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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뛰는 도전이자 한계의 실험대’ 오디오무비 <층> 임지환 감독
2022년 1월 17일 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이제훈과 문채원이 각각 프로파일러와 경찰로 분해, 무광빌라에서 발생한 추락사의 진실을 파헤친다. 그런데… 오로지 목소리로만 만날 수 있다! 오디오 무비 <층>은 네이버 바이브가 야심차게 선보이는 오디오 콘텐츠다. 120여 분의 시간 동안 오직 ‘소리’를 단서 삼아 추락사한 남자와 그 이웃들이 숨기고 있는 비밀을 파헤쳐야 한다. 유례없는 새로운 시도이자 도전으로 오디오 콘텐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할 만하다. 네이버 바이브와 공동 기획부터 각본, 연출, 제작을 도맡은 임지환 감독을 만났다. 가슴 뛰는 도전이자 한계의 실험대였다는 <층>이 탄생하기까지 상세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층>을 기획하고 제작한 ㈜스토리웨이브픽쳐스 대표이자 각본과 연출을 겸했다. 간단하게 소개를 부탁한다.
2014년까지 배우로 활동했었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정도? (웃음) 그러다가 각본과 연출 작업을 하면서 하나라도 확실히 하자라는 생각에 이젠 이쪽에 집중하고 있다. 2018년에 스토리웨이브픽쳐스를 차려서 독립영화를 만들어 왔고, 이번 네이버 바이브와 협업하는 과정에서 법인화했다.

배우로 활동하다가 집필과 연출로 영역을 확장했나 보다.
평소 글 쓰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단편작업을 하려 하니 주변에서 독립영화라고 해도 영화계에서 명망 있는 제작사라고 할지, 계보를 이어온 곳과 작업하는 게 나중에 상업영화를 시도할 때도 유리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근데, 학교나 사회생활, 또 선후배 관계에서 완전한 인사이드 포지션을 취하지 못한지라… (웃음) 그래서 인맥 사회에 뭔가 살짝 반감이 들기도 해서 혼자 회사를 차려서 가능성을 가늠해 보고자 했다.

네이버 바이브와 어떻게 연결되어 오디오무비를 기획하게 됐나.
음, 간단하게 말하면 지난해 초에 넷플릭스의 독립영화로 가려고 했던 작은 영화가 있었다. 예산이 1억 원에 한참 못 미치지만, 운이 좋게도 연예인들이 출연해 준 <당신은 이 글 속에 살아있다>를 촬영 중이던 차에 지인으로부터 네이버에서 감독을 찾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또 당시 <파도를 넘어설 수 있을까>라는 크리처물을 상업영화로 제작을 위한 피칭이 4차까지 간 상태이기도 했다.

크리처물이라니! <파도를 넘어설 수 있을까>는 어떤 얘기인가.
상황적으로 영화 <부산행>의 연장선이랄까. 한국 최남단의 섬에 혼자 휩쓸려 내려간 해녀의 생존기를 다룬다. 해녀가 완전히 장악한 섬에 거대한 남성의 변모된 시체가 떠밀려오고, 그 후 섬을 지켜온 이들의 지성(지력)과 섬에 침투한 걷잡을 수 없는 불사의 폭력이 맞붙는 이야기다. ‘파도를 넘어설 수 있을까’라는 제목 그대로 파도를 넘어 섬을 탈출할 수 있을지를 그린, 무인도에서 일어난 서스펜스라 하겠다. 가능성 5대 5인 라스트 피칭까지 마친 상황에서 네이버와 연결이 됐다. 들어가 보니 ‘사운드 이펙트’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고 말씀하는 거다.

사운드 이펙트 드라마가 뭘까.
처음엔 도무지 감을 잡기 힘들더라. 몰아치는 효과음? 아니면 몰아치는 이야기? 뭘까 하며 고민했다. 사실 오디오 드라마라는 걸 아주 어렸을 때 접한 적이 있을 뿐, 임팩트가 어떤 걸 의미하는지 잘 모른 채 미팅을 마무리하고 나왔던 것 같다. 그러면서 오디오 이펙트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우리가 독립영화를 보통 5천만 원도 안 되는 예산으로 찍다 보면, 사실 매우 중요한 영역임에도 제일 놓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음향이다.

