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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인 나를 믿어준 모든 분께 감동” <브로커> 이지은 배우
2022년 6월 13일 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가수와 배우로는 일 욕심이 많고, 일복도 타고난 거 같다. 그만큼 열심히 하는 사람. 개인적으로는 노력하는 사람 그리고 머쓱함이 많은 사람”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 대한 이지은의 답이다. ‘아이유’라는 예명으로 어린 나이에 가수로 데뷔하여, 어느 순간부터 연기자 ‘이지은’이 어색하지 않게 된 그. 처음 출연한 상업영화인 <브로커>로 칸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는 영광을 안은 이지은을 화상으로 만났다.

비가 주룩주룩 오는 밤, 후드 티의 모자를 덮어쓰고 교회 앞에 비를 피해 어린 아기를 놓고 가는 젊은 여성이 있다. 미혼모 ‘소영’(이지은)이다. 그 모습에서 이지은이 연기했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지안’이 떠오르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사회가 안전한 울타리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때, 설 곳을 잃은 나이 어린 엄마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브로커>는 초반부터 관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소영’은 아기를 양부모에게 보내려는 미혼모다. 어떻게 해석하고 잡아나갔나.

극 중 소영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듯이, 시나리오 역시 그에 대한 전사 등이 없었다. 다만 소영과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이 솔직하게 그간 살아온 과정과 평소의 생각을 인터뷰한 자료를 참고 자료로 받았다. 보고 나니 생각이 많아지더라. 시나리오에서는 소영이 자기 연민하는 면이 많지 않아서 크게 힘들거나 어두운 면이 부각되지 않았지만, 인터뷰에는 그들의 살아온 삶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안쓰러운 점은 그들은 스스로 연민하지 않는다는 점, 다시 말해 연민할 여유조차 없는 삶을 살았다는 거였다. 나보다 짧은 인생에서 이렇게 많은 일을 겪은 사람을 과연 내가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부담이 된 게 사실이다.

‘소영’은 <나의 아저씨>의 ‘지안’과 전혀 다른 배경을 지닌 인물이지만, 묘하게 닮았다.

처음 대본을 받고 지안과 비슷한 느낌을 받기는 했다. 차이점이라면 지안은 표현을 거의 안하고, 소영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감독님이 <나의 아저씨>를 보고 캐스팅한 부분이 어느 정도 있어서, 지안에게서 소영이와 비슷한 부분은 가져오되 그간 보이지 않은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자 했다. 소영은 깊이 생각하고 말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직설적으로 바로 드러내고 표현하는 성격이라 이런 면을 부각하고자 했다.

아픔이나 어둠(그늘)을 간직한 캐릭터를 특히 잘 표현하는데 비결은 뭘까.(웃음)

표현하고 드러내는 연기보다 절제하는 쪽이 좀 더 맞는 것 같다. 자연스러워 보였다면 내가 잘했다기보다 감독님이 캐릭터를 잘 구축하고, 잘 끌어내 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기보다 속으로 생각하는 면이 많아 이런 영향도 있다고 생각한다.

소영의 대사 ‘태어나줘서 고마워’는 가장 감정을 두드리는 대사라 하겠다. 직접적인 표현을 선호하지 않는 고레에다 감독의 스타일과 비춰봐도 특별한 지점이다.

소영이 ‘동수’(강동원)와 단둘이 케이블카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과 더불어 가장 어려운 장면이었다. 촬영할 때 현장도 굉장히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였다. 불이 꺼진 방에서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게 아닌) 목소리만으로 감정을 표현해야 해서 어떤 목소리 톤으로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걱정과는 달리 수월하게 마칠 수 있었다. 준비해 간 다른 버전이 있었지만, 감독님이 첫 테이크에 오케이하셔서 믿고 따라갔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오프닝 시퀀스다. 감독님이나 다른 선배님들은 (이 장면을) 언급하지 않는데…(웃음) 정말 기억에 남는다. 거의 처음에 찍은 장면으로 밤새도록 촬영했고, 그때 정말 비를 많이 맞았고 너무너무 추웠다. 나중에 완성된 걸 보고 진짜 멋지다고 생각했다. 나뿐만 아니라 현장의 모든 스태프가 매우 고생한 장면이라 단연 일순위 장면이다.

아이돌이 중심인 음악 시장에서 싱어송라이터이자 솔로 가수로 자기 영역에서 우뚝 선 이지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 <호텔 델루나> 등의 연이은 히트작으로 브라운관을 평정한 후 스크린으로 향했다. 신인배우인 자신을 믿어준 감독, 선배, 스태프 모두에게 감사하다지만, 그만큼 준비된 신인 아니었을까.

