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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경표 신파란? 3대가 즐길 수 있는 <이웃사촌> 이환경 감독
2020년 12월 1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 “꼭 저렇진 않았어”라고 평하는 아버지와 “저런 일이 있었단 말이야?”라며 깜짝 놀라는 아들에게 이환경 감독은 말한다. “아버지, 영화로 봐야죠.”, “어, 가택 연금에 도청에 모두 진짜야.”라고. 198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한 <이웃사촌>은 가택 연금 상황인 야권 대선 후보 ‘의식’(오달수)과 그를 불법 도청하고 감시하는 임무를 맡은 정부 요원 ‘대권’(정우)과의 우정과 연대를 주축으로 하는 휴먼 드라마다. 가족을 중심으로 한 보편적인 이야기 속에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담아냈다. 온기와 웃음의 결을 지닌 영화를 향해 일각에선 철저하지 못한 고증과 뻔한 이야기라고 지적할지 모르겠지만, 이 감독의 생각은 좀 다르다. 애초에 정교한 정치드라마를 지향한 것도 묵직한 사회적 화두를 던지고자 한 것도 아니기 때문. 우리 이웃의 이야기 속에 부조리하고 엄혹한 시대를 환기해 현재를 돌아볼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이 감독은 말한다.

<7번방의 선물>(2012, 이하 <7번방>)과 마찬가지로 웃음과 온기 속에 시대상을 담고 있다. 다만 <이웃사촌>은 고 김대중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점에서 좀 더 직접적인 인상이다.
<7번방>에서 교정 제도의 허점과 사법제도의 불합리함을 드러냈으나, 그를 목적으로 만든 영화는 아니었다. 아버지와 딸, 부녀 사이의 애정과 사랑을 어떻게 감동적으로 표현할지 생각하다가 일련의 사건을 떠올리면서 교도소라는 배경과 사법 관리 체계를 가져온 거다. <이웃사촌>은 이를 좀 더 확장했다. 한정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7번방> 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자택 격리된 인물과 그의 이웃 사이에 형성되는 우정을 그리는 게 주축이고 이에 80년대 정치적 모습이 따라왔다고 보면 된다. 만일, 80년대의 사회·정치적 상황을 뼈대로 그 안에 우정을 그리려 했다면 지금과 많은 부분이 변했을 거고, 내 영화의 톤과도 맞지 않다.

당신 영화의 톤은 무엇일까. (웃음)
나 자체가 정치적인 인간이 아니다.(웃음) 내 영화의 톤앤 매너는… 어른이나 아이나 또 할아버지 할머니, 3대가 한자리에 모여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다. 35년 전이라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상황 아닌가. 영화를 통해 그런 시대가 있었음을 환기하는 것으로 족하다. 중요한 것은 서슬퍼런 시대를 살았던 야당 총재이자 신념의 정치인이 가정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가장이요, 일상에서는 친근한 이웃사촌이라는 것. 그게 영화의 초점이다.

직접적으로 밝히진 않으나 누가 봐도 김대중 대통령을 떠올릴 텐데, 실제 인물을 대상으로 한다는 게 부담되진 않았나.
부담감이 있긴 했다. 다만 작가로서 감독으로서 영화적 상상력을 덧입혀 새롭게 표현했는지에 대한 부담감이다. .정치, 사회적 상황 또는 인물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담감은 아니었다. 정치, 사회적으로 당시를 제대로 묘사해 보겠다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서 곧이곧대로 현실과 대비해 본다면 영화가 굉장히 허술해 보일 수 있다. 전혀 다른 삶을 사는 두 인물 의식- 대권의 교감을 위한 장치로 김대중 대통령을 모셔(?)온 것이다. (웃음)

35년이 길다면 긴 세월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리 오래전이 아니기도 하다. 가택연금, 금지가요 등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시대가 존재했다는 것에 새삼 놀라게 되더라.
그렇지.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본 전국의 관객이 쓴 리뷰가 올라오는데, ‘정말 믿기지 않는다’고, ‘저런 시대가 있었냐’는 의견이 꽤 있었다. 지금, 자유로운 시대를 만들어준 선배들께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통일 전 독일을 배경으로 한 영화 <타인의 삶>(2006)이 떠오른다는 평이 많다. 그 영화를 봤나. (봤다면) 또 참고한 점이 있는지. 개인적으로 유사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질문해 본다.
예전에 봤다. 누군가를 도청하면서 각성하고 변화한다는 유사 상황을 보고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그간 도청을 다룬 영화가 많지 않아 더 비슷하게 보는 듯하다. 당신 말 대로 모티브를 공유할 뿐 전체적인 분위기와 결엔 차이가 크다.
 <이웃사촌>
<이웃사촌>
‘의식’과 ‘대건’ 사이의 우정이 주축인 만큼 캐스팅에 심혈을 기울였겠다.
음, 사실 캐스팅은 아주 명료했다. 시나리오를 정우, 오달수 선배 외에 다른 분께 드리지 않았거든. 처음부터 ‘대권’을 단순하고 직설적이고 과격하고, 그러면서도 따뜻한 결을 지녔으나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캐릭터로 기획했거든. 바로 정우 배우가 떠오르더라. 내 데뷔작 <그 놈은 멋있었다>(2004)에 그가 출연했거든. 주인공(송승헌)과 맞짱 뜨는 역으로 역할이 아주 재밌고 셌는데 재기발랄하면서 행동대장 같이 잘 해냈었다. 당시 선택권이 넓지 않은 신인 감독 입장에서, (내 의지로) 신인배우를 조연에 기용한 경우라 좀 더 각별한 감정이 있었다. 이후 17년을 지켜봤는데 표현에 서툴러 그렇지 내면이 정말 보드랍고 순수한 친구다. 언젠가 같이 작업하자고 했는데 싸인코싸인(일정)이 안 맞았다. <이웃사촌>을 얘기하니 극 중 대권이 말하듯 ‘무조건합니다’라고 직진하더라.

