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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두고 지켜봐 달라” 영화진흥위원회 박기용 위원장
2022년 5월 24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와 <범죄도시 2>의 쌍끌이 흥행으로 모처럼 활기를 띤 극장가다. 미뤄뒀던 국내외 대작들이 줄지어 개봉 준비 중이라, 올여름 극장가는 ‘성수기’라는 표현에 걸맞게 복작복작한 풍경 아래 문전성시를 이루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

지난 1월 초 박기용 단국대 영상콘텐츠 전문대학원 교수이자 감독이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신임 위원장으로 위촉됐다. 2024년 3월까지 약 2년간 격랑 속에 흔들리는 ‘영진위’라는 배의 키를 잡았다. 급격한 지형 변화에서 앵커로 제 역할 해주기를 바라는 기대의 마음과 어쩌면 진짜 위기는 지금, 엔데믹부터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시선이 공존한다. 코로나19라는 혼란한 상황 아래 가려져 있던 여러 이슈가 엔데믹과 더불어 수면 위로 부상할 것은 자명하다. 내외적으로 힘든 시기에 중책을 맡은 박기용 위원장을 만났다. 조금만 시간을 갖고, 믿고 기다려 달라는 그의 말을 들어본다.


영화는 K-콘텐츠의 핵심

팬데믹을 거치며 주저앉은 극장과 포화상태라 할 만큼 확장을 거듭한 OTT 플랫폼은 명암이 명확하게 갈렸다. 영화와 OTT 전용 콘텐츠와의 차이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는 이도 여럿이다. 박 위원장은 지난 인터뷰에서 ‘영화의 개념을 주변부로 확장하기보다 영화를 더 단단하게 심화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개진한 바 있다. K-콘텐츠의 코어는 영화라는 것이다.

새정부(인수위)는 ‘한국판 넷플릭스’를 구상 중이라고 밝혔듯이, OTT 시장의 집중 육성에 힘을 쏟는 분위기다. K-콘텐츠의 중심은 영화라고 애기했던 취임 초반의 견해에 변화는 없나.
새 정부의 문화 정책이 콘텐츠 중심으로 계획되는 것 같아서 신경이 많이 쓰이는 게 사실이다. 영화는 영상산업의 근간이라 할 수 있다. OTT 영화를 포함한 모든 영상 콘텐츠는 영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그렇다. 웹툰도 영화적인 스토리텔링에 의존해서 스토리텔링하고 있다. 따라서 영화가 발전해야 영상산업이 발전할 수 있고, 반대로 영상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화가 발전해야 한다. 영화 수준이 그저 그런 나라의 영상산업이 발전한 경우를 본 적 있는가? K-컬처든 K-콘텐츠든 흥미로운 작품을 만드는 것이 먼저이고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는 그 다음 문제라고 본다. 물론 영화를 극장에서만 보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 영화는 언제나 어디서나 어떻게든지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의 확장 또는 확대는 당연하다. 그리고 영화가 극장 중심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는 것도 당연하지만 여전히 극장이 영화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더 단단하게 하기 위한 영진위의 역할을 풀어 설명한다면.
현재 OTT 플랫폼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이 큰 변화를 어떻게 할 것인지, 큰 숙제다. 세상은 우리 생각이나 의지와 무관하게 급변하는데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말 고민이 많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바짝차리고 부화뇌동하지 말고 중심을 잘 잡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큰 위기에 처한 영화산업을 재건하는 데 힘을 쏟으면서 동시에 K-무비의 미래 먹거리를 모색하는 게 필요하다. 내부 구성원들의 요구와 외부 영화계 그리고 새 정부의 국정 방향 수용 등 정말 다양한 주문이 쏟아지는 이때 패스파인더 즉 콘트롤타워로 기능하고 역할하려 한다.

소통을 위해 ‘공정환경조성센터’의 역할 강화를 이야기했다. 영화인들과 온오프라인에서 상시로 만날 계획이나 방안은 없나. 혹은 이에 준하는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창구를 마련하는 건 어떤가.
그간 공정환경조성센터가 소통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었다. 이번 공모를 통해서 영화인을 센터장으로 모시고자 하는 것도 소통 강화의 일환이라 하겠다. 앞으로 나도, 직원들도 소통을 강화해 나가려 한다. 내·외부와의 소통 활성화는 당연한 일이라 중요한 사안을 정할 때는 반드시 영화계의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치려 한다. 영화계 현안과 관련해서 여러 주제로 다양한 토론회와 공청회를 계획하고 있고 다양한 방법으로 제대로 소통해 나갈 것이다.