크게 관심이 있던 것도, 또 경험도 없이 오디오무비를 만들다니, 놀랍다!
좋게 평가해줘서 감사하다. 한편으로는 나 같은 언더그라운드에 있는 감독한테 기회를 준 네이버 바이브 측이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처음에 브리핑을 했을 때, 코로나 시국이라서 줌으로 진행했는데, 그때 해외의 유명 작품 몇 편을 모니터링하여 소개했는데 이미 다 아는 얘기라서 그런지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스토리텔링으로 접근해보자 싶어서 스토리보드를 쫙 정리하여 시나리오를 브리핑하니 그제야 듣고만 있던 분들이 반응을 보이더라.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예전부터 재능이 있다는 소릴 종종 듣곤 했었다. 피칭을 많이 하다 보니 ‘이제 왔다’는 감이 오는 순간이 있어서, 그 순간 ‘설명해 볼까요?’ 하고 굳이 (웃음) 한번 되물으니 해보라고, 그렇게 한 50여 분을 진행했다. 다 듣고 나서 박수만 대표님이 한 3초 정도 후에 그 자리에서 ‘합시다’라고 말씀 주셨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고민의 시작이었다. 오디오 이펙트 드라마가 무언인지, 공부를 정말 많이 했다. 음악과 음향, 또 음향으로서와 음악으로서의 BGM, 앰비언트 등 여덟에서 열 가지가 넘는 음향적 소스가 있더라. 이 소리를 활용해 어떤 사운드 서스펜스를 가져갈지 생각하다가 층간소음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네이버는 지난해 12월 앱내 오디오 탭을 신설하여 다양한 오디오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한다. 회원가입도 없이! <층>도 그 일환인데, 기획 배경은 뭐라고 짐작하는지.
음, 음악적인 부분 외에도 오디오라는 키워드 안에서 굉장히 폭넓은 콘텐츠를 가져가려는 것 같다. 비유하자면, 오디오 콘텐츠계의 넷플릭스라고 할지, 극장계의 CGV? 뭐 개인적인 생각이다. 네이버 바이브에 우리 같은 크리에이티브에게 창작의 불을 지피시는 한 분이 계시다.

어떤 분인가.
앞에서도 말씀드린 박수만 대표님이다. 네이버 바이브 직원도 그렇겠지만, 이런 새로운 시도는 도전 욕구가 있는 우리 같은 크리에이터의 가슴에 불을 지피는 행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이번 작업은 정말 스스로의 가능성을 한 번 살펴볼 수 있는 작업이었다.

제작 타임라인은 어떻게 되나.
7월 초에 피칭해서 8월 말경에 시나리오 작업을 끝냈다. 8월 초에 3회 시나리오가 완성된 상태에서 가이드 녹음, 타이포그래피, CG 등 포스트(후반) 작업을 미리 들어갔다. 프리와 포스트를 병행했다고 할 수 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신경 쓴 부분은. 시각적인 요소가 부재한 만큼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다.
영상없이 소리로만 가야 해서 처음에는 설명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 네이버 바이브 측이 딱 하나 요구했던 지점이기도 하다. 흔히 ‘한 달 뒤’ 뭐 이런 식의 해설이 없으면 좋겠다고 했거든. 그래서 설명적인 대사보다는 음향의 오디오 이펙트로 분위기를 형성하는 방향으로 갔다. 인물과 인물의 대화, 공간에 긴장감과 스릴감이 느껴지도록 디자인을 했다. 예를 들면, 어떤 공간에 가면 특정 소리가 울린다든지 하는 식으로 디자인을 잡아 놓고 가니 분위기로 잔상이 남게 되더라. 비유하자면, ‘누가 키가 몇이었는데, 어떻게 죽었어’라는 (정보는) 사람들한테 금방 잊히지만, 반대로 ‘자살은 아니었대’처럼 핵심 단어를 사용하여 뉘앙스로 여운을 남기는 식이다.

