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어렵고 힘들어도 영화는 멋지다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신정원 감독
2020년 10월 7일 수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번득이는 재치와 상상력으로 허를 찌르며 감탄을 자아낸 <시실리 2km>를 보며 ‘도대체 누구?’인지 연출자가 궁금한 관객도 많았을 터다. <차우>, <점쟁이들>로 이어지는 독특한 스토리텔링과 연출력으로 독자적인 영화세계를 구축한 주인공은 바로 신정원 감독이다. <시실리 2km> 당시 만드는 중 쏟아지는 불만과 이후 냉정한 눈초리에 외롭고 상처를 많이 받았노라고 털어놓는 신 감독, 이후 점차 우호적인 시선으로 바뀌었다고. 멀리 외계에서 소환한 ‘언브레이커블’과 언브레이커블을 부수고야 마는 세 여성을 주축으로 한 블랙, 코믹, 잔혹, 소동극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으로 신 감독이 오랜만에 관객을 찾는다. 지금까지 가장 호의적인 시선을 느끼는 중이며 아쉽다는 의견조차 응원으로 들린다는, 수다스럽지 않은 재담꾼 신정원을 만났다.

데뷔작 <시실리 2km>(2004)로 혜성(?)처럼 등장,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웃음) 이후 <차우>(2009), <점쟁이들>(2012)로 독특한 작품 세계를 보여줬다. 신작을 기다린 팬들이 많다.
영화를 전공한 것도 아카데미 출신도 아니다. <시실리 2km> 때 지지해준 분도 계시지만 비난 혹은 비판도 거셌다. 외롭고 상처도 많이 받았다. 지금이야 하는 말이지만, 이렇게 영화 찍는 게 어딨냐고 그냥 가신 분도 있었다.(웃음) 로맨스, 코미디 등 장르별 다 규칙이 있는데 허공에다 삽질한다고 할까. 실체가 없고 당시로서는 레퍼런스도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물론 그 기저에는 신인 감독인 나에 대한 신뢰 부족이 깔려 있었을 거다. 그럼에도 흥행에 성공했고, 이후 유사한 시나리오가 쏟아져 들어왔는데 규정되는 게 싫어 고사했었다.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었거든.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우호적인 시선으로 바라봐 주신다. 이번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도 그렇다. 지금까지 영화 중 가장 호의적이다. 아쉽다는 의견도 응원의 하나로 느껴지고, 앞으로 작업해 나감에 있어 보완해 나가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점쟁이들>(2012) 이후 오랜만인데, 제작 환경과 문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체감하는지. 또 복귀에 시간이 걸린 까닭은.
그간 준비하던 게 몇 번 엎어지다 보니 그렇게 됐다. 서너 개 진행했으니 공백이 그리 긴 것은 아니다. 다만 완성으로 이어지지 못했을 뿐이지. (알겠지만) 영화판에서는 흔한 일 아닌가. (웃음) 영화의 기본적인 속성이 변하지 않으니 환경의 변화를 체감했다기보다 코로나 시국과 겹쳐 현 상황이 낯설다. 보통 개봉하면 무대인사를 하면서 관객과 만나 소통하고 또 언론시사 후 간담회 등을 통해 영화에 대한 반응을 살피곤 했는데 말이지. 비대면으로 진행하니 확 다가오질 않더라.

‘언브레이커블’ 남편이 등장하는 독특한 스토리이다. 장항준 감독이 쓴 원안을 각색한 거로 알고 있다.
10년 정도 전에 쓰여진 시나리오라 요즘 트렌드로 보면 올드한 느낌이 있어 현시대 흐름에 맞춰 보완했다. 시나리오라는 게 타이밍이 중요하다. 타이밍을 놓치면 아무래도 겉도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어 그 점에 특히 신경 썼다. 데뷔부터 독특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일부러 독특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요즘 다양성에 대한 갈증이 더욱 높아졌다고 느꼈고 그에 부응하고 싶었다.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구체적으로 달라진 부분을 짚는다면.
원래는 끊임없이 바람피는 남편이 등장하는 치정극에 가까웠고, ‘언브레이커블’이라는 캐릭터도 몇천만분의 일 확률로 세상 어딘가에 태어나는 존재였다. 그런데 이유 없이 바람만 핀다면 요즘엔 받아들이기 어려운 설정이라 어떤 목적성을 부여했다. 중반부쯤 집안 내에서 벌어지는 소동은 원안에서 아주 재미있는 지점이었기에 그 부분은 최대한 살리려 했다. 재미 포인트가 확실한 시나리오라 장점을 살리되 장르를 다변화해 요즘 트렌드와 어울리려 했다.

