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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와 배우 활용에 뛰어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홍원찬 감독
2020년 8월 20일 목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지난 17일 개봉 13일 차에 누적 관객수 3,543,249명을 기록하며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코로나 국면에 침체된 극장가와 위축된 영화계에 단비같이 반가운 소식이다. 베테랑 제작진과 스태프, 기라성 같은 배우가 참여한 순제작비 138억 원의 거대 프로젝트를 진두지휘 한 이는 신예 홍원찬 감독이다. 황정민-이정재 브라더스의 재회로 일찌감치 화제가 됐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액션과 분위기로 압도하는 핏빛 누아르다. 기시감과 클리셰라는 일각의 시선도 분명 존재하지만, 홍 감독은 캐릭터와 배우 두 가지 무기를 앞세워 기존과 차별성을 확보했다. 그간 홍 감독은 <추격자>(2008), <황해>(2010), <내가 살인범이다>(2012)의 각색과 데뷔작 <오피스>(2015)까지 장르성 강한 면모를 보여왔다. 이번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로 대중성 확보에 성공한 그가 앞으로 변주할 장르 영화의 색채는 어떨지, 기대된다.


(*해당 인터뷰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에 대한 반응을 좀 살펴보고 있는지.
기존의 한국영화와 다르기를 고민했고 그렇게 만들고자 했다. 서사와 설명을 최대한 배제하고, 인물의 전사 등을 최대한 압축해 직선적으로 달려가면서 액션을 전달하려 했다. 이런 시도를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 감사하다. 하지만 기존의 내러티브 방식에 비해 생략과 압축이 많아 호불호가 있을 거로 본다. 하나하나 체크해 보는 중이다.

<추격자>(2008), <황해>(2010), <내가 살인범이다>(2012)의 각색을 거쳐 장편 데뷔작 <오피스>(2015)로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스크리닝에 초청받았다. 모두 장르성이 강한 영화인데, 이번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연출 계기는.
한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가로 있을 당시 대표님이 외국에서 아이를 찾는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한번 써보라고 제안하셨었다. 그때는 연출을 논할 계재가 아니었는데 <오피스> 이후 직접 맡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이후 각색, 캐스팅 등이 빠르게 진행됐다.

<설국열차>(2013) <곡성>(2016) <기생충>(2019) 등의 홍경표 촬영감독, <내부자들>(2015) <택시운전사>(2017) <남산의 부장들>(2019) 등의 조화성 미술감독, <밀정>(2016) <마녀>(2018) <엑시트>(2019) 등의 모그 음악감독 등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제작진들이 대거 참여했다. 신인 감독에겐 파격적인 기회인데 그만큼 (당신이) 믿음직했나 보다. (웃음) 제작 규모와 손익분기점은 어느 정도인가.
내 입장에서 이런 사이즈의 영화를 기획한다는 것은 (알다시피)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제작진이 크게 결단해 믿고 맡겨 주셨다. 신인 감독이라 충분히 서포트 받을 수 있도록 더욱 베테랑 배우와 노하우를 축적한 스태프를 꾸려 준 것도 있다. 제작 규모는 순제(순제작비)가 138억 원이고 손익분기점은 350만 명이다.

<신세계>(2012) 이후 황정민 배우와 이정재 배우가 누아르로 다시 조우한다는 점에서 캐스팅부터 기대가 높았다.
알다시피 우리 영화가 캐스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실 정민, 정재 두 선배는 내가 원한다고 모셔올 수준이 아니었다. 정민 선배에게 책(시나리오)을 전하면서도 수락할지 의문이 있었는데 바로 응낙해주셨다. 정재 선배도 마찬가지였다. ‘레이’(이정재)역이 워낙 악역인 데다 센 역할이라 걱정했는데 의외로 바로 오케이 해 주셨다. 히든카드라 할 수 있는 박정민 배우는 내가 먼저 건의했다. 예전에 같이 작업한 적이 있어 지켜봤는데 캐릭터 연구를 열심히 하는 배우이고, 다양한 역할을 하고싶어 하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여 배우와 장르면에서 <신세계>와의 비교를 피해갈 수는 없을 것 같다.
사실 캐스팅 단계에서는 별로 의식하지 못했었다. 오히려 캐스팅이 확정된 후 많은 분이 여전히 <신세계>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만큼 팬들이 많다는 거지. 촬영 들어가면서는 찍느라 바빠 잊고 있다가 제작보고를 하면서 다시 의식하기 시작했는데, 피해갈 수 없겠다 싶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우린 우리만의 매력이 있으니까.(웃음)

