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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건 연기밖에, 범사에 감사” <강릉> 유오성
2021년 11월 10일 수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유오성이 누아르 <강릉>으로 돌아왔다. “<비트>(1997) <친구>(2001)에 이은 누아르 3부작”이라는 그의 설명이 귀에 쏙 박히며 신작의 성격을 대번에 가늠하게 한다. 동시에 오랜 시간 활동해온 배우로서 ‘건달’이라는 중복된 역할을 고민할 법도 하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의 답변은 명료했다. 배우는 ‘쓰임 받는 자’이기에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새로운 모습을 증명하기 위해 억지스럽게 다른 장르를 택하기보다는 같은 장르 안에서도 모두 다를 수밖에 없는 감독, 작가의 의중에 귀 기울이고 그들이 자신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한다고도 했다. 언제나 숙제를 풀어나가야 하는 입장이자 이제 “할 건 연기밖에” 없는 사람, 그러면서도 육체와 정신이 건강한 한 명의 개인으로 살아갈 수 있음에 “범사에 감사”하다고 말하는 사람, 유오성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강릉>을 두고 <비트> <친구>에 이은 유오성의 누아르 3부작이라고 정의했다.
촬영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강릉>이 배우 유오성에게 <비트>와 <친구>만큼이나 자리매김할 만한 작품이라는 자신감이 들어 그렇게 말씀드렸다. (결과물을 보고) 감독님에게 “당신의 첫 번째 영화이자 내 마지막 영화”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성도 면에서도 그렇지만, 2017년 감독님과의 첫 만남을 시작으로 개봉까지 4년 6개월이 걸린 만큼 배우로서 지구력 면에서도 더 ‘숙성’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마 누아르 장르로서는 (마지막으로) 정리되는 작품 아닐까 한다. <강릉> 덕분에 다른 작품에 임할 때도 좀 더 깊이 있는 연기를 해낼 것 같다.

언론시사회 당시 ‘사회적 루저들’ 이야기라고 했다.
지금이 신분 사회는 아니지만, 건달이나 깡패라는 주인공이 일반인 입장에서는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루저라고 표현한 거다. 감독님과 처음 대화를 나눌 때가 2017년 3월이었는데 그때 ‘위선의 시대’라는 말씀을 드렸다. <강릉>은 기본 상식 와해되고 낭만도 파괴된 현실을 사는 모습을 반영한 영화 아닌가 싶었다.


‘길석’ 역은 익히 잘 아는 건달 이미지가 반복되는 느낌도 있는 한편, 역시 ‘누아르는 유오성’이라는 평가도 있다.
보통 ‘건달 하면 유오성’이라고 하지 않나?(웃음) 그 또한 감사하다. 배우라는 직업은 선택지가 없다. 선택받고 쓰여지는 존재다. (그런 여건에서) ‘난 여러 가지 색깔이 있어’라고 억지스럽게 다른 장르를 선택할 생각은 없다. 내가 기본적으로 누아르라는 장르가 지니고 있는 페이소스를 좋아하기도 하고, 작품마다 감독님과 작가님이 매번 다르기 때문에 캐릭터가 겹칠 거라는 부담은 없었다. 특정한 이미지로 한정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사실 <강릉> 최초 미팅에서 제안받은 역할은 ‘길석’도 아니었다.

당초 어떤 역할이었나.
(웃으며) 가만 있어 보자… (극 중 서열상) 내 위에 있는 ‘최무상’(김준배) 역이었다. 그러니까 ‘큰형’ 역할로 나를 캐스팅하겠다는 거였는데, 그러고 나면 ‘길석’이라는 역할과 그 아래 나머지 배역은 나보다도 나이가 어려질 것 아닌가. 그런데 시나리오를 보니 그 인물들이 하는 대사가 2~30대 배우들이 (소화)할 만한 내용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물론 할 수는 있겠지만, 과연 그 나이대 배우가 (인생 경험을 은유하는 종류의) 대사를 할 때 관객이 납득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길석’역을 맡겠다고 했나.
‘길석’ 역할은 내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부득불 감독님을 설득하고 졸랐다. 배우 생활을 하면서 처음이었다. 그랬던 이유는, 앞으로 실제 액션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제한돼)있어서다. 생리적으로 주먹질하는 연기에 한계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욕심을 낸 부분도 있다. 결국 배우 김준배가 ‘최무상’역을 하게 됐는데, 사실 나보다 3살 어리다. 준배야, 미안하다.(웃음)


<강릉>이라는 작품의 매력은.
영화든 드라마든 주된 역할의 대사나 행동을 통해 주제를 전달한다. 그런데 <강릉>은 ‘길석’ 말고도 김준배, 오대환, 이현균, 김세준 등 주변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주제를 전달하는 면이 있어 좋았다. 나는 그분들의 액션에 충실하게 리액션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연기에 대한 욕심도 조금은 버릴 수 있었다. 누아르라는 장르가 좀 칙칙하고 무거울 수 있는데 그분들 연기 덕분에 숨통이 좀 트이는 느낌이더라. 촬영이 끝나고 나면 이런저런 대화도 많이 했는데 영화 얘기뿐만 아니라 ‘오늘 어땠어’ 같은 총평을 나눴다.

