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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는 변해도 청춘의 본질은 같다” <젊은 남자> 배창호 감독
2022년 10월 17일 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지난해 시작한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신드롬은 올해 주연을 맡은 이정재가 아시아인 최초로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최고조에 다다랐다. 배우의 인기는 자연스럽게 데뷔작 <젊은 남자>의 관심으로 이어졌고, 마침 연출을 맡은 배창호 감독의 데뷔 40주년과 맞물리며 리마스터링 재개봉으로 관객을 찾는다. 30년 전 X세대를 대표하는 질주하는 청춘 ‘이한’(이정재)에게서 오늘의 이정재와 닮은 점과 다른 점을 살펴보는 색다른 즐거움을 안길 거로 기대된다.

도서 ‘배창호의 영화의 길’ 출간, 데뷔 40주년 특별 기획전, 그리고 이번 <젊은 남자> 재개봉까지 배창호 감독은 어느 때보다 활발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마침 숙원 같은 예수의 생애를 다룬 작품의 시나리오 작업이 끝났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이번 재개봉을 발판 삼아 작품의 본격적인 착수를 위해 뛰어보겠다는 각오를 전하는 감독을 만났다.


1994년 개봉한 <젊은 남자>는 ‘배창호프로덕션’을 설립하고 직접 제작한 첫 작품이다.
당시 제작이 자유화되면서 감독도 직접 프로덕션을 차려서 만들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부연하자면 1980년대 말에 영화법이 개정되면서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열렸고, 1990년대 초반 대기업에서 비디오 사업을 하면서 영화 사업까지 영역을 확장할 때다. 기획자와 일부 감독들이 대기업의 투자를 통해 제작사를 설립하기 시작했고, 이에 시대의 흐름을 따라 직접 투자를 받아서 해보자고, 제작을 겸하게 됐다.

첫 작품으로 X세대를 전면에 내세운 까닭은.
<젊은 남자> 직전에 만든 영화가 1992년 개봉한 <천국의 계단>인데 이 영화의 정통적인 드라마 같은 스토리텔링에 호불호가 엇갈렸다. 인생의 깊이를 느낀 분, 즉 연령대가 어느 정도 있는 분은 좋아했는데 젊은 세대는 너무 멜로적으로만 느낀 것 같더라. 관객의 반응을 접하고 새로워질 필요 그러니까 어떤 변화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잠시 휴지기에 들어갔다. 그 사이에 결혼을 했고. (웃음) 공교롭게도 이때 개인PC의 보급뿐만 아니라 X세대가 등장하는 등 급변화를 맞는 시기가 찾아왔다. 이러한 젊은 세대를 나의 관객으로 끌고 가야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영화가 <젊은 남자>다.

배병호 작가와 공동으로 각본을 썼다.
마침 친분이 있고, X세대와 가까운 배병호의 도움과 내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시나리오를 썼다. 대학을 다닌 1970년대는 통기타와 청바지 등이 유행이었는데 이를 기성세대는 퇴폐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었지만, 꼭 그렇지는 않거든. 시대에 따라 선호되는 문화와 스타일은 다를 수 있지만, 이는 현상일 뿐 젊음(청춘)의 본질은 같다고 느낀다. 어느 시대이든 젊은 세대의 꿈과 희망, 성공과 좌절은 마찬가지일 거다. 다만 시대에 맞는 옷을 입으려 했고, 그게 X세대인 거지.

