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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력은 ‘믿음과 신뢰’ <모가디슈> 류승완 감독
2021년 8월 18일 수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배우와 스탭들 간에 신뢰가 있기에 가능했다. <모가디슈>를 관람한 관객에게 감사함을 넘어 매우 큰 힘을 받는다.”고 전하는 류승완 감독을 화상으로 만났다. 차기작 <밀수>의 빠듯한 촬영 일정에도 어떻게든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는 그는, 영화를 향한 뜨거운 응원에 어떤 말로 고마운 심정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결코 ‘혼자’만의 결과물이 아니라고 강조하며, 영화에 참여한 모든 이에게 공을 돌린다.

# CAST


<모가디슈>의 중심인물인 남한 외교관 ‘한신성’역의 김윤석, ‘림용수’역의 허준호, ‘강대진’역의 조인성, ‘태준기’역의 구교환까지 모두 류승완 감독과는 첫 작업이다. 캐스팅 이유에 대해 류 감독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첫 미팅부터 촬영현장의 에피소드, 작업소감까지 끊이지 않고 칭찬의 말을 이어간다.

윤석 선배는 평소 너무 좋아하는 선배이자 배우입니다. <모가디슈> 속에서 일상적인 느낌을 낼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는데요, 선배가 그간 강렬한 포스를 내뿜는 역할도 많이 했지만, <거북이 달린다>(2009), <완득이>(2011) 등의 평범한 모습도 있거든요. 한데 늘어진 메리야스를 걸치고 서민적인 외양을 하고 있어도, 그 와중에 품위를 잃지 않는 느낌이 있어요. ‘한신성’ 대사역에 바로 떠올랐죠.

선배는 대본을 보기 전에 출연 결정을 해줬는데요, 워낙 준비가 철저한 분이라 첫 미팅 때 모가디슈 실화를 다 조사한 후 캐릭터 분석까지 해 오셨더라고요. 선배의 해석과 제 해석이 매우 비슷했고, 또 제가 놓쳤던 부분도 짚어주셨어요. 인슐린은 선배의 아이디어였습니다.

극 중 북한대사 ‘림용수’는 당뇨를 앓아 인슐린 주사를 주기적으로 맞는 인물. 시민군이 북한 공관을 습격하는 과정에서 약을 몽땅 털려 버리고 만다. 남한 공관에 도착한 후 힘들어하는 그에게 한신성은 별다른 말없이 덤덤하게 인슐린을 내미는데, 정치적으로 대립할 수밖에 없었던 두 남자 사이에 인간적인 연민이 처음으로 싹트는 대목이다.

김지운 감독의 <인랑>(2018)을 보면서 준호 선배의 얼굴이 정말 좋았어요. 선배라는 걸 떠나 ‘저 배우를 카메라 앞에 세우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결코 쉽지 않았을 세월의 풍파가 할퀴고 간 얼굴이 어떤 설명 없이도 자체로 드라마가 돼 있잖아요. 대 선배를 처음 뵙는 자리라 매우 긴장했고, 잘 만들겠다고 구라도 쳤는데 (웃음) 그때 너무 따뜻하게 씩 미소지은 채 끄덕끄덕하며 ‘해볼게요’ 하는데 진짜 정신 차리고 잘해야겠다 싶더군요.

허 선배는 어렵고 힘든 현장을 경험한 적이 많아 촬영하면서도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셨고요. 촬영이 없는 날에도 매회 나와서 직접 내린 커피를 나눠주셨습니다. 그런 따뜻한 모습이 지금도 또렷합니다. 또 준호, 윤석 선배 두 분이 쿵짝이 잘 맞아서 카메라 뒤에서 농담하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니까요.
 <모가디슈>
<모가디슈>

그간 미장센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를 지켜보며 평소 (구)교환의 팬이었습니다. 그가 만든 영화도 출연한 영화도 모두 좋아해요. 너무 신선한 얼굴이잖아요. 촬영하면서도 그 신선함이 주는 재미라고 할지 묘한 매력이 넘쳤습니다. 목소리는 얇고 체구는 자그마한데 어쩜 그렇게 악을 잘 쓰고, ‘강대진’(조인성)한테 얻어맞으면서도 끝까지 맞붙는지 한편으로 보면 땡깡부리는 것 같기도 하잖아요. 이런 모습이 마치 북한 같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가 가진 매력으로 미처 예상치 못했던 지점을 획득할 수 있었죠.

<모가디슈>에서 남한 측 참사관 ‘강대진’역으로 이전에 없던 아저씨 같은 면모를 보인 조인성 배우는 류승완 감독의 차기작 <밀수>에 합류, 지난 6월 초 촬영에 들어갔다.

