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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고의 세월 끝에 데뷔, <뜨거운 피> 천명관 감독
2022년 3월 28일 월요일 | 이금용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이금용 기자]
‘고래’, ‘나의 삼촌 브루스리’, ’고령화 과족’ 등을 통해 문단을 휩쓸며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매김한 천명관 작가가 감독이 되어 관객을 찾았다. 1990년대 부산의 가상 항구 도시 ‘구암’을 배경으로 한 조폭 누아르 영화 <뜨거운 피>를 통해서다. “처음 충무로에 입성해 메가폰을 잡기까지 장장 30년이 걸렸다”는 천명관 감독과 나눈 다양한 이야기를 공유한다.

다른 사람의 소설로 연출 데뷔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나부터가 김언수 작가로부터 연출 제안을 받았을 때 놀랐다. 그 전에 영화를 만든 적이 없으니까 너무 뜻밖이었다. 김언수 작가가 부산의 낙후된 지역 출신인데, 고향 이야기를 들려줄 때마다 소설로 써보라고 권했다.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틈틈이 원고를 봤고 이야기도 나눴다. 김 작가가 소설이 출간되기 전 완성된 원고를 보여주면서 “이 이야기를 가장 잘 이해하고 구현할 수 있는 형이 적임자가 아니겠냐”면서 연출을 맡아달라 하더라.

원작의 어떤 점이 연출을 결정하게 만들었나.
<뜨거운 피>는 날 것의 생선처럼 펄떡이는 남자들의 이야기다. 공허한 칼부림이 아니라 그 안에는 이야기의 원형 같은 것들, 인간의 실존이나 어떤 비극성과 허무함을 다 함께 느낄 수 있는 문학성이 있다.

한국 조폭영화를 보면 검은 양복을 입은 덩치 큰 남자 수십 명이 도열해서 90도로 칼같이 인사한다. 또 검은 승용차들이 줄지어 의전한다. 그런 것에는 끌리지 않았다. 우리 영화는 현실적이다. 거대한 조직의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누추한 인물들이 밑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걸 보여준다. 아벨 페라라와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을 사랑하고 마틴 스콜세지와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영화를 보며 살아온 내 정서에 딱 맞는다. (웃음) 거창한 조직보다는 언저리에서 떠도는, 실제로 있을 법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원작이 품고 있는 캐릭터의 실존성, 현실성과 그들의 복잡한 내면이 내 영화적 상상력을 자극했다.

1990년대 부산이 배경인데, 배우들의 사투리가 기대 이상으로 제대로라 깜짝 놀랐다. (웃음)
‘손영감’ 역의 김갑수 배우를 제외하고는 주요 출연진 전부 경상도 출신이다. 대부분 부산, 양산, 안동 출신이고 네이티브 스피커라 자연스러운 사투리 연기가 나온 것 같다. 연출자로서 내가 부산 사람이 아니라 가장 힘들었던 부분 중 하나가 사투리였다. 연기는 대사를 통해서도 드러나는데, 사투리 뉘앙스를 모르니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확신이 안 서더라. 그래서 배우들 도움을 많이 받았다. 배우들이 알아서 캐릭터를 쌓아나가면 나는 그걸 지켜보면서 배우들과 의논하고 연기가 영화의 범위나 톤을 벗어나는 경우에만 관여했다. 다만 아무리 연기가 좋아도 대사가 전달되지 않으면 안되니까 자막을 넣을까 고려도 했다. 고민 끝에 관객이 전부 알아듣지는 못해도 뉘앙스 정도만 전달할 수 있으면 괜찮을 것 같았다. 자막을 넣는 것은 형식을 깨는 것이라 내키지 않았다. 잘못 알아듣겠다 싶은 대사는 다시 후시 녹음했다.