영화는 언브레이커블의 리더인 ‘만길’(김성호)의 정체를 알게 된 아내 ‘소희’(이정현)가 친구들(서영희, 이미도)과 힘을 합쳐 그를 제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린다. 외계에서 지구를 탐색하러 온 언브레이커블은 강인한 체력과 멋진 외모의 소유자들인데… 현실에 존재하는 멋진 남자들을 은유한 것은 아닐지 혼자 상상해봤다. 너무 나간 해석인가. (웃음)
음…거기까지는.(웃음) 남녀의 성 대립을 의도한 것은 아니다. <시실리 2km>도 그렇고 순진하고 선한 인간이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잔인하고 잔혹해질 수 있다. 이번 세 여성도 마찬가지다. 메인 빌런인 ‘만길’보다 그녀들이 더 무자비한 구석이 있거든. 사실 주제나 메시지를 생각하기보다 본능적으로 만드는 편인데 이후 관객에 의해 의미가 부여되며 영화가 다양한 결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예전에 ‘별생각 없이 필과 느낌으로 만든다’고 한 왕가위 감독의 인터뷰를 보며 그 솔직함에 놀란 적이 있다. 나도 그런 심정이다. (웃음)

너무 나간 해석이었군!(웃음) 그간 잔혹 코미디 속 여성 캐릭터가 빛났는데, 이번에는 한층 강화된 인상이다. 전면에 여성을 내세워 그들을 주축으로 흘러간다.
허세부리고 과시하는 일부 남성들에 대한 반발심으로 현명하고 강한 여성 캐릭터를 등장시켰던 것 같다. 예전부터 마초 혹은 가부장적인 남성에 대해 반발심이 굉장히 큰 편이었다. 흔히 일터에서 ‘여자니까’ 못 한다는 시선이나 수군거림을 들으면 솔직히 꼴불견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현장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정말 끈기 있게 일하는 여자 스태프를 많이 접했기 때문이다. 가정 일도 마찬가지다. 바쁜데도 집안일을 열심히 하신 아버지를 어렸을 때부터 지켜봐서인지 남녀 평등이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무의식 중에 자리 잡고 있다.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이번 영화 관련 기억나는 반응이 있다면. 또 촬영 현장이 아주 화기애애했다고 하던데…
누군가 포스트모더니즘 같다고 표현했는데 그 단어가 참 새롭게 다가왔다. 예전에는 자주 언급되곤 했지만, 요즘엔 좀 생경한 느낌 아닌가. (나만 그런가..) 촬영장이 마치 공사판같이 치열하고 정신없는 현장이라 신 마다 특정 의미를 부여하며 찍지는 않는다. 물론 촬영장에 들어가기까지는 철저한 조사는 당연하다. 즉 외계인이라는 개념 자체를 설득시키기 위해 치열하게 조사하지만, 촬영에 돌입하면 머리를 싹 비우고 현장에 집중하는데 그게 그렇게 재미있다. 한마디로 현장은 전쟁터이자 놀이터다. 이번엔 양동근 배우가 연기할 때 너무 웃겨서 나도 모르게 크게 소리 내 웃을 정도였다. 소리가 들어가면 안 되는데 말이지. 웃지 않으려고 눈을 가린 적도 있다. 그때는 옆에 있던 스크립터가 모니터를 대신 봐주곤 했었다. 파출소 신 같은 경우 양동근 배우의 등장에 상대 배우들이 웃음을 꾹 참았다가 끝내자마자 동시에 빵 터졌을 정도였다.

언브레이커블의 리더인 ‘길만’을 구축하며 참고한 캐릭터가 있다면.
추격할 때 감정 없이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은 <터미네이터 2>(1991)의 액체 금속형 로봇 T-1000을 참고했다. 평소에는 장난스러운 표정인데 돌변하는 거지. 추격 신 찍으며 놀랐던 게 김성호 배우의 뛰어난 운동신경과 능력이었다. 대역 없이 모두 소화해 냈고 산길 언덕을 오르내리는 데 그 체력이 대단하더라. 나보고 한번 뛰어보라고 해서 뛰어봤는데 정말 죽는 줄!

‘길만’의 언브레이커블적인 면모만큼 시선을 끈 지점은, 개인적으로 ‘소희’를 비롯한 세 여성의 표정 연기였다. 어찌나 능청스럽던지.(웃음) 혹시 표정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주문한 건가.
배우들이 알아서 연기한 것이다. 내가 배우에게 주문한 것은 딱 하나였다. 코미디로 접근하지 말고 상황에 충실하라는 거였다. 일부러 웃기는 게 아닌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오는 웃음을 유발하고 싶었거든. 배우 모두 너무 열심히 연구해 와 내가 차용한 부분도 꽤 있었다.