사운드를 디자인하여 잔상을 이어간다는 게 말로 하면 쉽지만, 결코 간단한 과정이 아니었을 거다. 더구나 레퍼런스도 없는 상황이니 말이지.
그렇지. 리딩부터 녹음 후까지도 잔뼈 굵으신 완벽한 강신일 선배님조차 어떻게 나올지 예상하지 못하셨다. 정준하 선배는 ‘아니, 걸쇠를 푸는 소리 같은 걸 어떻게 표현할 거냐’고 묻기도 하고, 이제훈 배우님도 굉장히 노련하게 작업하면서도 ‘걱정된다’는 우려를 살짝 표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결과물을 접하지 못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데모 버전이라도 보여드릴까 하다가 낮은 퀄리티로는 보여드리고 싶지 않아 나중에 디자인된 걸 보여드리니 그제서야 안심하시더라. 사실 참여한 배우분만이 아니라 음향, 음악, 사운드믹싱, CG, 트랜지션 등 모든 팀이 그 결과물에 궁금해했다. 첫 1회 작업에만 한 20일 정도 걸렸는데, 그 1회가 나온 순간 제작진 모두 감을 잡고 느낌을 공유할 수 있었다. 당시의 행복감이란! 그런데 행복감과 동시에 이런 걸 5개나 더 만들어야 한다는 절망감도 느낀 순간이었다. (웃음)

예상보다 분량이 길어서 놀랐다. 사실 길어야 한 시간 내외가 아닐까 생각했거든. 1회당 20분 내외로 총 120여 분, 보통 영화 한 편의 러닝타임이다.
원래는 회당 10분에서 15분 정도, 그러니까 러닝타임 60분~90분 정도를 원했지만, 이게 회마다 인트로와 엔딩에 하이라이트가 들어가다 보니…또 중요한 게 서스펜스가 이어져야만 긴장감이 유지되니 한 회 분량이 영화로 치면 한 30여 분 정도 되더라. 오디오 영역은 시각적인 잔상이 없기 때문에 한 번 분위기를 놓치면 흐름을 이어 가기 어렵기 때문에 타이트하면서도 가장 적합한 분량으로 가져간 게 20분 정도였다.

프로파일러 이제훈, 경찰 문채원, 의심쩍은 503호 남자 양동근, 뚜렛증후군 백성현, 경비 강신일 그리고 의뭉스런 옆집 남자 정준하까지 목소리 연기한 배우들의 라인업이 화려하다. 들으면서 한편으론 참여하는 배우 입장에서 좀 두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딕션과 발성이 그대로 드러나니 말이다. 어떻게 캐스팅은 순조로웠는지?
캐스팅하면서 참 행복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우선 이제훈 배우가 시나리오를 전달한 바로 다음 날 OK 하면서 기적 같은 일이 시작되어 우리가 원픽으로 꼽은 분들이 차례로 섭외됐다. 프로파일러와 경찰, 남녀의 케미가 중요했기 때문에 문채원 배우가 딱 어울릴 거로 생각했다. 지인이 말하길 문채원 톤이라는 게 있다는 거다. 원래 내가 디자인했던 건 열정 형사였는데, 문채원 배우가 맡으면서 열정보다는 뭔가 조금 지친 듯한 캐릭터가 완성됐다. 바로 이 점이 신의 한수가 됐다고 생각한다. (웃음) 시네마에 다큐 같은 리얼리티를 부여했다고 할지, 굉장히 현실감 있는 드라마로 완성됐다.

극을 환기하고 전환하는 데 있어 정확하게 해 줄 분으로는 정준하 선배를,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써서 극 중 이름도 ‘정준하’ 다. 경비역은 꼭 강신일 선배님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흔쾌히 합류해 주셨다. 제일 생각이 많았던 캐스팅은 백성현 배우를 어느 포지션에 놓을까였다. 고민하던 끝에 뚜렛증후군 청년으로, 또 양동근 선배는 다들 목소리가 굵고 낮은 가운데 얇지만 소름 끼치는 보이스가 필요해서 부탁드렸는데 정말 너무 잘 해주셨다.

녹음 시간과 제작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녹음은 총 3일에 걸쳐 진행했다. 예산은 음… 블록버스터 영화의 1~2회차 정도?

