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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키워드는 ‘냉기 열기 광기’ <앵커> 천우희
2022년 4월 22일 금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꼿꼿한 자세와 브라운관을 뚫고 나올 듯한 강한 눈빛, 똑 부러지는 말투와 정확한 발성으로 뉴스를 보도하는 간판 앵커 ‘정세라’. 천우희가 <앵커>에서 베테랑 아나운서로 분했다. 방송국의 간판으로 수년째 메인 뉴스를 진행해 온 화려한 커리어를 지녔으나 그럼에도 ‘성공’을 향한 강박과 집착에 스트레스 받는 인물이다.

“세라는 당당하고 이지적이고 성공한 여성이에요. 철갑을 두른 듯한 겉모습 이면에는 여린 감정이 넘실거리죠. 이런 이중적인 모습이 흥미로웠죠. 그리고 ‘앵커’ 일은 제가 연기 아니고는 경험해 볼 수 없는 직업군이잖아요.”

자로 잰 듯하고 냉철하고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아나운서처럼 보이기 위해, 어설프게 보여 몰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정말 정말 연습을 많이 했다는 그는 “그렇다고 아나운서의 직업적인 겉모습에만 초점을 맞춘 건 아니에요. 세라의 심리 표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둘 사이에서 적절하게 균형을 맞추려 했죠.”

세라의 성공을 바라는 건 어쩌면 자신 보다 엄마 ‘소정’(이혜영)일지도 모른다. 딸의 방송을 토씨 하나까지 체크하고, 의심쩍은 제보전화에 앵커로서 자리를 공고히 할 ‘기회’일지도 모른다며 딸이 한밤중에 제보자를 찾아가게끔 독려한다. 또한 별거 중인 딸이 사위와 화해하는 걸 직·간접적으로 방해하는 등 딸의 성공에 온 신경을 기울인다. 모녀의 집착에 가까운 건강하지 못한 관계는 심리 스릴러 <앵커>의 주요 추동력 중 하나다.

“부모님이 굉장히 애정과 사랑이 넘치는 분이에요. 절 온실 속의 화초처럼 키우셨죠.” 그간 굴곡이 많은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서 그런지 어딘가 평범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란 것 아니냐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고 말하는 천우희, “부모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평소에는 착한 딸로 살지만, (웃음) 기본적으로 반항 기질이 있고 이게 연기에서 표출되는 것 같아요.”라고 한다.

세라-소정의 관계가 극단적이지만, 그 기저에 깔린 애정에는 대부분 공감할 거라는 그는 “개인적인 경험을 떠올리기보다 본질적인 감정을 생각해 봤어요. 세라는 엄마의 꼭두각시 혹은 아바타처럼 컸지만, 이를 다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 욕망이자 엄마를 향한 사랑으로 움직이는 거죠.”라고 왜곡된 모녀 관계를 정의한다

<앵커>는 단편 <소년병>(2013), <감기>(2014) 등을 선보인 정지연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장편 데뷔작이다. 코로나로 인해 개봉이 늦어졌지만, 그만큼 편집에 공을 들여 정교하게 다듬었다. 여성을 중심축에 놓고 주인공이 겪는 혼돈과 착란을 동력 삼아 진척하는 데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레베카>(1954)나 <사이코>(1960)같은 고전 스릴러가 연상된다는 시각도 있다.

“감독님이 시안을 주실 때 위의 영화들을 참고해 보라고 하셨어요. 근데 아쉽게도 평소 다른 영화를 참고하지 않는 편인 데다 공포 영화는 더욱더 못 보는 편이거든요.” 레퍼런스를 따라가기보다 천우희 나름의 ‘세라’를 구축했다는 거다.

천우희가 생각하는 <앵커>의 차별적인 매력은 뭘까.

“장르적 긴장감과 이를 모녀 관계와 얽힌 서사로 풀어낸 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성공한 여성(사람)의 내적인 트라우마인데 이는 관점에 따라 달리 받아들일 수 있어 더욱 흥미롭지 않을까 합니다.”라고 관람 포인트를 짚는다. 무엇보다 이런 포인트를 살린 이혜영-천우희-신하균, 세 인물 간의 연기 앙상블 역시 빼놓을 수 없다고.

성공한 인물의 이면에 소용돌이치는 연약함과 유약함, 이런 불안한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 그는 세 가지 키워드로 접근했다.

“불안 심리를 가진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냉기, 열기, 광기가 딱 보였으면 좋겠다 싶었죠.”

