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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이미지, 탈피하기 쉽지 않더라” <반도> 이정현
2020년 7월 28일 화요일 | 이금용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이금용 기자]
<꽃잎>(1996)의 광기어린 ‘소녀’, 재개발 동의를 받기 위해 살인을 마다않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2015)의 ‘수남’, 그리고 차를 탄 채 좀비떼를 밀어붙이는 <반도>의 ‘민정’까지. 배우 이정현을 떠올리면 독특하고 센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정현은 연기를 할 수 있다면 무슨 역이든 좋다면서도 이미지가 고착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조심스레 밝혔다.


우선 축하한다. <반도>가 개봉하자마자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걱정도 했고 흥행은 전혀 기대하지 못했다. 개봉 전날까지도 감독님과 개봉을 미뤄야 할지를 두고 대화를 많이 나눴다. 극장을 비롯해서 영화계 전반이 어려운 상태라 개봉이 연기되거나 아예 제작 중단된 영화가 많은데 <반도>를 기점으로 영화 시장이 활성화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시사회 현장에서 본 <반도> 팀은 화기애애하던데 실제 출연진과의 호흡은 어땠는지.
배우들이 열정도 넘치고 가깝게 지냈다. 내 씬이 없어도 현장에 내려가서 다른 배우들 연기를 구경하고 그랬다. 꼭 다른 작품 보는 것 같고 내가 연기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감독님이 유머가 있으시다. 연기도 잘 해서 저번에 만났을 땐 영화 결말이 달라졌다며 나 없을 때 다 죽는 장면을 촬영했다고 해서 깜빡 속아넘어갔다. 정말 슬펐다. (웃음)

<명량>, <군함도>에 이어 이번 영화까지 대작에서 자주 만나는 것 같다.
흥행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고르는 건 아닌데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 계산을 많이 하지는 않고 캐릭터가 재밌고 이해되면 시나리오를 수락하는 편이다.

그렇다면 <반도>의 어떤 점이 재밌었나. 평소 좀비물을 좋아하는지.
좀비를 워낙 좋아한다. <아이엠히어로>는 주변에서는 별로라는데 나는 재밌게 봤다. (웃음) 또 내 노래 중 박찬욱 감독님이 찍어준 ‘브이’라는 곡의 뮤직비디오에도 좀비가 나온다. 연상호 감독님의 <부산행>과 <서울역>은 4~5번 정도 봤다. 그래서 <반도> 출연 제의가 들어왔을 때 ‘드디어 연상호 감독님과 작업하는구나!’하는 설렘이 먼저 들었다. 게다가 시나리오도 재밌고 진화한 좀비라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카체이싱 장면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기도 했고.

관람 포인트를 꼽는다면.
높은 완성도의 CG 그리고 4D 특수관에 적합한 포맷이 <반도>의 차별화 지점이다. 몸소 체험하는 듯한 즐거움도 있고 여러모로 가족끼리 즐기기 좋은 여름 블록버스터라고 생각한다.

세계관을 공유한 연 감독의 전작 <부산행>이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면서 속편에 대한 기대가 많이 커졌다.
감독님이 <부산행>과 이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처음부터 못 박았다. 물론 같은 세계관이지만 전혀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는 거니까 괜찮았다. 만약 내용이 직접적으로 이어졌다면 부담이 심했을 거다.
영화 때문에 액션스쿨도 다녔다고 들었다. 액션이 드러나는 장면이 적어서 아쉽진 않나.
액션연기는 처음이라 두세달 정도 따로 액션스쿨을 다녔다. 그런데 촬영 전 무술감독님께 물었더니 총 잡는 것만 연습하라고 하시더라. (웃음) 말씀처럼 촬영이 정말 수월했다. 안전하기도 했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출연진들도 공감할 거다. 보통 액션을 촬영할 때 필요하지 않은 씬을 찍다가 다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연 감독님은 필요한 부분만 짧게 촬영하고 사후에 편집과 CG로 파워풀하게 살려냈다.

영화 배경의 80%가 풀CG로 구현됐다고 알고 있다. CG의 장점도 있지만 배우로서 어려운 점도 있을 거 같은데.
사실 그에 대한 염려도 있었다. 주변이 휑한 그린매트에서 과연 감정이 살까, 내가 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걱정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런데 감독님이 연기를 구체적으로 지도해주고 또 그 자리에서 사전제작한 CG를 합성해서 보여줬다. 그 덕에 연기할 때 난감할 일이 없었다. 사전작업만 몇 년을 했다는데 할리우드에 비해 턱없이 적은 예산으로 CG 수준을 이렇게 끌어올렸다는 것이 대단했다. 폐허가 된 서울의 정경도 비주얼적으로 멋있게 완성돼서 기뻤다.

