 주인공의 모습 때문에, 조금은 허무하게 끝나는 엔딩 때문에 다소 지루한 느낌을 줄 수 있을 만큼 김이 빠지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중반과 후반을 아우르는 빌더 부쳐와 암스테르담간에 보여지는 심리적 긴장감과 다시 부활한 죽은 토끼세력과 토착세력에 대한 대립, 정치세력을 통한 세력의 확장 등을 통한 죽은 토끼세력의 도약과 후반에 가서야 등장하는 그 실체를 드러내는 진정한 동지들의 모습이 있는 이 영화는 최근에 본 영화 중 가장 인상깊은 영화 중 하나로 기억하게 한다. 또한 영화가 주었던 팽팽한 긴장감에 비해 다소 허무하게 드래프트 폭동 속에 묻혀버린 빌더 부쳐와 암스테르담의 마지막 대결을 허무하게 끝나도록 연출 할 수 밖에 없었던 감독의 의도를 읽고자 노력한다면 이 영화가 마지막에 보여주는 희망의 메시지도 같이 읽을 수 있으리라 아울러 이 영화의 매력과 진정한 재미 그리고 극이 주는 긴장감을 확실히 느끼며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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