그런 오랜 인연이! 오달수 배우와는 <7번방의 선물>이후 다시 뭉쳤다.
<7번방>을 하기 전엔 간간이 뵙긴 했지만, 자세히 알지는 못했었다. 당시 시나리오를 전달했는데 어마어마한 리뷰를 해 주더라. 본인의 캐릭터뿐만 아니라 영화 전반에 걸쳐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감정에 따라 색깔별로 칠해 놓고 일일이 책갈피를 꼽아 놓는 등 시나리오 분석을 워낙 철저히 하는 분이다. 그렇게 철저히 준비하고 들어가지만,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상대역과 분위기 등 현장 상황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한다. 그게 배우 오달수의 힘이다. 또 촬영 초기에 ‘이 영화는 천만 간다’고 처음으로 말해준 분이기도 하다.(웃음) <7번방>을 하며 코미디만이 아니라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 배우인데 평면적으로 활용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새 옷을 입혀주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게 <이웃사촌>이다. 시나리오를 건네니 내가 할 수 있겠냐고 물으며 일주일만 시간을 달라고 하더라. 이후 기회를 준다면 해보고 싶다고 수락했다.

우여곡절 끝에 개봉했다. 소회는.
<7번방> 때 받았던 선물을 다시 나눠드리는 기분이다. <7번방>은 내게 행운이자 선물이었다. 대기업 배급사를 낀 것도, 내가 힘 있는 감독도 큰 영화도 아니었는데 명절 시즌에 개봉했고 영화가 지닌 힘 하나로 관객에게 아낌없이 사랑받았다. <이웃사촌>에서 의식이 딸에게 ‘내가 받은 게 너무 많다’고 한 것처럼 나 역시 관객에게 받은 게 너무 많다. 코로나 시국에 개봉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지금 이 시기에 개봉한 것이 운명 같다는 생각이다. 코로나로 지치고 우울한 관객에게 작은 선물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거리두기와 개인방역으로 이웃과 단절된 요즘, 영화를 통해 이웃 나아가 사람 간의 관계를 환기하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다. 따뜻한 감정을 잠시나마 느끼길 바란다.

나만의 컷을 꼽는다면.
의식과 대권이 각자 집의 옥상에 올라가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서로를 마주 보는 장면이다. 둘 다 어린 시절 그런 주택의 추억이 있는지라 공간에 더 감정이 실렸던 것 같다. 촬영이 진행되면서 서로 간에 교감이 생기고 쌓여 그 장면은 완전히 캐릭터화 돼서 촬영했었다. 배우도 대사를 안 하고 나도 컷을 안 하고… 지켜보다 컷을 하니 둘이 웃으면서 ‘대사 왜 안 했지!’ 이러더라. 한편으론 옥상 아래 있는 벽이 요즘에 사람들이 착용하는 마스크 같은 느낌이 든다. 코로나 종식 후에 마스크를 벗어 던지듯 마음의 벽을 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더라.

# ‘빨갱이’, <이웃사촌> 속 그 어느 말보다 자주 등장하는 단어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정부에 반하는 사람을 통칭하는 매직 워딩이다. 레드콤플렉스가 구식 프레임처럼 여겨지는 현시대와는 간극이 꽤 큰 표현인데 다 이유 있는 선택이었다. 이분법적인 사고의 유물을 지워버리고 싶은 의도를 담아 일부러 많이 사용한 것이다. 뻔한 구조와 뻔한 이야기 속에 웃음과 눈물 그리고 온기를 담아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영화, 이환경표 신파의 지향점이다.