CG도 좋지만 <군함도>처럼 실제로 세트장을 지어서 촬영하는 게 더 실감나지 않나.
<군함도> 때는 한 장면에 무려 엑스트라 백 명이 등장하던 장면도 있었다. 인원이 많은 만큼 합이나 동선을 맞추는 게 너무 어려웠고 위험한 지점도 있었다. 사실적인 것도 좋지만 안전이 최선이다. (웃음)

이번 영화에선 아이 둘을 데리고 살아남은 엄마 역으로 나온다. 결혼은 했지만 아직 아이가 없는데 어떻게 모성애를 이해할 수 있었나.
원래 내가 질문이 많아서 감독님들에게 드러나지 않는 전사를 항상 물어본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촬영 들어가기 전에 감독님에게 민정이나 딸로 등장하는 ‘준이’(이레)와 ‘유진’(예원)에 대해 질문을 했다. 이 가족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또 그렇게 강해지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정말 많이 물었다. 그런 설명을 듣고 나면 캐릭터 해석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게다가 나는 딸만 다섯인 집의 막내라 어릴 때부터 조카 여덟 명을 돌봐서 어머니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또 아이들(아역 배우)이 리허설 때부터 엄마라 부르며 따라다니니까 진짜 내가 낳은 딸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민정을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관객 반응을 좀 살피는 편인지. 민정 역이 드라마의 주축인 한편 모성애를 동력 삼아 강인해진 엄마라는 설정이 다소 평면적이라는 평이 많다.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내가 맡을 역할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재밌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아마 어머니들은 많이 공감하실 거다.

혹시 성별이나 나이를 배제하고 욕심나는 배역이 있었나.
개인적으로 631부대의 ‘서대위’(구교환)와 ‘황중사’(김민교). 그 중에도 특히 구교환씨가 연기한 서대위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다. 주변 상황에 휘둘리는 심약한 서대위가 대위라는 직급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부분도 그렇고, 여러 모로 다양한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모험적인 배역이라고 생각한다.
서대위 역할도 본인만의 개성으로 색다르게 소화해냈을 것 같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가 특정 이미지로만 활용되는게 아쉽다.
데뷔작 <꽃잎>으로 큰 주목을 받았지만 나이가 어린 탓에 작품과 배역에 한계가 있었다. 어린 나이에 처음 겪은 하락세가 당시엔 큰 고민으로 다가왔다. 나이가 들면 달라질 거라고,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많아질 거라고 믿었다. 한동안 연기활동을 쉬다가 음악을 좋아하고 이미지 변신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음반을 냈는데 역효과만 났다. (웃음)

역효과라는 건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
강한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싶었지만 내가 원한다고 다 되는게 아니더라. 이미지 변신을 할 작품을 고르다보니 연기공백기가 길어졌다. 연기는 못 하고 계속 음반활동만 하고 있던 차에 박찬욱 감독님에게 단편 <파란만장>(2011) 출연 제의를 받았다. 하도 연기 공백기가 길어지니 “영화판에서 은퇴한 줄 알았다”고 하시더라. (웃음) 가수활동도 순탄치만은 않아서 하락세와 상승세가 반복됐는데 이 과정이 정신적으로 많이 힘겨웠다.

사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선 여배우들에게 (남자배우에 비해) 들어오는 시나리오 수 자체가 훨씬 적다. 여배우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제한적인데 30대에 접어들면서 더 체감하고 있다. 요즘은 시나리오가 재밌다면 무조건 출연하려 한다. 이미지가 고착되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연기를 할 수 있다면 무슨 역할이든 좋으니 작품이 많이 들어오면 좋겠다.

마지막 질문이다. 영화며 예능이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은.

얼마전 문정희 선배님, 진서연 배우와 함께 하는 스릴러물 <리미트> 촬영을 시작했다. 바빠서 개인시간이 나도 예전처럼 뭔가를 배우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예전과 다르게 일주일에 두 번은 촬영을 쉬는데 딱 좋은 것 같다. 예능 촬영은 끝난 상태다. 욕심을 부려 더 출연했다면 스케줄이 너무 힘들었을 거 같다.

요즘은 맛집 레시피를 연구해서 만든 요리가 비슷한 맛을 낼 때,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 요리를 함께 먹고 수다를 떨 때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내 레시피가 예능 방송을 통해 널리 알려져서 기쁘다.

사진제공_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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