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음악과 인생이 어우러진 <녹턴> 정관조 감독
2022년 8월 29일 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성호는 참 그대로예요. 가슴 아픈 부분이에요.” 성호-건기 형제와 엄마 손민서, 세 인물의 10여년의 세월을 밀착해 담아낸 정관조 감독은 말한다. 자폐 스펙트럼을 지닌 음악가 은성호에게는 세월이 비켜간 듯하다. 동생은 성인이 되고 엄마의 머리는 희끗희끗해졌지만, 그만은 변함이 없다. 오롯이 자기의 세계에 사는 형과 평행선같이 접점이 없던 동생이 어느 순간 ‘통’한다. 음악을 매개로 형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통한 순간을 포착한 감독을 만났다.

2019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초청을 시작으로 2020년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다큐영화상을 수상하는 등 유수의 영화제에서 호평받았다. 영화의 어떤 점에 주목했다고 생각하나.
긴 시간에 걸친 인물에 밀착한 촬영 방식에 진정성을 느낀 것 같다. 가족의 내면을 깊이 있게 본 지점에,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예술성을 인정받은 게 아닐까 한다. 또 <녹턴> 속 인물들은 카메라가 마치 앞에 없는 듯, 거리낌 없이 행동하는데 이런 촬영 방식을 좋게 본 것 같다.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본연의 모습을 담을지 오랫동안 고심했는데 이런 노력이 읽힌 듯하다.

해외 영화제에서 기억에 남는 반응이나 리뷰가 있다면.
모스크바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것도 믿어지지 않았는데 영화제에서 ‘그해 가장 도전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인생과 음악이 어우러졌다는 평을 보고, 왠지 잘 될 것 같더라. (웃음) 음악이 가족이 화해하는 매개로 역할 한 부분도 감동이라는 반응이었다.

오랜 기간 노력 끝에 얻은, (출연자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게 하는 노하우는 뭔가. (웃음)
음… 시간? 늘 카메라를 들고 만나고, 하루 종일 촬영하기도 한다. 덕분에 촬영 기간도 매회 촬영하는 시간도 길고 따라서 나오는 영상의 양도 엄청나다. 이런 시간을 통해 그들은 나와 카메라의 존재를 동일시하게 되는 것 같다. 대부분 특별한 요구를 하지 않고 일상을 따라간다. 작은 부분이라도 일부러 연출하지 않고 심지어는 사전 인터뷰도 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인터뷰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내 의도가 드러나기에 그렇다.
<녹턴>
<녹턴>

<녹턴>을 보면 가족 간에 갈등하는 모습이 때때로 잡힌다. 다큐멘터리스트로서 어느 선까지 담고 보여줘야 할지 고민이 클 것 같다. 경계의 기준이 있다면.
촬영할 때는 내 형제, 부모, 이웃이라는 생각으로 접근한다. 보여주기 싫은 부분이 있는 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안 찍을 수도 없다. 그래서 카메라를 숨겨 놓지 않으려 한다. 다시 말해 카메라를 너무 높거나 낮은 곳에 놓고 찍는 게 아니라, 인물의 눈높이에 놓고 그들에게 카메라가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게끔 한다. 나라는 사람이 촬영하고 있으니 본인들이 허용되는 선까지만 보여 달라고 무언으로 말하는 거다. (출연자가) 원하지 않는 부분까지 굳이 담고 싶지 않아서다.

동생 ‘건기’가 고등학생이던 2008년의 기록으로 시작한다. 2017년 러시아 초청 공연까지 가족의 10여년 간의 시간을 담았다.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30분짜리 방송 다큐를 찍은 게 시작이었다. 당시 이야기도, 촬영도 좋다고 호평받아 속편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2013년, 다른 다큐를 만드는 와중에 건기를 우연히 만났다. 집을 나와 독립해 녹록하지 않은 생활을 하는 게 보였다. 젊은 시절에 고생할 수도 있지만, 그런 어려움보다는 (건기의) 엄마를 향한 절실한 그리움과 외로움이 마음에 깊게 와닿았다. 병원에 입원했는데도 엄마가 한번 찾아오지 않았다고, 형만 쫓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렇다는 거다. 성호를 챙기는 것이 그 무엇보다 우선인 엄마는 (아마도) 건기까지 챙길 여력이 없었을 거다. ‘건기는 알아서 해야지’라는 말을 내리 듣고 자랐으니, 건기는 어쩌면 가족이라는 걸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엄마를 그리워하고 그 주변을 맴도는 건기가 안쓰러워, 그가 가족을 다시 찾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촬영을 재개했다.

보면서 건기는 소년에서 청년으로, 엄마는 머리가 희끗희끗해지는 등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데 성호만 그대로라 놀라웠다.
그 점이 바로 슬픈 지점이다. 성호는 아무것도 모르고 온전히 천진난만하다. 그래서인지 늙지도 않는 것 같더라. 혼자만 그대로라 슬프다고 생각하는 내 생각 역시 외부의 시선일 뿐이다. 그는 의식하지 않지 않고 오롯이 자기 세계 속에 있을 테니.