한국, 일본, 태국 세 개국을 넘나들지만, 주 무대는 태국이다. 동남아권 국가 중 태국을 선택한 이유는.
시나리오를 구상하는 단계에서 자료를 찾다가 방콕에서 자행되는 아동 대상 범죄 르포를 접했었다. 또 방콕이 지닌 특유의 이미지가 매력 있게 다가왔다. 화려함과 낙후함, 다양한 인종이 모이는 곳, 관광과 범죄 등이 상충하면서 다채로운 색을 지닌 도시라 영화의 분위기와도 잘 맞았다. 해당 국가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가 될 수 있어 조심스러웠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 이런 범죄가 존재하고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영화 제목에서 ‘악’이라는 건 특정 인물을 지칭하기보다 세상의 비정함과 어두움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기대 혹은 예상보다 수위가 높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잔인함을 전시하지 않는 절제력에 호응이 높지만, 반면 15세 관람가에 맞추려 깊이 들어가지 않은 점이 아쉽다는 시선도 있다.
처음부터 청불(청소년관람불가)로 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서스펜스가 있는 드라마를 좋아하고, 그를 구축하는 과정 중에 액션과 스릴을 드러내고자 했다. 잔인함을 노골적으로 보이기보다 오히려 보이지 않으면서 그런 분위기를 전달하고 싶었다. 가끔 촬영한 후 편집 과정에서 들어낸 게 아니냐는 질문을 받는데 아예 촬영 자체를 안 했다. 무드와 액션만으로도 냉소적인 세계관에 맞는 하드보일드한 정서를 느끼시는 분도 많이 있을 것이다.

언급한 무드와 액션에 대해 좀 더 설명한다면.
기존에 쉽게 접하지 않았던 액션을 해보자고 촬영감독과 이미 합의하고 들어갔다. 차별적인 액션을 추구하되 드라마와 인물의 감정도 고려해 영화의 전체적인 톤과 어우러지도록 했다. 액션이 혼자만 도드라지거나 단지 전시로 그치지 않도록 방향을 잡았다. 어디까지나 우리 영화는 현실을 베이스로 한 드라마이고, 그게 전체적인 톤이다. 액션도 당연히 그 톤에 맞췄다. 화려하고 현란한 액션으로 시선을 잡아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서사와 인물의 톤과 맞는 게 더 중요했다. 이를 위해 정확하게 동선이 보이는 액션을 짰다. 누가 때리고 누가 맞는지 확실히 보이면서 치고받는 인물의 감정이 느껴지도록 했다. 특히 ‘인남’(황정민)과 ‘레이’가 부딪칠 때 그 상황의 절박함을 보이려 했다.

액션 시퀀스에서 종종 슬로우모션을 삽입했는데 개인적으로 영화의 하드보일드한 감성의 맥을 끊는 인상이었다. 특히 후반부에서 ‘인남’이 차 안으로 점프하는 순간이 그렇다. 의도한 바는.
지적한 차 안으로의 점핑 장면은 고민을 많이 한 장면 중 하나다. 무술감독님이 아이디어를 냈는데 처음엔 톤이 맞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시나리오 상에는 정지된 상태에서 차 안에 있는 레이를 습격하는 거였다. 그런데 당시 ‘인남’의 감정이라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차를 향해 돌진이라도 하겠더라. 또 그렇게 동적으로 표현해야 이야기의 스피드를 끊지 않으면서 인남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겠다 싶었다. 결론은 만족이다. (웃음) 슬로우로 보여준 것은 후반부 특정 장면을 거부감이 없이 받아들이도록 하는 일종의 장치이다. 가령 인남이 슈트케이스를 껴앉아 보호한다든지 하는 장면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앞에서부터 몇몇 장면을 느리게 보여줘 익숙해지도록 유도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영화가 변주한 방식과 스타일의 결정체로 순도 높은 악인 ‘레이’를 꼽았다.
영화는 ‘인남’(황정민)이 극을 끌고 가고 관객도 그의 시점을 따라가게 된다. 아이를 구한다는 목적을 지닌 남자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서사는 이미 원형이 있는 이야기라 차별화가 필요했고, 그래서 부여한 게 그를 쫓는 추격자 ‘레이’다. 서브플롯을 넘어 두 인물의 대결이 메인플롯으로 기능할 수 있겠더라. 물론 두 선배의 연기가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시도였다. 또 노타이에 심플한 슈트를 입은 인남과 귀걸이, 문신, 호피무늬 등 화려한 의상을 입은 레이, 외형적으로도 대비시켜 임팩트를 주려 했다. 레이의 비주얼적인 면에 대해선 정재 선배가 아이디어를 많이 냈다.

그렇잖아도 이정재 배우가 최초로 개인 스타일리스트를 참여시켰다고 들었다. 초반 장례식장 시퀀스의 첫 등장부터 시선을 확 잡아끈다.
그는 허공에 떠 있는 캐릭터라 극 속에 안착시키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일상적인 공간이 아닌 장례식장에 처음 등장시켰다. 검은 복장을 한 무리들 가운데 혼자 흰색 그것도 롱코트를 입고 시선을 끌어 강한 인상을 주려 했다. 정재 선배도 내 의도를 캐치하셨다. 캐릭터를 그린 것은 나지만, 비주얼라이징한 것은 선배다. 프리 단계부터 하나씩 보여주며 캐릭터를 잡아 나갔다. 당시 선배가 몰두하는 순간 굉장히 날카로운 표정을 보이곤 했는데 딱 내가 그렸던 레이의 표정이었다.