조인성 배우를 사무실에서 처음 만나 영화의 의도를 설명하니, 그때가 시나리오가 나오기 전인데도, 선뜻 해보겠다고 하는데 어딘가 약간 비현실 같다고 느꼈어요. 근데 알려진 대로, 이름처럼 인성이 대단해요. (웃음) 예능 <어쩌다 사장>에서의 모습이 꾸민 게 아니라니까요. 멋지고 좋은 사람입니다.

강대진이 원래는 영어 대사가 좀 더 많았어요. 보더니 영어 대사에 자신 없다고 부담감을 솔직히 이야기하더군요. 그래서 유창한 발음을 사용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등 각본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신뢰감이 쌓이기 시작했는데, 촬영에 들어가니 정말… 톱스타 ‘조인성’을 내려놓고 헌신적으로 연기하는 데다가 주변 스탭과 동료 배우를 어찌 그렇게 살뜰하게 챙기는지, 감탄했습니다.

촬영 후 동료들을 방에 데려가 한국 음식을 챙겨 먹이기도 하고요. 현장 스탭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기억하는 겁니다. 그들의 힘든 점을 저에게 전달해주는 등 화법이 굉장히 훌륭해요. 좋은 배우이기 전에 좋은 사람이구나 싶었습니다. 감동적인 순간이 한두 개가 아닌데요, 무엇보다 허준호, 김윤석 두 선배를 대하는 게 진심이더군요. 후배들한테도 마찬가지고요.

또 무엇보다 <모가디슈>에서 연기를 맛깔스럽게 하잖습니까. 조인성만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다른 배우에 대한 고마움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4개월 동안 같이 하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후반 작업하면서 연락해서 고맙다고 했는데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합니다.
 <모가디슈>
<모가디슈>

# PRODUCTION


<모가디슈>에 참여한 배우들은 이구동성 ‘류승완 감독’이기에 가능한 프로덕션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원래는 케냐 로케이션을 하려 했으나 안전을 최우선 한 결과 모로코가 낙점됐다. 모로코는 소말리아를 배경으로 한 전쟁영화 <블랙 호크 다운>(2001)의 촬영지이기도 하고, 유럽과 가까운 데다 영화제작 여건이 잘 조성된 지역. 덕분에 인력의 수습과 촬영을 예상외로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모가디슈> 룩의 완성은 김보묵 미술감독이 이끈 미술팀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미술뿐만 아니라 여러 팀원들의 노력이 모인 결과물이고, 심지어 배우들도 현지에서 스탭과 같이 일했던 현장이라 ‘저 혼자’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에요. 스탭과 배우가 믿고 따라주지 않았다면 시작도 못했을 겁니다. ‘믿음과 신뢰’야 말로 <모가디슈>를 완성한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모가디슈>
<모가디슈>

<모가디슈> 촬영지는 모로코 중에서도 건축양식과 시가지 풍경 등이 모가디슈와 상당히 흡사해, 현지에서 최적의 장소를 찾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1991년 소말리아 모가디슈를 재현하며 류 감독이 가장 신경 쓴 지점은 무엇일까.

모가디슈라는 공간 자체가 한국에서는 낯설잖아요. 로케이션으로 영화를 찍을 때 빠질 수 있는 함정 중 하나가 배경에 공을 들이다가 자칫하면 인물을 놓치는 건데요. 지금까지 촬영하는 장소가 어디든 그 인물이 숨 쉬는 공간으로 느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고요.

제한된 예산 안에서 얼마나 진짜처럼 혹은 실제처럼 구현하느냐가 관건이었죠. 예를 들면, 초반에 ‘강대진’(조인성)이 영국 신문 기자를 만나는 시장터가 있는데요, 이건 공터에 완전히 새롭게 만든 공간입니다. 카체이싱 시퀀스에 출연한 현지 배우 중 한 분이 마침 1991년 모가디슈 현장에 계셨던 분인데, 그분이 우리 세트 보고 정말 당시와 비슷하다고 칭찬해서 정말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웃음)

전체적인 촬영 콘셉트는 인위적인 것을 배제하고 실제의 것을 최대한 활용하자였습니다.

옛날 영화 같은 느낌이 나는 아나모픽 렌즈를 활용했고요, 실제처럼 느끼도록 하기 위해 인위적인 조명을 최대한 지양했어요. 모로코의 광량이 너무 좋아서 자연 광원을 최대한 살리려고 했습니다. 내전이 반발한 후 전기가 끊긴 상황에서는 촛불에 의지해 촬영했고, 이때 막힌 공간에서 초를 여러 개 켜다 보니 산소가 부족해져서 배우들이 고생했습니다.