40대의 배창호가 20대 X세대에게 손을 내민 것 같은 인상이다. 기존 세대와 다른 당시 X세대의 특징은 무언가.
무엇보다 자아실현과 자기표현 욕구가 강해진 세대라고 본다. 매스컴의 영향력이 더욱 커졌고 그러면서 연예계 등을 향한 갈망도 더 강해졌다. 사회적으로 이를 부추기는 분위기이기도 했다. 영화를 만들면서 어느 정도 이러한 세태에 약간의 경종을 울리고 싶은 부분도 있었다. 꿈(목표)을 향해 너무 제어장치 없이 달리는 거에 대해 말이다. 이후 에이전시는 기업화되고, 노예 계약 등의 이슈가 불거지는 등 극 중 ‘이한’(이정재)과 같이 무명 연예인이나 지망생이 겪는 억울함과 설움 등의 비슷한 사례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주인공 이한을 소개한다면.
음, 그는 ‘승혜’(이응경)에게 첫눈에 반하는 순정도 있고, 친구 ‘재이’(신은경)를 위해 돈을 아까워하지 않는 의리도 있고, 또 자기를 육체적으로 유린하려는 실장(김보연)의 유혹을 뿌리칠 정도의 도덕성도 있는 친구다. 복잡다단하고 한편으로는 연민이 느껴지는 인물이다.

데뷔 1년밖에 안된 이정재 배우를 파격적으로 발탁했다.
일단 신인배우를 최우선으로 캐스팅하려 했었다. 누군가 이정재 배우의 사진을 보여주는데 분석적으로 얘기하기는 힘들지만, 뭔가 이한 역에 맞겠다 싶은 부분이 있었다. 나름의 개성과 매력이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무채색 같은 면이 있더라. TV를 통해 보니 연기도 괜찮았고, 실제 만나 보니 성격도 좋더라. 영화 후반부 촬영 즈음해서는 드라마 <모래시계>와 겹쳐서 그가 많이 고생했다. 그러고 나서는 바로 군대에 갔고 말이지. 사실 영화보다는 이후 <모래시계>가 전국적인 신드롬급으로 히트를 쳐서 크게 주목받았다.

영화로 주목받지 못했다고 하기에는 이듬해 대종상, 청룡상 등 신인배우상을 휩쓸었다. 이정재 배우 본인도 일전에 무비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자기 작품 중 <젊은 남자>는 빼놓을 수 없다고 꼽은 바 있다.
그렇게 이야기한다니 고맙다. 이후 내가 연출한 <흑수선>(2001)에 다시 출연했고, 가끔씩 통화하곤 했다. 그때의 인연을 그 친구(이정재)가 챙겨서 이어온 거지.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28년 만에 재개봉한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공개 후 이정재 배우의 데뷔작인 영화에 관한 문의가 많았다고.
VOD 서비스를 따로 안 해서 궁금해도 볼 경로가 없던 거지. 이번에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제대로 보여주게 돼서 기쁘다. 시사를 통해 먼저 접한 젊은 세대들이 신기하게 바라보더라. 그때의 헤어스타일이나 의상 등 패션 등이 전혀 촌스럽지 않다고 말이다.

3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관객을 찾는데, 젊은 세대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나.
글쎄, 감상은 관객이 몫이라고 생각하고 다만 젊은 세대를 향한 안타까움이 점점 커지는 면은 있다. 우리 때는 상대적으로 편했거든. 기회도, 기회를 잡고 성공하기도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물론 예전에도 기회를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나뉘었지만, 이 영화의 배경인 1990년대는 더욱 치열했고, 그 후 30년이 지난 지금은 그보다 훨씬 더 치열해지지 않았나. 영화감독만 해도 그렇다. 데뷔하기도 힘들고, 어렵게 데뷔했다고 해도 다음 작품을 이어가는 건 더욱 힘들다. 창의력을 북돋아 주는 여건은 점차 악화되는 것 같아 마음 아픈 거지.

간혹 기회가 되면 젊은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꿈은 이뤄진다’는 건 하나의 샘플일 뿐 거짓 희망일 수 있다고. 성공의 신화일 뿐이지 모든 사람의 꿈이 다 이뤄지지는 않거든. 성취를 위해 계속 전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론 포기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도서 ‘배창호의 영화의 길’ 출간, 데뷔 40주년 특별 기획전, 그리고 이번 <젊은 남자> 재개봉까지 어느 때보다 활발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책을 간단히 소개한다면.
내 영화에 관한 연구 논문을 쓰는 안재석 감독(<마차 타고 고래 고래>(2017) 연출)과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눴고, 그 대담을 좀 더 정리해서 출간한 거다. 마침 데뷔 40주년이라 이제껏 만든 작품을 글로 정리해서 공유하고자 했고, 영화를 안 본 분이라도 한국영화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다듬어 풀어냈다.