자폐 스펙트럼을 지닌 구성원을 둔 가족의 고단함이 여실하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성호의 (미래) 보호자이기를 강요하는 듯한 엄마의 태도에서 건기가 지닌 삶의 무게가 지나치게 무거워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 짠하지만, 건기는 그 나름대로 흔들리지 않고 괜찮을 거로 생각한다.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엄마를 너무 사랑하는 건기다. 헤아리기 힘든 어떤 애증의 감정으로 (엄마를) 평생 그리워하겠지만, 외사랑에 목매기보다 각자의 삶을 인정하고 전진할 거로 본다. 겉으로는 투덜대도, 아예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으니 어느 정도는 안고 가지 않을까 한다.
<녹턴>
<녹턴>

피아노, 클라리넷 레슨 등을 받을 때의 성호와 무대에서 연주하는 성호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성호의 연주력이 향상되는 과정을 의도적으로 생략한 건가.
성호는 30년간 피아노, 바이올린, 클라리넷 등 여러 악기를 해왔다. 자기가 마음먹은 건 끝까지 해내지만, 그 과정은 예측불허다. 마치 연습하기 싫어하는 초등학생처럼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 다른 곡을 떠올리기도 한다. 보다 보면 연주자가 맞나 싶을 때도 있다. 그런데 무대에서 성호와 협연한 이들이 존경을 표하는 것을 보면, 실력으로는 다소 부족하더라도 이를 뛰어넘는 어떤 것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다만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발휘되는 거지.

엄마는 왜, 성호가 음악가가 되기를 그토록 바라나. 결코 쉽지 않은 길인데 음악을 고집한 까닭은 뭘까.
음악은 성호의 유일한 재능이다. 성호는 혼자서 단추를 채우는 것도, 신발 끈을 묶는 것도 힘들어한다. 면도도 혼자서 못한다. 이런 성호가 그 손으로 클라리넷을 연주한다는 건 신기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엄마는 성호가 ‘아픈’ 아이가 아닌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존중받기를 바라고, 그 유일한 수단이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멸시가 아닌 인간의 존엄성을 찾을 유일한 통로가 음악인 셈이다. 엄마는 자폐 스펙트럼 자녀를 탈 가정한, 그러니까 집에 꼭꼭 숨기는 게 아니라 외부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1세대 부모라 할 수 있다. 거리에서는 손가락질 받던 성호가 무대에서는 찬사와 박수갈채를 받으니 인생을 걸 수밖에 없는 거지. 그런데 형편상 성호와 건기, 둘 다 음악을 시킬 수는 없으니 건기에겐 포기하도록 종용한 거다.

엔딩 무렵, 건기가 형과 처음으로 통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지켜보면서 어떤 찡한 감정이 올라옴과 동시에 <녹턴>은 형제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은 은성호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으로 접근했지만, 점차 가족으로 그 대상이 넓어졌다. 제작비를 펀딩하는 과정에서 장애인의 극복 서사는 너무 흔하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이런 극복 서사를 다룬 <뷰티풀 마인드>, <레인맨> 같은 영화나 최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같은 드라마 모두 좋은 작품 아닌가. (웃음) 어쨌든 장애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관계와 그리움, 그리고 사랑 영화로 접근했다. 엄마는 성호가 인간으로 대접받는 사회를 갈구하고, 건기는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그리워하고, 또 성호는… 어떤 그리움을 담는다는 생각으로 시작했고, 이를 말로 직접 드러내기보다 10여년간의 세월을 통해 느낌으로 전달할 부분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 다행히 통했는지 영화를 본 관객 중 이전보다 가족들과 대화를 보다 많이, 좀 더 마음을 담아 적극적으로 하게 됐다는 분이 여럿이라 고마운 마음이다.
<녹턴>
<녹턴>

2017년 러시아 연주회 이후 출연자의 근황을 들려준다면, 궁금한 분들에게 도움될 것 같다.
성호는 이번 일요일에 클라리넷 앙상블 정기 공연을 갖는다. 엄마는 성호를 챙기느라 여전히 바쁘다. 유럽 여행 투어 가이드로 일하던 건기는 코로나로 한동안 해외에 못 나갔다가 최근에 다시 활동하고 있다. 건기는 유럽의 성당을 다니며 형과 함께 연주하고 싶다는 꿈이 있다.

마지막 질문이다. 당신에게 다큐멘터리는.
내 모든 것을 걸고 하는 직업이다. 돈도 벌고 싶고, 공정한 환경 속에서 일하고 싶다. 방송 다큐는 불공정한 상황이 많거든. 뒤죽박죽 엉망진창에 거지 같은 현실이라도, 다큐 작업을 통해 그 속에서 아름다운 무언가를 찾고 싶다는 매우 클래식하고 희망적인 바람이 있다. 이렇게 만든 다큐멘터리를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


사진제공_시네마달

2022년 8월 29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0 )
1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