칸 입성 소감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칸에서의 일정이 매우 빠듯해서 주변을 돌아보지도 못했고, 다녀와서도 계속해서 바쁜 일정이라 솔직히 아직까지 잘 실감나지 않는다. (읏음) 송강호 선배의 수상 당시는 외국인의 생경한 발음으로 ‘송강호’ 이렇게 외치는데 좀 소름이 돋았다. 우리 팀 모두가 그랬을 거다. 뭔가 적응이 안 되는 가운데 너무 많은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니 한편으로는 몰래카메라 같이 신기하고, 또 무대 위에서 수상 소감을 말하는 선배님의 모습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평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을 즐겨봤는지. 감독의 작품에서 어떤 면을 좋아하나.

<원더풀 라이프>(2001)를 제일 먼저 봤던 것 같다. 좋아하는 결을 지닌 감독님이라 신작이 나오면 빨리 가서 보는 편이고, 이전 작품도 대부분 찾아봤다. 관객으로서 감독님의 작품을 통해 공통적으로 느낀 점은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고, 시간이 필요한 주제를 어렵지 않고 또 노골적이지 않게 다뤄서 편안하면서도 생각하게 만들어서 좋다’ 였다.

캐스팅 제안을 받고 순간 스친 생각은. (웃음) 바로 결정했나.

캐스팅이 이뤄진 것도 신기하지만, ‘이렇게 빨리?’라는 생각에 더 신기했다. 제안받기 1년 전쯤 어느 식당에서 뵌 적이 있는데 그때 감독님은 나에 대해 전혀 모를 때였다. 그런데 1년 동안 무슨 일이 있어서 이렇게 빨리 제안을 주셨을까 싶으면서 ‘대박이다’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나중에 배두나 선배가 참여한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를 걸어 의견을 물으니, 긍정적으로 답해줘서 더욱더 (해야겠다는) 확신이 커졌다. 이후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내가 경험해 보지 않은 설정이 그 어느 때보다 많아서 어려움이 있었지만, 사람 간에 공유하는 감정의 영역이라는 게 꼭 경험하지 않아도 비슷한 부분이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접근했다. 임신, 출산, 양육 등에 관해서는 엄마나 언니에게 조언을 구했다.

옆에서 지켜본 감독은 어떤 분이든가.

한 예술가로 또 현장을 컨트롤하는 감독으로 힘들거나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일관된 모습으로 평상심을 유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감독님만이 아니라 이렇게 여러 선배와 하는 영화 작업은 처음인데 모두 매우 차분하고 여유롭고, 아무도 조급해하지 않더라. 덕분에 개인적으로 많은 걸 배운 현장이었다. 감독님의 디폴트 표정이 있는데 그 얼굴을 보면 모든 게 안심되고 안정된다. (웃음)

송강호 배우는 남우주연상을 받은 걸 동료들 덕분이라고 했다.

선배님이 현장의 스태프들에게 버릇처럼 이런 이야기를 하셨었다. ‘뭐가 됐든 작품에 드러나는 건 우리 모두 같이 만든 것’이라고. 그간 선배가 쌓아온 이력이 있는데 이를 우리와 함께 나누려는 모습에 감동했다. 나중에 우리에게 고맙다고 하는데, 그런 말씀 자체가 감사할 따름이다.

여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웃음)

전혀 생각지도 않았다. (웃음) 칸에서 <브로커> 상영 후 관계자가 관객과 평론가의 평가나 후기에 대해 간단히 알려줬는데, 그때는 일정이 너무 촉박해서 직접 찾아볼 틈이 없었다, 내 연기에 대해 평이 괜찮다는 거다. 처음에는 관계자라 좋게 이야기해준다는 생각에 믿지 않았다. 나중에 짬이 생겨 파파고의 도움을 받아 직접 좀 찾아보니 정말 내 연기를 인상 깊게 봤다는 평이 있는 거다! 너무 신기하고 이게 감독님의 힘인가 싶고, 기분은 아주 좋았다.

<브로커>는 배우 이지은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

첫 상업영화라는 점만으로 의미가 큰데 처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큰 역할을 맡았다. 그만큼 나를 믿어줬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 이 부분에서 감동이 크다. 영화배우로서 보여준 게 거의 아무것도 없는 신인인 나를 감독님, 선배님들 그리도 스태프 모두가 믿어줘서 감사하고, 그 믿음에 보답하는 연기자가 되기 위해 오래오래 노력할 거다.


사진제공. EDAM엔터테인먼트

2022년 6월 13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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