업계의 모든 목소리는 ‘(영진위가) 변화할 시기’라는 데 수렴하고 있다. 내부 구성원보다는 외부 인사가 개혁을 주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2년 남짓한 시간에 조직 재정립과 개편, 재원 다각화, 산업과의 연계 등을 ‘다’ 한다는 건 사실상 어려운 문제다.
성격이 급하고 과격한 편이라 개혁이나 혁신 같은 말과 개념을 좋아한다. 영진위가 크게 바뀌어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개혁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개혁이란 말이 주는 부정적인 면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하지만 대전환 시대에 그리고 붕괴 일보 직전인 영화산업을 재건해야 하는 지금, 영진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깊은 고민과 이에 따른 적극적인 실행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위원장으로서 영진위의 정체성과 운영과 관련한 숱한 질문과 요구를 들었을 터다. 역으로 영화인들과 언론에 부탁하고 싶은 당부의 말씀이 있다면.
조금만 시간을 두고 지켜봐 주었으면 좋겠다. 나를 비롯한 구성원 모두가 지금이 얼마나 위급한 상황인지 잘 알고 있으며 크게 달라져야 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몸이 많이 무거워져서 바로 기민하게 움직이지는 못한다. 먼저 몸을 가볍게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 가지 더 부탁하고 싶은 것은 영진위가 한국영화 진흥을 위해서, 영화산업과 영화계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는 거다. 그동안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못 한 부분도 있지만, 영진위 구성원의 입장을 조금만 배려해줬으면 한다. 영진위는 120명이 넘는 구성원에게는 평생직장이다. 그들이 동기부여가 돼서 사명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게끔 때로는 응원이 필요하다. 무조건 폄하하거나 무시하지 않았으면 한다.

예산 다각화, 지출 다각화

영진위의 예산은 영화 티켓값에 부과된 3%의 영화발전기금(이하 영발기금)이다. 2019년 2억 2천 6백만 명에 이르렀던 총관객수가 2020년에는 5천 9백만 명, 2021년에는 6천 50만 명으로 감소했다. 2019년 대비 대략 25% 정도 수준에 불과하다. 즉 영진위 예산 재원도 이전의 25% 수준으로 대폭 줄었다는 얘기다. 반면 코로나 시기에 방역, 소규모 극장, 영화업 종사자에 대한 지출 비용은 증가했다. 적자가 누적되고 빚이 쌓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코로나를 거치며 2,000억 원 이상 누적됐던 기금도 거의 바닥났고, 정부 차입에 의존하고 있다.

인수위에 국고 지원을 요청했다. 지원 규모와 집행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영진위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했던 말이 긴축이다. 올해 사업비 예산 978억 원 중 800억 원은 공적자금을 빌려서 사용하고 있다. 이자만 연 10억 원이 넘는다. 그동안 모아 놓은 발전기금은 고갈되고 있고 올해 극장에서 받는 기금은 200억 원을 넘기 어려워 보인다. 솔직히 당장 내년 예산은 어떻게 확보할지 답답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내년 예산도 올해처럼 공적자금을 빌려야 한다면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이자는 20억이 훨씬 넘을 테고. 재정악화가 심화되면 누가 책임지겠나? 그래서 반드시 매년 500억 규모의 국가 지원이 필요하다고 요청하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우리가 먼저 뼈를 깎는 노력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저기서 욕을 많이 먹었지만, ‘긴축’을 밀고 나간 이유다. 내년도 예산은 올해보다 더 줄은 800억 원 초반 정도로 최종 정리하고 있다. 결정은 하반기에 기재부를 거쳐 국회에서 확정되는데, 실현되도록 최선을 다하려 한다.

국고 차입은 한시적인 미봉책에 불과할 수도 있다. 3%의 영발기금에만 의존한다면 영진위의 정책은 관객수에 종속적인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다. 중요한 건 또 다른 재원의 확보가 아닐까.
일시적인 국고 지원이 아니라 매년 전체 예산의 50% 이상을 정기적으로 지원받으려 한다. 그래야 재정 안정화가 가능하다. 나머지는 영발기금과 다른 기금으로 충당하는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OTT 플랫폼에서 기금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분들도 많이 있지만, 말처럼 쉽지 않고 시간도 오래 걸릴 거다. 국민체육진흥 기금도 요청하고 있고 다른 기금도 살펴보고 있다. 콘진원(한국콘텐츠진흥원)은 연간 5,000억 원이 넘는 예산 전체를 국고 지원받는데 왜 우리는 안 되나. 영진위가 K-컬처를 발전시키고 알리는 데 있어 그 역할이 콘진원보다 못하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 영발기금은 얼마 정도 남았나. 또 코로나 이전에 영진위의 한 해 예산이 대략 1000억원 내외였는데 이 중 100억 원가량이 인건비였다. 이는 업계에서 꾸준히 지적돼 온 점인데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
현재 영발기금은 350억 원 정도 남아 있는 상태다. 어느 정도 남겨 둬야 할 필요가 있어 유지하고 있다. 인건비는 여러 번 지적 받은 사안이고 재원 다각화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인건비를 포함한 운영비는 영발기금을 쓰는 게 아니라 국고지원을 받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극장에서 받는 기금을 내는 주체가 누구인지 하는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인건비는 국고로 충당하는 것이 영진위로서도 더 마음이 편하다. 재원 다각화는 수입 다각화뿐만 아니라 지출 다각화이기도 하다. 별도 재원 마련이 필요하다.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에는 영화를 전문으로 다루는 매체가 여럿이었다. 지금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영화 매체 혹은 비평에 대한 지원 역시 필요하지 않을까.
거의 죽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비평 기능을 활성화하는 건 K-무비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민간 영역에서 하기 어려운 일이니 공공 영역에서 담당해야 할 부분이다. 비평, 학술, 영화교육에 관한 연구, 신기술 개발과 연구 등도 강화해야 할 영역이다. 영진위가 발간하는 온라인 저널과 웹매거진에서 비평 영역을 강화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점진적으로 늘려가려고 한다.

