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가족, 기억 그리고 도약의 이야기 <니나 내나> 이동은 감독
2019년 11월 11일 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삼남매는 오래전 가족을 떠난 엄마가 보낸 편지 한 통을 받는다. ‘보고 싶다’는 달랑 한 줄 뿐인 편지를 앞에 놓고 망설임 끝에 결국 진주에서 파주까지 엄마를 만나러 가기로 한다. 짧은 여정을 거치며 삼남매는 엄마가 떠난 후 멍에처럼 안고 살던 상처를 마주하고, 고통에 외면했던 떠나간 형제를 기억하며 각자가 지녔던 마음의 짐을 하나씩 내려놓는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내일로 도약하는 이 가족, 녹록지 않은 현실을 잘 헤쳐나갈 거라는 굳건한 믿음을 전한다. <환절기>, <당신의 부탁>에 이어 세 번째 가족 이야기 <니나 내나>로 관객을 찾은 이동은 감독을 만나 걱정 붙들어 매게 하는 가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니나 내나>는 전작 <환절기>(2018), <당신의 부탁>(2017)에 이어 역시 가족을 이야기한다. ‘’가족’에 관심을 기울인 이유는.
가족 혹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 일로 만나는 사람 간에 생기는 스트레스보다 가족에게 받은 상처가 더 깊고 힘든 것 같아 들여다보고 자꾸 이야기하게 된다. 보통 상업 영화는 기획적으로 만들어지는데 나는 그런 기획 과정을 거치지 않고 예전에 썼던 시나리오로 지원받아 만들었다. 덕분에 관심 있는 주제를 계속 이야기할 수 있었다.

애도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고 밝힌 바 있다.
세월호 사건을 목도한 후 썼다. 개인적으로 국민적으로 비통한 사건인데 제대로 규명이 안 되지 않았었나. 애도와 추모의 감정을 넘어 무언가 숙제 같은 느낌이었지만, 데뷔 전인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글로 쓰는 것밖에 없었다. 마음속 부채처럼 남아 있던 그해 여름 심리 외상 센터에서 근무하는 분을 만났다. 그가 말하길 유가족들에게 자신이 특별히 위로를 건네기보다 일상의 이야기를 주로 한다고 하더라. 또 오늘은 공과금 내기, 내일은 휴지 사기 등 매일 새로운 일을 하라고 조언한다고 한다. 이전의 상담 기법이 과거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객관화해 직시했다면 요즘은 사건은 이미 발생했고 상처가 이미 생겼기에 그 위에 새로운 기억을 만들고 덧입힌다고 한다. 작은 미션을 줘 현재에 집중하게 해, 마치 흉터에 새살 돋게 하는 거지. 그들이 새로운 기억을 쌓아가는 데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었다.

아들과 엄마 관계를 주축으로 했던 전작보다 이번엔 좀 더 여러 인물이 등장해 다양한 관계를 풀어 놓는다. 가족의 확장이라 봐도 좋을까.
확장보다 세대 간의 이야기로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서로 다른 가치관을 지닌 세대 간에 느끼는 감정 즉 이상해 보이고 납득하기 힘들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인정하고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고자 했다.
 <니나 내나> 스틸컷
<니나 내나> 스틸컷

<니나 내내>를 가족이자 기억의 이야기 나아가 도약이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도약’이 의미하는 바는.
본인이 원했든 하지 않았든 집안의 엄마 역할을 맡게 된 첫째 ‘미정’(장혜진)은 동생이 사고로 죽은 후 깊은 자책감을 느낀다. 가족의 안위를 위해 신내림을 자청할 정도로 그녀에게 가족은 늘 안쓰럽고 챙겨야 하는 존재다. 짧은 여정을 거친 후 가족을 좀 떨어져 바라보고 그녀를 누르던 가족의 무게가 가벼워진 만큼 중력도 가벼워졌을 것 같았다. 그래서 거창하게 도약이라는 표현을 써봤다. (웃음) 마지막 사진 찍을 때 ‘미정’이 폴짝 뛰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그런 의미였군! (웃음)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일 것 같다. 당신이 생각하는 ‘가족’이란.
음, 잘 알면서도 모르겠는 관계? 사실 지금도 여전히 고민 중이다. <니나 내나> 만 놓고 보자면 출발지는 같지만, 목적지는 다른 관계라고 생각한다. 영화 GV를 진행할 때 한 관객이 이런 말을 하더라. 극 중 칼국수 먹는 장면이 있는데 네 사람이 각기 젓가락질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거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촬영하면서 내심 만족했던 부분이었다. 같은 구성원이라도 개별성을 지닌 것 말이다. 사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고유성이 무시되는 경우가 많고 그게 상처로 이어진다고 본다.

칼국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영화는 삼남매(장혜진, 태인호, 이가섭)가 엄마를 찾아 진주에서 파주까지 가는 여정을 그린다. 엄마가 하는 음식점이 칼국수 집인데, ‘칼국수’를 선택한 이유가 문득 궁금하더라.
가족도 또 그들의 여정도 소박한 모습이길 바랐다. 비싼 한정식이나 갈빗집 혹은 양식집은 안 어울리겠더라. 정성스러운 한 끼 혹은 한그릇 음식점을 생각한 결과다. 또 선입견일 수 있지만, 국숫집이나 칼국숫집 사장님들이 선했던 기억이 있고 메뉴도 단출한 것이 어딘가 정갈함이 느껴진다.

