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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이 뿜뿜!” <오징어 게임> 배우 정호연
2021년 10월 13일 수요일 | 이금용 기자기자 이메일

[무비스트=이금용 기자]
2013년 서바이벌 프로그램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 시즌 4>에서 공동 준우승을 차지하며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은 모델 정호연. 파리와 뉴욕의 런웨이를 걸으며 글로벌 모델로서의 입지를 다져온 그가 연기 데뷔작인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을 통해 전 세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인기를 입증하듯 <오징어 게임> 방영 전 40만이었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1,340만으로 증가, 우리나라 여성 배우 중 가장 많은 팔로워를 보유하게 된 정호연은 지난 1일(금) 진행된 비대면 인터뷰를 통해 “무엇이든 다 해보고, 더 많이 경험하고 싶다. 열정이 ‘뿜뿜’하고 있다”며 극중 연기한 ‘새벽’과는 정반대의, 발랄하고 통통 튀는 에너지를 선보였다.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 넷플릭스 순위 1위에 오르며 크게 주목 받고 있다. 전 세계 시청자를 사로잡은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극중 나오는 게임 자체가 재밌고 따라하기 쉬운 데다가 현장에 가는 매 순간이 감동일 정도로 세트장이 시나리오를 읽고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훌륭했다. (웃음) 제일 매력적이라고 느꼈던 것은 인물들의 변화였다. 인간의 본성이 나오고 누군가는 인간성을 잃어가는 모습을 게임이라는 소재로 극대화하는 것도 무섭고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스토리 자체는 보편적인 인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해외 팬들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새벽’을 연기한 당신이 특히 시리즈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데.
첫 작품에서부터 큰 사랑을 받는다는 게 정말 행운이고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싶다. ‘새벽’이를 만나고 정말 많은 게 변했다. 전에는 체감하기 어려웠는데 이렇게 관련된 스케줄을 하나씩 해나가면서 이제야 조금씩 실감이 난다. 언젠간 전 세계 팬분들에게 직접 인사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모델 출신으로 이번이 첫 연기 도전이다. 연기 준비는 언제부터 했나.
해외에서 활동하며 내 모델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고 어느 순간 거기서 내려오게 됐다. 그래서 시간적 여유가 많이 생겼다. 그렇게 비는 시간에 액팅 클래스를 나가봤는데 부끄럽기도 하고 영어가 부족해서 안되겠더라. 배우더라도 한국에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에 한번, 겨울에 한번 홀리데이 휴가로 한달씩 한국에 왔는데, 3달에 걸쳐 3번 정도 개인 레슨을 받았다.

왜 연기였을까.
사실 모델들은 수명이 그렇게 길지 않다. 그래서 모델로서의 수명이 끝난 다음엔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과 부담이 크다. 모델들 사이에서 많이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연기자다. 솔직히 전에는 그렇게까지 연기에 대한 깊은 열망은 없었다. 오히려 연기는 너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다. 하지만 연기 수업을 들으면서 연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됐다. 시간 날 때마다 좋은 책과 영화들을 보며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무엇보다 외적인 것을 많이 표현하는 모델과 달리 사람의 감정과 사람의 삶을 표현하는 연기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오징어 게임>에는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해외에서 (모델) 일을 하고 있을 때 오디션 제안을 받았다. 굉장히 당황스럽지만 3일 동안 최선을 다해 오디션 비디오를 만들어 보냈고, 제작진으로부터 직접 만나고 싶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사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내 연기에 대한 신뢰가 없었기 때문에 붙을 거란 기대가 없었다. 그래서 긍정적인 답을 받은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느꼈다.

그렇게 곧장 한국으로 달려와서 실물 오디션을 봤는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손이 떨리고 목소리도 떨리더라. (웃음) 그런데 감독님이 기억하는 나는 달랐다. 연기하기 전에 인터뷰를 잠깐 했는데 긴장돼서 눈도 잘 못 보고 대답도 못하는 나를 보고 감독님은 내가 일부러 대답을 안 하는 건 줄 알았다더라. 진짜 ‘새벽’이처럼 리액션이 없는 아이라고 생각하셨다고. (웃음)

모델로서는 베테랑이지만 배우로서는 완전히 신인이다. 낯설기도 하고 걱정도 많았을 것 같은데.
촬영 초반엔 불안감이 많았다. 연기도 틀린 것 같고 내 목소리도 너무 이상한 것 같고 얼굴도 이상한 것 같았다. 이러다가는 나를 믿고 뽑아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게 되는 것 같아서 감독님에게 밥 한번 먹어 달라하고 1대 1로 만났다. 나를 왜 뽑았는지,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스스로 확신을 갖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감독님이 내가 ‘새벽’이로 충분했기 때문에 뽑았고, 또 이미 ‘새벽’이라고 말해주시더라. 그 말을 듣고 나서 연기에 대한 불안이나 긴장을 많이 내려놓게 됐다. 대신 연기를 잘하지는 못해도 최선을 다해서 해야겠구나 생각하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는 내가 할 수 있었던 일도 하지 못하도록 나 자신을 가둔 것 같다. 내 연기는 정말 많은 대화와 고민으로 만들어졌다.