“사건(이야기)의 진척과 ‘세라’의 내면적인 심리 표현이 명확하게 딱딱 들어맞았으면 했어요. 마지막 정점, 그러니까 기승전을 거치며 거의 모든 게 파멸된 세라가 ‘결’에 이르러서는 새롭게 탄생한다고 할까요. 이때 드러나는 광기의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감정의 그래프가 명확하게 잘 보이길 바랐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서사를 끌고 가면서 내면적인 감정과 심리의 분출을 표현할 수 있는 것. 천우희가 꼽은 배우로서 <앵커>의 흥미로운 지점이다. 특히 오랜만에 이런 작품을 만나서 더욱 흥미롭게 임했다고 한다.

세라는 압박과 강박의 감정으로 스스로를 옥죄는 인물이다. 게다가 감정의 낙폭이 커서 촬영하면서 감정의 후유증으로 힘들었을 수도 있는데, 과연 어땠을까.

“음.. 개인적으로 온·오프가 잘 된다고 할까요. 일과 일상의 분리가 잘되는 편이라 그 감정을 생활로 끌고 가지 않는 편이에요.”

인물을 이해하고 체화하는 과정에서 너무 감정적으로 빠지지 않으려고 한다는 천우희, ‘컷’ 하는 순간 작품에서 빠져나와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작품 전체의 완성도를 위해서도 너무 감정에 취해서 하는 연기는 오히려 좋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는 <앵커>의 언론시사회에서 ‘자기 기준’이 높은 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자기 기준이 높다기보다는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 용납이 안 돼요.(웃음) 내 기준에 맞춘다는 건 책임과 권리가 함께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하려고 해요.”

“사실 연기하면서 스스로 좀 다그치는 편인데요, 이런 다그침이 <앵커>가 지닌 결하고 맞았던 것 같아요. 감정과 심리 표현, 전문직 연기 등에 대한 부담감을 동력으로 이용한 면이 없지 않아 있어요.”

천우희는 신인 때부터 여러 선배들과 작품을 해왔다. 평소 팬으로서 후배로서 선배를 선망하지만, 연기하는 순간은 동료로서 다가가려 한다.

“신하균, 이혜영 두 선배님 모두 좋으셨고, 다른 결의 의외성을 발견했죠. 이혜영 선배는 강렬하고 카리스마의 대명사 같은 분인데 굉장히 마음이 여리고 섬세하세요. 오랜만의 영화작업이라고 매우 설레어 하셨고요. 신하균 선배는 현장에서 매사 선하고 너그럽게 임해주셨죠.” 선배와 함께하는 현장은 일을 떠나서 늘 즐겁단다.

<한공주>(2013), <곡성>(2016), <해어화>(2016), <우상>(2019), <버티고>(2019) 등 조·주연으로 25편이 훌쩍 넘는 영화에 출연, 30대를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인 천우희. 그간 필모를 보면 딱히 겹치는 캐릭터가 없을 정도로 다채로운 얼굴을 보여 왔다.

그만큼 배우로 일찍이 성공했고 여러 상을 받았다. 당연히 압박감도 있었을 터. “생각보다 너무 빨리 인정받았죠. 상을 받으면 기쁘고 기대에 부응하고 사랑에 보답하고 싶지만, 어느 순간 외부 자극과 평가보다 내 스스로가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하단 걸 알게 됐어요. 나와의 싸움인 거죠.”라고 한다.

“신기한 게 이번에 이만큼 힘들었으니 다음엔 좀 수월할 거로 생각하는데, 그건 또 아니더라고요.” 결국 어려움은 매번 있지만, 그건 ‘그만두고 싶은’ 게 아니라 기꺼이 ‘부딪치고’ 싶은 힘듦이라는 천우희다.

“어려운 역할에 끌린다기보다 경험하지 못한 인물과 삶에 대해 연기적으로 탐구해보고 싶은 욕구가 컸죠. 나이를 먹다 보니 기준점이 좀 변했어요. 미지의 것을 탐구하는 것도 좋지만, 내가 잘 아는 세계도 표현해 보고 싶어요. 관객에게 즐거움과 행복감을 선사하는 것 등 기준이 많이 열렸죠.”

20일 개봉한 <앵커>와 더불어 천우희는 27일 개봉을 앞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로 일주일을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장르와 캐릭터로 관객을 찾는다.

“애착이라는 건 작품과 역할에 대한 애정도 있지만, 결국 같이한 사람과의 관계에 달려 있는 것 같아요. 두 영화는 함께한 분들이 너무 좋아서 행복하게 촬영한 작품이었어요. 특히 감독님들이 고생을 많이 하셨죠.”라면서 두 작품의 사이좋은 선전을 기원한다.


사진제공.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2022년 4월 22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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