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행제로>의 80년대 고삐리 쌈장 박중필이 21세기에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김지훈(권상우)으로 다시 환생했다. 시대가 변모한 만큼 그때보다 훨씬 더 잘생겨졌고, 키도 늘어났고, 분위기도 터프해졌다. 그사이 어디선가 돈을 좀 벌어놨는지 미국으로 유학도 다녀오고, 궁궐 같은 집에서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녹슬지 않은 전투력(?)으로 여전히 고등학교 캡짱으로 남아있는 그에게 하늘보다 더 무서운 아버지의 명령으로 원치 않는 과외를 받게 되는데, 이번에 들어온 그 과외선생 참으로 특이하다. 명품(?) 같은 몸매에 하는 짓은 겁 많은 엽기적인 그녀이다. 더군다나 고삐리 쌈장 김지훈과 나이까지 동갑이다. 이 둘을 한데 모아놨으니 특이한일 아니 생긴다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이다. 이렇듯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약간은 독특한 상황설정의 유쾌함으로 관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70% 정도는 만족이요, 나머지 30% 정도는 실망이었다. 중요한건 그 만족과 실망의 차이가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 나머지 30% 정도를 아예 빼버리거나 잘만 다듬어서 내놓았다면 전체적으로 볼 때 중심도 잘 이루어지고, 코미디 장르로서의 영화로는 상당히 괜찮은 작품이 등장했을 텐데, 그 30% 부분 때문에 영화에 기꺼이 한 표를 던져주기에는 많이 망설이게 만든다. 어차피 관객들은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내용이나 결말에 많은 기대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화를 반드시 관람하지 않아도 그 정도는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21살의 동갑내기의 남녀가 독특한 관계로 만나 시끌벅적대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야릇한 연민의 정을 느낀다는 전혀 특별해 보이지 않는 내용이다. 문제는 이런 식상하고, 진부한 내용을 예전의 비슷한 내러티브의 영화들 보다 얼마나 더 세련되고, 특출 나게 만들어 놓았느냐가 관건일 것인데, “너무 아쉽다.”라는 생각이 왜 이리도 자꾸 든단 말인가..
영화는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별다른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게 진행된다. 그 둘의 원치 않은 만남과 그로인해 생기는 에피소드들은 보기만 해도 웃음이 터지고, 박수까지 치게 만든다. 그런데 초반부터 자꾸 거슬리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남녀 양아치들이었는데, 김지훈을 쓰러뜨리고 교내 진정한 쌈장자리에 오르려는 종수와 김지훈의 외모에 흠뻑 반해 혼자서 좋아라 난리치는 호경이었다. 물론 그 둘의 연이은 등장으로 인해 초반에 플롯을 이끌어나갈 구실을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어느 정도까지 나오다가 사라져줄 것으로 알았던 그들이 아니, 반드시 사라졌어야만 했던 그들이 마지막까지 가서는 영화를 완전 뒤죽박죽 만들어 버렸다. 다된 밥에 코를 빠트려도 유분수지, 어째 이렇게 잘나가던 영화를 그렇게 처참히 묵살시켜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사실 그 둘이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은 아니지만, 종수가 당구장으로 불러낸 조폭들의 난데없는 마구잡이 등장에서부터 영화는 삼천포로 빠지기 시작하고, 한참을 허우적대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며 마무리 된다. 초반부터 중반까지 대체적으로 잘 쌓여졌던 영화의 내공이 결말 바로직전 관객이 민망할 정도로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다. 이 점이 바로 영화에 후한 점수를 주기에 상당히 머뭇거리게 한다는 것이다. 조직 깡패들이 영화 속에 등장한다는 것 자체가 싫은 것은 아니지만, 조폭 영화가 이제야 좀 잊혀질만한데,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또다시 등장하는 것도 불만스럽기만 하다. 그들의 존재가 영화에 플러스 요인을 준다면야 굳이 할말은 없겠지만, 솔직히 안 나와도 얼마든지 재밌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을 텐데, 그 방법을 택한 감독이 참으로 야속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여타의 코미디 영화들과 같이 영화가 끝나면 공허한 가슴만 부여잡게 된다는 것도 문제가 된다. 권상우와 김하늘의 알콩달콩한 사랑이야기 만으로는 관객들의 마음에 작은 싱그러움만 줄뿐, 더 이상의 소득은 찾아볼 수가 없다. 웃다가 끝나버린 그들만의 해프닝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영화가 주는 웃음으로만 봐도 작년 말에 개봉한 <색즉시공>의 절반정도 수준에 머물러 있고, 그렇기 때문에 “한국 코미디의 현재에서 제자리걸음만 내딛는 격” 이라고도 보는 것이다. 물론 지금 현재 이 상태의 코미디에서 눈에 확 들어오는 발전을 보자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래도 이왕이면 예전에 수도 없이 울궈먹은 절차들을 되밟지는 말아야 하지 않았나 싶다. 세상의 흐름에 타협을 해야 한다지만, 너무 안일하게 의존해버린 타협은 부작용이 뒤따르고, 더불어 감독 자신의 색깔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좀더 독창적인 코미디의 등장이 참으로 그리워진다.
<동갑내기 과외하기>가 선택한 방법이 여지껏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잘 먹혀들어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관객들의 영화관람 취향을 이용해 굳이 어려운 방법을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이익을 뽑을 수 있는 방법을 계속해서 선택할 것이고, 그 방법이 당연하다고 여길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로인해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는 예술영화들과 삶에 진지함을 논하는 다소 무거운 영화들이 사라져간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멸종될 일은 없겠지만, 그런 영화들의 등장이 더욱 띄엄띄엄해짐으로써 나중에 가서는 지금보다 더 적응을 못할 수도 있다. 파와 콩은 덜어내고, 맛있는 소세지와 햄버거만 먹어 키는 크지만, 체질은 예전보다 훨씬 허약해진 요즘 아이들의 편식성향처럼 한국영화계도 부피만 계속 성장할 뿐, 내실을 다지기에는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도망자>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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