적극적인 소통가, 본질은 필름메이커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진상 규명은 정권이 두 번 바뀌었지만 아직도 진행 중이고, 부산 기장군에 설립하는 ‘부산촬영소’는 10년 넘게 준비했지만 착공이 지연되고 있다. 영진위가 해결할 여러 문제가 산재한 가운데 박 위원장에게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그간 사이가 좋지 않았던 부산시와 영진위가 대화의 물꼬를 트고, ‘부산촬영소’ 설립의 필요와 의의에 동의하여 신속하게 착공하는 데 뜻을 모았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언론중재위원회에 중재를 요청할 정도로 악화 관계였던 지역 언론과도 대화를 통해 화해를 이루었다. 박 위원장의 ‘필요하다면 어디든 언제든지 찾아가서 만난다’는 적극적인 소통 방식 덕분이다.

박 위원장은 2년이라는 기간 동안 쇄신과 변화의 초석을 다진 후 강단으로 다시 돌아갈 계획이다. 영화 <모텔 선인장>(1997)으로 주목받은 후, 2001년부터 한국영화아카데미와 강단에서 한국영화의 반석이 될 인재를 키우는 데 매진해 왔던 박 위원장, 지금도 여전히 영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영원한 필름 메이커다.

<남매의 여름밤> 윤단비 감독을 필두로 단국대 영상콘텐츠 전문대학원 출신의 약진을 현장에서 체감하고 있다. 강단과 현장이 그립지는 않나. (웃음)
학교를 휴직하면서 학생들과 약속한 대로 매달 한 번 주말에 특강을 하고 있다. 더불어 영화 만들 준비도 하고 있다. 원래는 직원들과 같이 만들려고 참여자 모집도 했는데 지원자가 한 명도 없어서 다른 방법을 찾고 있다. (웃음)

지난해 직접 연출한 <강원도>를 강릉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다. 작품 활동은 꾸준히 하고 있나.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일한 2001년부터 2009년까지는 영화를 전혀 못 만들었다. 당시는 젊기도 했고, 미친놈처럼 일했던 것 같다. 이후 한국영화아카데미를 그만둔 후 뉴질랜드 방문교수로 나갔는데 그때 촬영부터 편집까지 배워가며 혼자, 에세이 같은 논픽션 영화를 만들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2013년부터 매년 장편 영화를 만들어 부산국제영화제나 DMZ다큐멘터리영화제 등에서 상영했다. 개인적인 영화라 상업성이 떨어져서 상영은 차치하고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내 정체성은 필름메이커라 생각한다. 부산에서도 일하는 틈틈이 새 영화를 만들려 한다.

마지막으로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거나 OTT 작품을 종종 접하는지.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추천해달라.
서울아트시네마 재개관식에서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희망의 건너편>(2017)을 봤는데 이미 봤던 영화지만, 큰 스크린으로 다시 보니 좋더라. 시청역에서부터 덕수궁 돌담길을 끼고 극장에 갔다가 다시 전철역으로 걸어가면서 영화를 찬찬히 음미하는 그 시간이 정말 즐거웠다. OTT 플랫폼에서 본 작품으로는 카트린 프로와 까뜨린드 드뇌브가 모녀 관계로 나온 마르탱 프로보스트 감독의 <더 미드와이프>(2018)가 좋았다. 감독의 <롱폴링>(2011)을 좋아하는데 이 영화도 섬세한 연출과 연기가 훌륭하더라. 또 이번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인 <애프터 양>을 연출한 코고나다 감독의 영화 <콜럼버스>(2017)도 인상적이었다. 그가 요즘 화제인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의 공동연출자인 건 나중에 알았다.


사진제공. 영화진흥위원회

2022년 5월 24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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