블록버스터 영화라 해도 규모와 촬영 회차가 각각이라… 어쨌든 예산이 크진 않았던 거 같다. 갤럭시와 아이패드, 두 기기로 들었는데 모두 소리가 죽는다고 할지, 굉장히 작아지는 지점이 공통으로 있더라. 이유는.
간단히 말하면 작업은 5.1 사운드로 했는데 네이버 바이브 애플리케이션은 아직 스테레오라 4개 채널의 음향이 적당히 들어갈 부분에서 반영이 되지 못한 부분이 상당해서 그렇다. 덕분에 5.1 사운드 감독님의 실망이 크시다. (웃음)

엔딩크레딧을 보니 참여한 스텝이 예상외로 많더라.
영화도 당연히 그렇지만, 오디오무비는 혼자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서 처음 팀을 꾸리는 게 관건이었다. 알아보니 4분짜리 음악을 믹싱까지 완성하는데 기본 비용이 수백만원이라, 기존 제작 시스템을 활용하기 힘들어서 스탭들을 새롭게 캐스팅했다. 여러분을 만났지만, 최종적으로 큰 뜻을 함께할 분들로 결정했다. 어떻게 보면 지금 당장보다는 미래를 준비하고 큰 그림을 그리는 분들이다. 그러다 보니 굉장히 젊은 팀이 탄생했다. 덕분에 삼십 대 중반인 내가 팀에서 두 번째로 나이가 많다. 오디오무비지만, CG 등에서도 트렌디하길 원했고, 처음 팀을 꾸릴 때만 해도 올해 안에 끝날까 싶었는데 이후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무사히 끝냈다.

피칭부터 기획, 제작, 완성 그리고 공개까지 6개월만에 클리어하다니, 주목할만한 성과임에 틀림없다. (웃음)
말도 마라, 와중에 코로나에 걸려서 병원에서 각본 작업까지 했다! 눈 감고 잠자는 6시간을 제외하고, 지난 180일 정도를 중압감에 시달렸는데 다행히 함께해준 음악, 음향, 미술 등 감독님들과 테크니컬적인 면은 물론 연출적으로도 뜻이 잘 맞아서 거의 함께 밤을 새우며(?), 굉장한 파트너십 덕분에 달려올 수 있었다.

시즌2로 이어지는 건가.
시즌2의 트리트먼트를 공유드린 상태고 두 주연 배우분이 긍정적인 반응을 주셨다. 일단 5월이나 6월에 녹음하는 걸 계획 중이나 여러 변수가 있을 수 있어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가능하면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와 조금 더 세련돼진 CG로 1.5배에서 2배 정도 높아진 퀄리티의 작업물을 준비 중이다. 아마도 알파고 같은 AI와 인간의 대결 구도를 담은, SF가 나올지 않을까 한다. 오디오무비이기 때문에 크지 않은 예산으로도 가능하지 않을지. 가제는 <노아>다.

극장에서 상영할 수도 있다는 소식이 있던데, 오디오무비를 스크린으로 만나다니 흥미로운 역발상이다.
멀티플렉스로부터 제안받긴 했는데 아직 정해진 바는 없다. 오디오무비가 웬 스크린이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극장 음향 시설이 워낙 훌륭해서… 제대로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사실 차 안에서 들어도 죽여주거든. (웃음) (극장 상영이) 만약 성사된다면, 의미있는 진전이자 코로나가 만든 하나의 기적이 아닐까 한다.

마지막 질문! <층> 청취자나 인터뷰를 읽을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나 영화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평소 판타지나 크리처물, 그리고 스릴러 장르를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책을 꼽는다면 이병률 시인의 산문집 ‘끌림’이다. 세계를 유랑하면서 그때그때의 인연과 사소한 일들을 썼는데 내겐 휴식 같은 느낌이다. 원래 책을 두 번 읽는 성격이 아닌데 세 번 정도 읽은 유일한 책이다. 영화는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패밀리 맨>(2000)을 좋아한다.


사진. 박광희 실장(울트라 스튜디오)

2022년 1월 17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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