‘의식’ 대 ‘안정부 김 실장’(김희원)이라는 명확한 선악의 대립과 그 경계에 자리한 도청팀 3인방(정우, 김병철, 조현철), 이분법적인 선악 구조와 점차 선화(善化)되는 인물이라는 예상된 전개에 지극히 전형적이라는 시선도 있다.
내 이야기와 영화는 단순구조에 명확한 이야기, 즉 심각하거나 새로움을 추구하기보다 누구나 알고 있는 뻔한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다. 뻔한 구조와 뻔한 서사에서 남녀노소가 공감하고 좋아할 만한 영화를 추구한다. 자만도 겸손도 아닌 솔직한 마음이다. 우리 영화가 정치영화가 아님에도 영화를 보고 당시에 관해 관심을 갖고 나아가 관련 자료 등을 하나라도 찾아보게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정치, 사회를 다룬 깊은 얘기는 다른 창작자들이 이어갈 것이고, 궁금증으로 이끄는 것까지가 내 역할 그리고 우리 영화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뻔한 구조에 뻔한 이야기를 하면서(웃음), 공감과 감동을 유발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작업 아닌가. 연출 시 주안점은.
단순한 캐릭터에 이분적인 선악의 구도지만, 중요한 것은 앙상블이다. 아홉 살 아들도, 나이 지긋하신 우리 아버지도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웃을 수 있는 정도로 가져갔다. 영화를 보고 아버지가 “그분이 꼭 저렇지는 않았어”라고 지적하면 “아버지, 영화로 보셔야죠”라면서 응수하고, 아들이 “집에 사람을 진짜로 가둬뒀어?”라면서 놀라면 “진짜야, 불과 삼십몇 년 전에”라고 확인해준다. 아버지와 아들의 반응을 보면서 대략 의도대로 만들어졌는지 가늠하는 거지. 영화전공자인 딸에게는 공부하는 입장에서 어떻게 봤는지 물어보는데 그러면 엄청 심각하게 비판을 섞어 애정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가족의 도움이 크다. <7번방>과 이번 <이웃사촌> 등 속에 나오는 이름 예승, 예준, 의식 모두 우리 가족 이름에서 따온 거다. 하하하

빨갱이라는 표현이 유난히 많다. 레드컴플렉스에서 자유로운 젊은 세대에겐 다소 괴리감 혹은 구식처럼 다가갈 수 있는 표현이다. 또 원래 2018년 개봉을 준비하다 연기됐는데, 영화를 현재 2020 시점에서 기획했다면 변화할 지점이 있을까.
처음 시나리오를 쓴 건 거의 5~6년 전이다. 최근 3년은 본의 아니게 편집과 녹음 작업을 하면서 변하는 사회 분위기와 국민 정서에 맞춰 나갔다. 원체 촬영 분량이 많아 소스가 방대했거든. 덕분에 여러 버전으로 편집을 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2020년에 기획했다고 하더라도 ‘가족과 두 사람의 우정’이라는 주축은 지금과 크게 달라질 게 없을 거다. 사실 빨갱이라는 표현은 좀 덜어낸 거다. 처음에는 더 자주 등장했었다. 극 중 의식의 딸 ‘은진’(이유비)이 김 실장(김희원)에게 “도대체 당신이 생각하는 빨갱이가 뭐냐”고 묻는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면 다 빨갱이로 모는 매우 이분법적인 사고가 지배하던 시대의 유물을 지워버리자는 생각으로, 촬영하면서 의도적으로 많이 사용했었다.
 <이웃사촌>
<이웃사촌>
한 편 한 편 필모가 쌓이면서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도 변할 것 같다. 어떤가.
복합적이라 어떻다고 꼬집어 단정하기 힘든데, 예를 든다면 부담스럽다는 마음보다는 고민이 더 커진다. 돈이 되는 영화 혹은 영화제나 수상을 겨냥한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없다. 다만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지가 관건이다. 그게 관객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하거든. 잘 된다면 돈과 명예는 자연스럽게 따라오지 않을까 한다.

준비 중인 작품이 있다면.
몇 개 있는데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라 밝히기 어려운 점을 양해해달라. 된장찌개나 김치찌개처럼 누구나, 질리지 않게 먹을 수 있는 영화를 준비 중이다. 이전 작품들과 비슷한 느낌으로 휴먼 코미디 안에 가족과 사랑, 소통을 베이스로 가져갈 것 같다.

마지막 질문이다. 소소하지만, 행복한 일은.
요즘엔 <이웃사촌>에 관한 리뷰를 보는 거다. 리뷰를 안 볼 때는 영화 관계자들과 <이웃사촌> 관련 수다 떠는 것? 개봉해서 정말 행복하다. (영화가) 코로나 시기에 (감정적) 백신이 됐으면!

진짜 마지막 질문! 인상 깊은 리뷰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웃음)
어떤 분이 이렇게 쓰셨더라. “<7번방의 선물>의 신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웃사촌>에도 넣었을 거로 생각해 기대하지 않았다. 시사회에 당첨돼 생각지도 않게 봤는데 신파에 나도 모르게 웃고 울었다. 이환경 감독의 신파를 인정하고 응원하겠다”라고. 감동이었다.

사진제공_리틀빅픽쳐스

2020년 12월 1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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