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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링] 신선한 맛의 공포를 느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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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링<남겨진7일> - 고어 버번스키作 20자평 : 매번 맛보던 맛이 아닌 서구적인 공포맛은 신선했다.
얼마나 공포스럽기에 한 편의 소설이 세 나라에서 -그것도 어느 정도 자국의 영화수준이 있는 나라에서- 잊혀질만 하면 나오는 것일까? 영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조차도 들어 봤음 직하고, 왠만큼의 문화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은 책,영화를 통해 접해 봤을 이 식상한 소재를 '돈 벌이만 되는 소재를 다루는' 헐리웃에서 왜 뒷북을 치는 것일까? 분명 리메이크작의 성공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이 말이다.
사실, 극장에서 <더 링>의 포스터를 접했을 땐, 이 <링>이 그 <링>인지 몰랐다. 그래... 이렇게 생각할 정도로 너무 식상한데... 설마 그 <링>이겠어? 하는 생각과 그냥 스쳐갔다. 얼마후 이 <링>이 그 <링>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을땐, 보고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돈 잘버는 헐리웃에서 선택한 소재니까 분명 새로운 코드로 풀어 나가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 역시 <찰리의 진실>을 봤을때의 '혹시나와 어쩌면'를 품으며 보러 갔다.
이 영화를 볼 때 먼저 생각나는 것이 '동양의 공포를 얼마나 잘 서구적으로 표현했나. '이다. 동양적 공포의 대표이자 추상적 공포인 한(恨)을 과연 시각적 공포만을 즐기는 서양인들의 입맛에 얼마나 잘 맞추었냐가 관건이라 할 수 있다. 근데 이 점에서는 그다지 걱정 할 필요가 없는거 같다. 전혀 새로운 시각에서의 공포가 있다는 것이다. 일본판 <링>에서 보면 억울하게 죽은 여인의 원한이 산 사람들에게 비디오를 통해 공포를 조성하는데, 이를 파혜치는 여인이 수수께끼를 파혜치는 과정만 보여 줄 뿐, 중간의 지루함을 느끼는 터이다. 즉 시각적으로 전달되는 섬뜩함보다는 약속된 시간에 의한 강박감과 초조함만이 있을 뿐이었다. 허나 서양공포물답게 링에서는 그간 원작들이 주력했던 초조함이나 강박감이 아닌 시각적인 공포를 전달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기대하고 한다면 마지막, 즉 그 무언가를 알았을 때의 힘은 기대이상이든 이하든 굉장히 크다. 반대로 우리가 무언가의 존재를 암시받고 무언가에게 다가갔을 때는 맥이 풀리게 마련이다. 원작에서는 공포감을 초조함으로 바꿔 농축된 힘으로 마지막 장면에서 그 공포를 여지없이 풀어준다. 이것은 동양 공포물에서 나오는 '엔딩의 힘'이라 할 수 있다. 이번 헐리웃판에서는 그 '엔딩의 힘'이 떨어진다. 이는 위에서 얘기한 중간중간 섬뜩함을 보여준 헐리웃판에서는 다소 그 엔딩의 힘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우리에게 동양적 공포를 서구적인 시각으로 풀어낸 이 영화가 구미에 맞은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알고있는 소재를 새로운 시각으로(물론 그다지 새롭지는 않다) 풀어내는 모습을 구경하기란 꽤 흥미있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영화를 관람하면서 느낀 신선함은 그간 봤던 원작이나 원안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공포를 체험했기에 그랬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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