촬영이 끝난 뒤 자주 모였나 보다.
40살 넘은 대한민국 남자들이 오후 6시 넘어가면 사실 할 게 별로 없다. 커피만 마시면서 이야기하는 건 아니잖나.(웃음) 술 한잔하면서 담소를 나누는 거지. 촬영이 상당히 타이트했지만 일정이 끝나면 밥집에 모여서 ‘오늘도 잘 끝냈다’면서 으쌰으쌰 했다. 그런 게 반복되면서 현장에서 (좋은) 앙상블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액션 경험이 없는 배우들은 매일 출석도장 찍듯이 액션 스쿨에서 훈련하며 작품을 준비한다. 하지만 왠지 유오성이라면 몸을 다지고 액션신 촬영을 준비하는 개인적 훈련 비법이 있을 것 같다.(웃음)
(하하 웃으며) 비법은 아니고… 20년 전 복서 김득구 씨 일대기를 그린 <챔피언>(2002)이라는 영화를 준비할 때 나름대로 혹독하게 훈련 시간을 할애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그냥 배우지 ‘액션 배우’는 아닌데, 그래도 그때는 하루에 5시간씩, 1주일에 5일 동안, 다섯 달을 준비했다. 물론 <강릉>에서는 (전문적인) 발차기를 한다기보다는 소위 ‘개싸움’을 하는 건데 20년 전에 워낙 익혀놨던 게 있어서 몸이 (움직임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촬영 현장에서는 전문가인 무술 감독과 액션 코디네이터의 말을 잘 들으면서 촬영했다.


혹시 <강릉2>가 나올 수도 있을까.
엔딩 장면을 찍을 때 정면과 사이드, 두 가지 방향에서 촬영을 했다. 정면은 ‘종결’의 느낌이었고 사이드는 ‘앞으로도 뭔가 벌어질 것 같다’는 느낌이었는데, 영화를 보니 앞의 걸 쓰셨더라.(웃음) 뭐, 감독님이 이걸로 영화를 끝내시는구나 싶었지. 사이드도 참 좋았는데… 그걸 안 쓰시고 앵글로 종결시켜버리더라.(웃음) 그런데 어떻게 보면 <친구>가 <친구2>(2013)를 생각하고 만든 영화는 아니지 않나. 감독님이 감독 생활을 쭉 하면서 더 성숙해지고 더 얘기하고자 하는 부분이 생기면 <강릉2>를 만들 수도 있다. 그건 감독님의 몫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강릉에서 서울로 와야 하나 아니면 외국으로 나가야 하나.(웃음)

<친구> 이후 선 굵은 역할을 주로 맡았다. 코미디라든가 다른 장르 출연 제안은 없었나.
(친구 이후 선 굵은 역할은) 다 망했지(웃음). <주유소 습격사건>(1999)이나 드라마 <투명인간 최장수>(2006)에서 코미디 역할을 했듯이 어떤 감독은 나를 누아르 아닌 다른 이미지로 바라봐 주긴 하지만, <친구> 이후로는 코믹한 역할을 제안받은 적이 없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장르 중 하나가 코미디다. 가족 멜로도 선호한다. 하지만 하고 싶다고 하는 게 아니지 않나. 할 게 연기밖에 없으니 나한테 주어진 걸 잘 해내야 한다.

<안시성>(2017)의 ‘연개소문’, 드라마 <검은 태양>(2021)의 ‘백모사’ 역으로 젊은 관객에게도 사랑받았는데.
사랑받았다는 말을 하니 너무 오글거린다.(웃음) 나를 인상 깊게 각인한 역할을 보면 남성성이 극대화된 역할인 것 같다. 영화라는 게 환상이자 거짓말이라고 본다면 아마 영화 속 내 캐릭터를 통해 대리만족을 얻으신 게 아닌가 싶다. 한편으로는 감독님이 왜 그 작품에 나를 캐스팅했을지 생각하고 역할에 충실하는 게 내게는 숙제 같다. 내 경력에 집중해서 문제를 잘 풀려고 노력한다.


종편 저널리즘 프로그램 진행도 맡았다. 의외라고 생각했다.
우연히 출연 제안이 들어왔다. 내가 좀 투박한 편이라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것 자체를 많은 분이 낯설어하신 것 같다.(웃음) 2019년, 2020년 2년 동안 우리 사회에 대한 공부를 충분히 많이 했다는 생각이다. 사실 배우는 연기를 해야 한다.(웃음) 앞으로는 연기를 해야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꼽는다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1976)라는 영화를 20살 때 처음 봤다. 로버트 드니로라는 배우를 보고 ‘와아…’, ‘이야…’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항상 손에 꼽는 영화다. 뤽 베송 감독의 <그랑블루>(1988)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해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 아아…(웃음) 그 영화는 보고 나서 다음 상영 회차가 시작될 때까지 계속 극장에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간이 식당에서 커피를 시켜 놓고 앉아있는 장면에서 카메라가 줌아웃 된다. 그러면 저 할아버지는 이제 어디로 갈까. 딸과도 사이가 안 좋고, 신부님도 그를 지겨워하는데… 그게 가장 궁금했던 영화였다.

요즘 즐겨보는 작품은.
탐사보도 세븐 진행하면서 뉴스를 자주 봤고 비슷한 기간 <강릉>을 준비하느라 워낙 바빴다. <검은 태양>은 내가 출연하는 작품이라 전체를 봐야 해서 모니터했는데… 그 외에는 즐겨 본 작품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책을 자주 봤다. 최근에는 유튜브에 깔린 <강릉> 트레일러를 봤다. 일반 유튜버가 그걸 편집해서 올려 놓은 영상이 있는데 4일 만에 100만 뷰가 넘었더라. 많은 분들이 <강릉>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 같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아, 이런 말 하면 꼰대일 수도 있는데(웃음) 그냥 하루하루 감사하다. 사지 멀쩡하게 태어나게 해 주신 부모님께도 감사하고, 신체와 정신 모두 나름대로 건전하고 반듯하게 살아가는 것 같아서 범사에 감사하다.

사진 제공_제이엔씨미디어그룹



2021년 11월 10일 수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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