당신이 연기한 ‘새벽’은 겉으로는 거칠고 무뚝뚝해 보이지만 어린 동생을 데리고 탈북해 온 가족이 함께할 자금을 모으기 위해 소매치기짓을 한다는 안타까운 사정을 가지고 있다.
‘새벽’이는 어린 나이에 탈북한 함경북도 출신의 새터민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북한 사투리를 들키면 좋지 않기 때문에 탈북하자마자 빨리 사투리를 고쳤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사투리를 거의 안 쓰는 설정을 잡았지만, 그럼에도 사투리 수업은 굉장히 열심히 받았다. (웃음) 액션신도 꽤 많아서 열심히 연습했더니 감독님께서 '왜 그렇게 무술을 열심히 하냐, 어차피 막싸움인데.' 하시더라. (웃음) <마담 B>(2015)처럼 새터민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도 많이 찾아봤다. 제일 집중했던 건 ‘새벽’이를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새벽’이의 내면에 더 다가가려고 (‘새벽’의 관점에서) 일기를 썼는데 과거에 부모님과 있었던 일, 탈북 과정에서 겪은 일들을 세세하게 쓰다보니 캐릭터에 좀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더라. 실제로 나와 닮은 점이 있기도 했고.

어떤 부분이?
해외에서 모델 생활을 할 때, 좋은 일이 아무리 많아도 그걸 나눌 사람이 없더라. 힘든 일은 더더욱 그랬고. 나누지 못하고 속으로 삼켜야 했던 그런 시간들이 ‘새벽’이와 비슷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물론 다른 지점이 더 많다. ‘새벽’이를 만나기 전의 나는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다. 어린 나이에 가족을 위해 목숨까지 건 ‘새벽’이의 책임감에 놀랐다. 남을 위해 살 때 내 인생이 더욱 의미 있어질 수 있다는 걸 느꼈다. 나 역시 그런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

‘지영’(이유미)과의 관계성도 인상적이었는데.
나도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가장 많이 운 신이 ‘지영’이와 ‘새벽’이의 장면이었다. 유미랑 같이 나오는 장면이 대체로 복잡한 감정신이라 부담이 컸다. 그냥 대화하는 장면이라 울면 안 되는데도 자꾸 눈물이 터져서 참느라 힘들더라. (웃음) 둘의 관계가 멋있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깝고 슬펐다. 첫 리딩 상대가 유미였는데 동갑이지만 어른스럽게 잘 받아줘서 고마웠고, 처음부터 정말 많이 의지했다. 유미와 연기에 대한 얘기를 할 땐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 (웃음)

다른 선배들과는 어땠나.
다들 너무 대선배님들이라 떨려서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마시기 시작했다. (웃음) 그래도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마음을 다잡기가 쉽지 않더라. 오디션 볼 땐 몰랐는데 합격하고 시나리오 받고 준비하는 과정부터 불안감과 스트레스가 최대치였던 것 같다. 선배님들, 감독님께 조언을 많이 구했고 모든 선배님들이 내 고민을 정말 잘 들어주시고 도와주셨다. 어느 날은 너무 만족스럽지 못한 연기를 해서 답답한 마음에 울었는데 (‘한미녀’ 역의) 김주령 선배님이 '이미 충분하다'고 격려해주신 게 큰 힘이 됐다. 선배님들 덕분에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배우 이동휘와 6년째 공개 열애 중인데, 그의 반응은 어떻던가.
엄청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아무래도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다보니 격려도, 걱정도 많이 해준다. 정말 좋은 선배님이자 친구이자 좋은 사람이다. 때로는 아빠 같기도 하고. (웃음)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이고, 서바이벌 게임을 소재로 한 이번 작품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분투한다. 실제로 승부욕이 강한 편인가.
한국에서 활동할 땐 어린 나이지만 혼자서 일을 따내야 한단 강박이 있었다. 누구보다 잘해야 하고, 해내야 하고,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승부욕도 강했고. 그런데 해외에 나가게 되면서 나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 생기더라. 다른 사람에게 믿고 맡겨야 하는 상황이 처음엔 너무 불편했다. 그러다가 타인의 도움을 받아들일 줄 아는 게 나에게 꼭 필요한 일이란 걸 서서히 깨닫게 된 거 같다. 내가 너무 승부욕에 나를 가둬 놓고 스스로를 옥죄면서 산 건 아닌가 싶더라. 그 때부턴 조금씩 밸런스를 맞춰 그 중간에 존재하려 노력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승부욕을 내려놓게 됐다.

앞으로 어떤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나.
무엇이든 다 해보고, 더 많이 경험하고 싶다. 열정이 '뿜뿜'하고 있다. (웃음) 기회가 된다면 <킬 빌>에서 우마 서먼이 맡은 역할 같은 캐릭터도 맡아 보고 싶고. 어떤 역할이 들어오든 더 나은 배우가 될 수 있도록 항상 열심히 하겠다.

최근 각종 인터뷰와 화보는 물론 해외 유명 토크쇼에 초청되는 등 정신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너무 큰 일이 한 번에 일어나서 아직까지 정신이 없고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웃음) 최대한 지금 할 수 있는 것, 주어진 것들을 잘 정리하고 잘 해나가면서 겸손하게 발전해나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오징어 게임>이 큰 화제를 일으킨다고 해서 내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나는 나다. 그저 최선을 다해서 책임감 있게 해나가겠다.

사진제공_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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