<꽃잎>(1996)때부터 이정현 배우를 매우 좋아했고 같이 작업하고 싶었다. 사실 <점쟁이들>을 하기 전에 본 적이 있어 안면이 있는 상태였다. 이번에 시나리오를 전달했더니 바로 하고 싶다고 수락해줘서 아주 기뻤다. 아무래도 배우 입장에선 단독 주연 혹은 있어 보이는 역할을 선호하기 마련인데, 이번엔 여러 배우가 흔쾌히 합류해줬다. 덕분에 한층 풍성해지지 않았나 싶다.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감독의 역량에 대한 믿음 덕분일 테다. 참여한 배우들이 한결같이 감독 ‘신정원’에 깊은 신뢰를 표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면 영화 속 알 듯 말 듯 단서가 많이 심어져 있다. 후속편을 염두에 둔 것인가.
다들 어느 정도 생각하며 만들었었다. 다만 편집에서 날아간 부분이 있어 조금 불친절하게 느껴질 지점이 있긴 하다. 가령 고문실의 두 소년의 정체에 대해 우리끼리도 의견이 분분했다. 김성호 배우는 꼬마 언브레이커블로 해석했고, 또 다른 배우는 비밀요원들의 활동을 목격했기에 잡아 둔 거로 생각했다. 또 독약을 먹은 ‘소희’는 왜 죽지 않았을까. 쿠키영상에서 그녀는 왜 주유소에 간 것일까 등등 상상의 여지를 열어 놓았다. 특정하거나 정답을 내기보다 흘러가는 대로 두려 했다.

‘양선’(이미도)의 보랏빛 트렌치코트를 비롯해 의상과 전체적인 색감에 신경을 많이 썼더라.
‘양선’이 보라색을 즐겨 입는 이유는 자아 표출 욕구가 강하기 때문인데 자아의식이 약하기에 오히려 위장하는 마음이 크다. ‘닥터 장’(양동근)의 경우는 만화 속 주인공처럼 촌스럽게 갈지 아니면 현실적인 인물로 갈지 열띤 논쟁 끝에 모습은 웃기지만 연기 톤은 진지하게 가는 거로 했다.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레트로 정서를 부각했고, 앵글도 세련되고 멋지게 찍기보다 수평과 수직 그리고 풀샷을 최대한 활용해 마치 연극무대 같은 인상을 주고자 했다. 한마디로 의도된 촌스러움이다. 어쩌다 보니 촌스럽게 된 것이 아니라 의상, 무대, 공간, 앵글 그리고 조명까지 모두 옛날 방화(한국영화) 보는 느낌을 유도한 것이다.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나만의 한 컷, 즉 가장 마음에 드는 신을 꼽는다면. 코멘트도 부탁한다.
보통 엔딩을 가장 좋아한다. 대체로 마지막에 촬영하기에 그 마지막 컷을 찍을 때의 묘한 기분이 있다. 준비부터 마지막 촬영까지 3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면서 만감이 교차하고 괜스레 짠해진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엔딩인 브로콜리(양동근)와 ‘양선’(이미도)이 재회하는 장면이다. 그들이 서로를 향해 춤(?)추며 달려오는 신, 좋지 않은가!

다소 뜬금없고 좀 원론적인 질문을 하나 하자면, 당신에게 영화는 뭘까.
음, 개인적으로 영화감독이 되게 멋있게 느껴지고, 멋진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일적으로만 접근하자면 하나도 안 멋있고 고생스럽고 짜증도 나지만, 그런데도 영화를 하고 싶고 감독을 하고 싶다.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었다. 어렵고 그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멋있다’라고 느끼는 그 순간을 원동력 삼아 앞으로 나가게 된다. 할수록 멋있는 것 같다. 현장의 의자에 앉아 있을 때 가끔 실감이 안 날 때도 있다니까!

준비 중인 작품이 있다면 소개를 부탁한다.
원래는 소설 ‘대학로 좀비 습격사건’을 <차우> 다음 영화로 하려 했었다. 소설 판권을 구입한 것도 벌써 5년전인데 지금까지 왔다. 제작 기간과 비용이 많이 들 것 같아 이번 영화를 먼저 했는데 최근 좀비물이 많이 나온 상황이라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마지막 질문이다! 평소 소소하지만 행복한 일은.
평소 사람들을 관찰하는 걸 좋아한다. 집에서 좀 내려가면 아주 큰 시장이 있어 그곳에 가 사람들 사이를 거닐며 구경하곤 한다. 그러면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는다. 최근엔 한 선배 배우를 만났는데, 아는 척은 하지 않았다! 하하


2020년 10월 7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사진제공. 홍보사 로스크

0 )
1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