로케이션에도 공을 많이 들인 거 같더라.
1990년대는 먼 과거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도로 표지판, 거리 등 로케이션 장소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이 바뀌었다. 왜 다들 시대극 찍는 게 어렵다고 하는지 알겠더라. (웃음) 아예 사극이면 세트장에서 촬영할 텐데 애매한 시대다 보니 그러기 쉽지 않았다. 촬영 장소를 물색하려고 부산 근처를 정말 샅샅이 뒤졌던 거 같다. 김해, 진해, 기장, 포항, 울산, 창원 마산, 전라도 목포까지 뒤지고 다녔다.

주연배우 정우와의 호흡은 어땠나.
사실 내가 처음 상상했던 ‘희수’와 배우 정우는 차이가 좀 있다. 정우가 눈망울도 크고 쌍커풀이 져서 사람이 좀 순해 보이지 않나. (웃음) 그런데 촬영하면서 보다 보니, 내가 생각한 ‘희수’보다 정우가 표현해낸 ‘희수’가 조금 더 현실적이고 매력적이고 또 나름의 에너지가 있다고 느껴졌다.

정우는 정말 잘하고 싶어 했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치열하게 연습하고 고민했다. 심지어 내가 먼저 너무 무리하지 말고 바람도 쐬고 여유 있게 하자고 할 정도로 스스로 다그치더라. 시나리오를 쓰고 캐릭터를 만든 건 나지만 그걸 구현하고 잡아나간 건 정우를 비롯한 배우들이다.

‘희수’를 포함해서 모든 등장인물들의 행동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래서 누구 하나 편을 들기가 쉽지 않더라.
늘 주인공보다는 빌런, 안타고니스트에 더 끌렸다. 빌런들은 대체로 불안한 자아를 갖고 있다. 어릴 때부터 위협받으며 자랐을 수도 있고, 그 밖의 무언가가 결핍된 걸 수도 있다. 어쨌든 빌런은 여러 사연을 거쳐 복잡한 자아를 갖게 된다.

원작에선 구암이 ‘남자들은 자라서 건달이 되고 여자는 술집으로 가는 그런 동네’라고 묘사된다. 선택이 아니라 정해진 삶인 거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희수’와 ‘철진’(지승현), ‘손영감’ 모두 처절해질 수밖에 없고,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 애정이 갔고, 더 공을 들여 찍었다. 불법과 합법을 넘나들 수밖에 없는 그들의 상황에 연민을 느꼈고 관객도 그렇게 느끼길 바랐다.

아무래도 소재와 장르적 특성 때문인지 남성 캐릭터 위주로 진행되고 잔인한 장면이 많다. 시사회 후 여성 캐릭터에 대한 비판을 듣기도 했다.
잔인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잔인하지 않은 방식으로도 원하는 바를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고 그렇게 하는 영화도 많다. 나 역시 완곡하게 표현하려고 했지만 보는 분마다 받아들이는 게 다른 것 같다. 너무 잔인해서 눈을 감았다는 분도 더러 있었다.

여성 캐릭터에 대해선 변명하지 않겠다. 원작에 기대다보니 여성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소위 ‘알탕 영화’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 영화도 그 범주에 속해있다. 여성 캐릭터들이 희생자거나 각성의 도구로 쓰였다는 점에서 한계를 인정한다. 영화 안에서 여성의 역할을 조금 더 주체적으로 바꾸면 어떨까 고민했는데, 1990년대 부산 건달의 삶이 어땠을까 생각해볼 때 개연성이나 시대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이 관객 입장에서 불편할 수는 있지만 개인적인 여성관은 아니다. 그야말로 건달들의 여성관이다. 부족한 부분은 다른 영화에서 조금씩 채워나가겠다.