영화 보며 배우들이 정말 고생했겠다 싶었다. 가뜩이나 더운 태국에서 격렬한 액션을 소화했으니 말이다. 30년 가까운 연기 경력을 자랑하는 황정민, 이정재 배우인데, 정말 뭐 하나 허투루 하는 게 없어 보였다.
현장에서 나도 깜짝깜짝 놀라곤 했었다. 철저한 사전 준비와 연기 열정을 보면서 몇십 년 동안 최고 위치에 있는 이유를 저절로 알겠더라. 정재 선배의 경우는 이번에 많이 감량했는데 촬영장에 올 때 식사도 물도 안 마시고 왔었다고 나중에 들었다. 날카롭고 단단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인 거지. 촬영 중간에도 제대로 식사를 안 하는데 옆에서 지켜보면서 좀 살살하시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힘들다는 내색을 전혀 안 하셨다. 다 끝나고 나니 좀 힘들었다고 하시더라. 덕분에 나 역시 더욱 몰입해 찍을 수 있었다.

‘유이’(박정민)의 등장은 ‘레이’와는 다른 의미로 시각적인 충격(?)을 선사한다.
‘유이’는 남성이지만 여성의 특징을 지닌, 여성성을 추구한다. 타 콘텐츠에서 너무 과하게 표현된다고 생각해, 취재해보니 그렇게 표나게 드러내지 않더라, 우린 여성 복장을 하되 최대한 자연스럽게 가자고 했다. 쇼 공연 때는 화려하게 착장하지만, 평소에는 무더운 날씨에 맞춰 숏팬츠, 나시 셔츠 등 심플한 의상을 선택했다.

게다가 그가 등장할 때마다 웃음이 터진다.
박정민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 중 하나가 관객들이 그를 보면 좋아한다는 거였다. 이번에도 인남과 레이 두 센 캐릭터가 계속 충돌해서 숨이 막힌 상황이라 지칠 수 있는데, 유이가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급 전환된다. 시의적절하게 숨통을 트여주는 거지. 평소 박정민 하면 멋있고 잘생긴 남성성이 있는 배운데, 즉 꽃미남 혹은 미소년 이미지가 아닌데 여장하고 등장하니 허를 찌른다고 할까. 캐릭터를 연기하는 톤과 그가 갖고 있는 본래의 남성성이 충돌하길 바랐고, 기대 이상으로 감칠맛 나게 연기해줬다.

나만의 한 컷을 꼽는다면. 코멘트도 부탁한다.
레이가 방콕에 도착해 펼치는 첫 액션 시퀀스, 일면 ‘셔터 신’이다. 사실 일본과 한국에서는 레이가 분위기만 잡았지 직접적으로 액션을 보이진 않았다. 눌려 있던 뭔가 폭발하는, 그가 얼마나 냉혈한인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 시퀀스 촬영 후 이 정도면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또 하나는 인남이 ‘한종수’(오대환)를 차 안에서 처리하는 신이다. 촬영 당시 빛과 앵글 등 고심을 많이 했는데 정말 만족스럽게 나왔다. 찾고 있던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인남의 표정과 빛을 받아 늑대처럼 빛나는 안광은 정말 압권이다. 그때 인남이 사용한 흉기를 잘 보면 원예용 가위이다. 영화 속에서 설명하진 않았지만 인남이 아이의 행방을 찾아다니는 과정에 정원이 있는 집을 찾아갔고, 그때 인부들이 사용하던 가위를 집어 온 거다.

규모가 큰 영화를 연출한 소감(소회)은. 또 결과물에 아쉬운 점은 없나.
아직 소회를 남길 만한 여력이 없다. 관객의 반응을 살피는 게 중요한 게 내 의도와 다르게 혹은 비슷하게 보는 지점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그런 것들이 좀 정리가 돼야 할 것 같다. 다만 지금은 이 큰 규모, 그것도 해외로케이션 중심의 영화를 무사히 마쳤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경험 많은 제작자와 최고의 배우와 스태프들과 함께했다는 게 솔직히 지금도 신기하다. 신인과 다름없는 내가 끌고 가면서 부담도 되고 힘들었지만, 부족함을 받아들여 준 분들에게 한없이 고맙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이후의 문제다.

개인적인 질문이다. 왜 영화를 하게 됐나. 또 차기작은.
어릴 때 시골에 살아 할 게 별로 없다 보니 영화를 많이 봤다. 그러면서 영화가 자연스럽게 내 안에 들어온 것 같다. 이후 전공하고, 졸업하고, 자연스럽게? 지금이 됐다. 차기작은 지금 구상 중인 게 있다. 사극 액션이 될 것 같다.

마지막 질문! 소소하게 행복한 일은.
다음 작품 준비로 자료 찾으면서 그동안 못 본 영화나 책을 찾아보고 있다. 작업실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2020년 8월 20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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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_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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