마지막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공항으로 가는 버스도 예전에 제작된 버스를 그대로 사용했는데요, 옛날 제품이다 보니 엔진이 실내에 있어요. 촬영하는데 한번은 윤석 선배가 무전으로 잠깐 쉬게 해달라고 요청하셨어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말이죠. 엔진에서 연기가 많이 나와 배우들이 정말 힘들었던 거죠. 공항 몹씬도 CG로 채운 게 아니라 일일이 통제하며 촬영한 겁니다.
 <모가디슈>
<모가디슈>

# MOTIVATION & ISSUE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코로나로 인해 영화업계는 큰 타격을 받았다. 류 감독은 자신이 영화를 시작한 90년대 초반, 한국영화가 활황을 맞기 전인 그 시기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고 말한다.

극장 관람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상황이잖아요. 코로나 확진자 증가와 올림픽이라는 축제까지 겹쳐서 흥행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마음을 내려놨었습니다. 한데, 그럼에도 관객이 봐주시고 응원해주는 게 마치 기적 같아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감사를 넘어 영화는 만드는 한 사람으로서 진짜 큰 힘을 받고 있어요.

<군함도>(2017)에 이어 이번 <모가디슈>도 실화에 기반한 작품이다. 류 감독은 국내에는 잘 안 알려진 소말리아 내전이야기를 접한 후 그 강렬함에 끌렸다고 한다.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고, 올로케이션으로 작업해야 하는 결코 쉽지 않은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이 사건을 알고 나서 소위 ‘꽂혀’ 있던 차에 이야기의 판권을 지닌 덱스터스튜디오 측이 타이밍 좋게 제안을 해줬습니다. 극한 상황 속에 고립된 남북한 인물들, 국내 영화에서 한 번도 구현하지 못한 상황을 만들어 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사건 자체가 드라마틱해서 덧셈보다 뺄셈이 중요했어요. 자료를 찾아보니 진짜로 벌어진 일인데도 불구하고 가짜 같은, 그야말로 영화적 상황이더군요. 그래서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큰 줄기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실제처럼 느껴지도록 영화적 장치를 요소요소 심었어요. 후반부 카체이싱 시퀀스에서 모래주머니와 책 등으로 차량을 감싸 방탄 장치를 만든 것 정도가 상상력을 발휘한 부분입니다.

남한과 북한이 공조하는 이야기이든 대립하는 이야기이든 영화 속으로 남북 관계를 끌고 들어오는 것 자체가 모험일 수 있다. 국내외 정치·사회적인 기류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영화의 메시지나 만듦새와 상관없이 편향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남북관계를 그린 영화를 ‘흥행’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꺼내 드는 데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흥행이란 건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데다, 또 제가 언제부터 흥행감독이었다고요.

<베를린>에 이어 <베테랑>이 터진 덕분에 천만관객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게 됐지만, 부담되고 힘들기도 해요. 영화를 만든 입장에서 당연히 흥행하면 좋겠지만요, 흥행 자체가 목표점은 아닙니다. <모가디슈>를 본 관객이 남북관계에 대해 어떤 마음의 변화를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영화감독을 떠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되기를 희망합니다.
 류승완 감독, 촬영현장
류승완 감독, 촬영현장

<모가디슈>는 미덕이 많은 작품. 누군가는 모로코의 이국적인 풍광과 리얼한 카체이싱 액션을 칭찬하고, 또 다른 이는 남한과 북한의 인물 간에 싹트는 인류애와 연대감에 마음이 움직이기도 하는 등 영화를 바라보고 즐기는 포인트는 저마다 다를지라도 고질적인 ‘신파’가 없다는 점에는 의견을 모은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에 집중해보니 지나치게 흥분하지 않고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이더군요. 극적인 상황일수록 만드는 사람이 적정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걸 배웠죠.

사실 특정한 소재나 인물에 끌리는 건 의식의 영역이 아니라 무의식의 작용이라 할 수 있어요. <군함도> 때 몹씬 연출과 심도 깊은 화면 구성의 경험이 있어 이번 <모가디슈>도 가능했어요. 두 작품 모두 실화에 기반한 이야기지만, 다음 영화는 어떨지 저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감독으로서의 명성과 개인적인 시선보다 관객이 내가 만든 영화를 어떻게 바라보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관객은 결국 영화 속 주인공과 그들의 이야기를 보는 거잖아요. 감독이 전면에 나서면 자칫 좋지 않은 필터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카메라 뒤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족합니다.

배우와 스태프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모가디슈>를 완성할 수 있었고, 코로나 시국에도 용기를 내 극장 관람을 선택해준 관객 덕분에 힘이 난다고 말하는 류승완 감독. 극 중 한신성(김윤석)이 림용수(허준호)에게 하는 “때론 진실이 두 개일 때도 있다”는 말을 가장 좋아하는 대사로 꼽는다. 사람은 의외로 이런 상황에 자주 처하게 되는 것 같다면서,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싶단다.


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2021년 8월 18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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