감독 입봉 과정이 남다르다. 30년 전 처음 충무로에 입성했고 소설가로 활동하다 연출자가 되어 다시 영화계로 돌아왔는데.
감독이 되기까지 오래도 걸렸다. (웃음) 문학 수업을 거치지 않고 소설가가 된 이후 문단에서도 남다르다는 소리를 들었다. 정상적인 코스라 하면 대학 국문과나 문창과를 나와 등단하는 건데, 나는 대학조차 나오지 않았으니까. (웃음) 충무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게는 연출부에서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아가는데 나는 영화과를 나온 것도 아니고 연출부 경력도 없었다. 보험사 외판원이 느닷없이 충무로에 발을 들인 것부터 평범과 거리가 멀었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연출부에 들어가려고 하니 조감독들이 나보다 어리더라. 그러니 누가 써주겠나. (웃음) 영화사 몇 군데의 문을 두드리다가 영화사 총무 일을 하게 되었다. 집기, 비품 관리나 주차 관리 일을 하면서 차츰 영화의 꿈을 키웠다. 연출부는 안 해봤지만 궂은 일을 많이 해서 영화 쪽 일이 돌아가는 전반적인 과정은 배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영화 감독이 목표였나.
일을 시작할 당시엔 감독이 되려는 생각은 없었다. 시나리오 작가로 픽업되면서부터 감독의 꿈을 가졌다. 당시 시나리오를 열 편씩 들고 다녔는데 단 한 편도 메이드되지 못했다. (웃음) 지금 생각해도 그 시나리오가 상업적으로는 부족할지 몰라도 못 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감독의 꿈을 포기하고 소설가로 등단했다. 15년간 소설가로 살아보니 그것도 참 의외이고 재밌는 인생이더라. 물론 내가 조금이라도 더 젊었을 때 감독에 대한 꿈이 간절했더라면 내 인생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은 종종 한다. (웃음)

돌이켜보면 30대 때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무작정 충무로에 뛰어들 만큼 영화에 대한 뜨거운 열망이 있었던 모양이지만, 꿈은 젊은 사람이 갖는 것이고 나는 이제 나이를 먹어 뜨거운 것은 모두 지나가버렸다. (웃음) 이제 와 감독이 된 것도 거창한 꿈이 있어서가 아니다. 꿈을 좇아 열심히 한 것보다는 하다보니 우연히 된 것이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 거 잘하고 싶다. 한 번 해보니 더 욕심이 생긴다.

소설을 쓰는 것과 영화를 연출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소설은 얼마든지 길게 쓸 수 있다. 하고 싶은 이야기 다 하고, 주인공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과거나 배경을 친절하게 설명하기도 한다. 그런데 영화를 그런 식으로 만들면 아마 4시간짜리 영화가 나올 거다. (웃음) 시나리오 쓸 때는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최종 편집본이 3시간 반이 나오더라. 그걸 2시간으로 줄이는 지난한 작업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영화는 2시간 남짓의 러닝타임 제약이 있다는 점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웃음)

감독으로서 갖춰야할 덕목이 있다면.
일단 감독처럼 생겨야한다. (웃음) 농담이 아니라 그게 정말 중요하다. 처음 충무로에 발을 담근 1990년대를 돌아보면, 그때는 그때의 감독 상이 있었다. 내가 말한 감독의 상, 얼굴이란 복합적인 자기확신, 정치적인 능력 등을 뜻한다. 그 상에 가깝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 감독을 믿지 않았다. 나도 아마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얼굴 탓에 확신을 주지 못한 것 같다. 게다가 보험 외판원 일을 하다 왔으니 누가 나를 믿겠나. (웃음) 이번 영화 홍보용 사진을 찍을 때 촬영팀에서 나보고 ‘어느모로 보나 감독님처럼 생겼다’고 하더라. 이제야 내가 감독의 얼굴을 가졌구나 싶더라. (웃음)

당초 연출 데뷔작으로 생각했던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를 차기작으로 준비 중이라고.
한창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내가 쓴 다른 소설 ‘고래’나 ‘나의 삼촌 브루스리’는 이미 드라마화를 준비 중이다. 직접 연출해보라는 제안도 받았지만 내가 할 생각은 없다. 두 작품을 쓰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이걸 영화화하겠다고 2~3년의 시간을 더 보내는 게 아깝다. (웃음) 오히려 다른 작가나 감독이 재창조한 걸 보고 싶다.

사진제공_키다리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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