출간 기자회견을 통해 예수의 생애를 다룬 작품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고 밝힌 바 있다.
예수님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은 지는 오래전이다. 그만큼 사전 조사와 준비 기간이 길었다. 예수의 생애를 다룬 4복음서를 바탕으로 수정에 수정을 거쳐 2시간 기준으로 3부작 분량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이제는 착수할 수 있겠다는 판단에 공식적으로 알리게 됐고, 시나리오를 들고 투자사와 제작사 등을 상대로 본격적으로 뛰어보려고 한다.

<꼬방동네 사람들>(1982), <고래사냥>(1984), <깊고 푸른 밤>(1985),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젊은 남자>(1994), <러브 스토리>(1996), <정>(2000)까지 총 7편을 상영한 특별전도 무척 뜻깊었겠다.
내 영화를 기억하는 분에게는 나라는 존재를 다시 환기하고, 젊은 세대에게는 내 영화를 알린 계기가 된 의미 있는 자리였다. 총 여섯 차례 GV를 진행했는데 직장인임에도 불구하고 전회 참석한 분이 꽤 계셨다. 특히 지방에서 올라온 어머니와 아들이 기억에 남는다. 영화를 본 관객의 반응은 예전과 같은 분도 있고, 더 세심하고 깊이 있게 보는 분도 있어 반갑더라. <젊은 남자>, <러브 스토리> 등은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상영했는데 디지털이 갖는 디테일한 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운드, 소품 등이 필름보다 훨씬 잘 보여서 나도 놀랄 정도였다.

요사이 외부 활동이 드물었던 안성기 배우가 기획전 개막식에 참석해 근황을 알렸다. 혈액암 투병 소식이 알려지며 안타까워하는 팬이 많다.
그를 한 10개월 만에 보는 자리였고, 나 역시 다음 날 기사를 보고 나서야 투병 소식을 알았다. 건강이 좋지 않은 와중에도 참석해 줘서 더욱 고마웠다. 반갑기도 하고 예전과 같지 않은 모습에 마음 한편이 무겁더라.

안성기 배우는 배창호의 페르소나 아닌가.
안성기 배우는 나 보다 한 살 많은 형님이다. (웃음) 내 열 여덟 편의 영화 중 열 세 편을 함께하리라고는 미처 몰랐다. 내가 조감독한 작품과 같이 출연한 <개그맨>까지 하면 총 열 여섯 편을 같이 했다. 안성기는, 워낙에 아역으로 출발했지만, 그가 성인 배우로 등장할 무렵에는 어떤 남자배우의 새로운 탄생이라는 느낌이 있었다. 대단한 미남은 아니지만, 우수 어리고 선하고 지성적인 면모를 다 갖춘 배우였다. 감독이 색을 입히기 좋다고 할까. 특별한 친분이라 계속 작품을 맡긴 게 아니고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생각해보면 다 안성기와 어울리더라. 내 영화뿐만 아니라 수많은 의미있고 좋은 작품에 참여해 오지 않았나. 최근 개봉한 <한산>에서도 묵직하게 무게를 실어 줬고 말이다. 어딘가 전체주의적인 느낌이 들어 ‘국민’배우라는 단어 자체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안성기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호칭이다. 폭넓은 연기로 그만큼 국민에게 사랑받았으니 말이다.

부산국제영화제 부대행사로 쿨투라(문화예술 월간지) 100호 기념 북콘서트에 참여하는 거로 알고 있다. 잘 진행하시기를 바라고, 마지막 질문이다. 배창호는 어떤 사람인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 좋은 영화를 만들도록 길을 열어 주셨고, 덕분에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삶의 많은 부분에서 은혜를 느낀다. 시행착오 또한 이를 통해 배운 게 있으니 역시 은혜라 하겠다.


사진제공. ㈜스튜디오보난자

2022년 10월 17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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