‘진주’와 ‘파주’인 이유가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먼 거리에 있는 두 도시를 선택한 것 같은데.
가족이 한반도를 관통했으면 싶어 끝에서 끝을 선택했다. 극 중 셋째가 따로 부산에 살지만, 가족의 근거지는 대도시가 아닌 소도시로 하려 했다. 진주는 경상남도의 고도로 사투리도 특색 있고, 지역적 자부심이 강하고 전통이 보존된 곳이다. 젊은 시절 완고했던 아버지와 얼추 닮기도 했다. 저예산 영화지만 진주, 파주, 중간중간 휴게소 등 로케이션이 많았던 작업이었다. (웃음)

움직이면 다 돈인데! (웃음) 총제작비와 촬영 기간은.
영화진흥위원회, 경기영상위원회, 성남영상위원회로부터 지원받아 총제작비 4억 원에 28회차로 완성했다. 빡빡한 일정에 힘들었지만, 다행히 나만 잘하면 되는 환경이었다. 중심을 잘 지키려고 노력했다.
 <니나 내나> 스틸컷
<니나 내나> 스틸컷

신내림을 자처하는 첫째, 성소수자인 셋째 그중 가장 평범해 보이는 둘째까지 삼남매에 각기 사연을 부여했다. 참고한 것 혹은 의도는.
첫째 ‘미정’의 경우 주변에 비슷한 분을 참고했다. 원래는 무용하고 싶었는데 집안 사정 상 못하고 중년 이후 위안을 얻고자 점집을 찾아가는 분이었다. 본인은 남다른 끼기 있다고 생각해 신내림을 받겠다고 하지만 당연히 못 받았다. 엄마에게 애증을 지닌 미정은 신(神)엄마를 만나 내림 받겠다고 조르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소연하면서 풀고는 한다. 하지만 동생이 성소수자라는 것과 엄마의 생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등등 촉이 너무 없는 자신을 깨닫는다. 성소수자인 셋째의 경우 이성애자가 있는 것처럼 동성애자 역시 당연한 존재라고 생각해 가족 구성원 중 자연스럽게 드러냈다. 전작에서 성소수자가 등장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미정’역의 장혜진 배우가 ‘절친의 동생’이라고 당신을 소개하던데, 실제는 어떤 동생인가. 혹시 셋째 ‘재윤’(이가섭) 같은 살짝 까칠한 면도? (웃음)
그런 모습도.(웃음) 누나(장혜진)의 소식을 꾸준히 듣기는 했지만 자주 보거나 연락하는 편은 아니었다. <기생충> 캐스팅 소식도 기사 보고 알았으니 말이다. 축하한다고 연락해 시나리오 보내고 싶다고 하니 선뜻 오케이 해줬다.

개인적인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명필름랩 1기 출신으로 전작과 이번 모두 명필름과 함께했다. 세 편 모두 영화에 앞서 그래픽노블로 출간한 작가이기도 하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 20대 후반에 본격적으로 영화를 공부하고 싶어 영상원에 지원했지만 떨어졌다. 이후 잠시 다른 일을 하다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투자가 잘 될 만한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기에 그래픽노블로 먼저 출간했다.

우문이지만 명필름과 방향성이 맞는지.
가끔 명필름과 계약된 것 있냐는 질문을 듣는데 그렇지는 않다.(웃음) 개인적으로 명필름은 소수가 아닌 대중적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영화를 지향하는 것이 아닌 반 발짝 정도 사회·정치적으로 앞서 나갔다고 할까. <당신의 부탁>의 경우 저예산 상업영화로 방향을 잡고 10억 정도 규모로 제작하려 했으나 투자가 안됐었다. 이런 경우 보통 제작사는 아예 백지화하거나 무기한 연장하는데 명필름은 저예산 드라마로 가능하냐고 묻고 예산을 줄여서라도 끝까지 해줬다.

지금까지 모두 직접 쓴 이야기를 가지고 작업해왔다. 연출 시 주안점은.
아직 처음 시작하는 입장이라 특정 분위기나 결을 정립하고 맞추지는 않는다. 글을 쓸 때는 내가 쓰고 싶고 마음이 가는 대로 쓴다면 연출할 때는 작가로서 나와 거리를 어느 정도 두고 열어 두는 편이다. 각 파트의 제안을 많이 들으려 한다. 특히 배우만큼 캐릭터 이해가 높은 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환절기>의 배종옥 선배님, <당신의 부탁>에서 임수정 선배한테 설득당한 경우가 많았다. 이번엔 배우들이 극 중 캐릭터가 본인들과 실제 비슷하다고 하더라. 덕분에 애드립이나 뉘앙스를 잘 살린 것 같다.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장르가 있다면. 또 자신의 글이 아닌 작품도 연출 의향이 있는지.
물론이다.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감독은 콘덕터 즉 지휘자로 감정과 드라마를 이끄는 데 주력하면 된다. 당연히 내가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면 좋겠지만, 각 파트의 전문가 제안을 받고 연출에만 집중하고 싶다. 최근 할리우드는 시스템에 대한 자신감 때문인지 독립영화 감독을 과감하게 캐스팅하는 모습이다. 국내의 경우 예산 중심으로 급(?)이 나뉘는데 요즘 <극한직업> 이병헌 감독, <엑시트> 이상근 감독이 흥행에 크게 성공해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해 본다.

최근 관심을 기울이는 주제가 있다면.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싶어 하는 사람 이야기에 관심 있다. 죽는다는 것은 누군가 그 뒤를 정리해줘야 하는 부수적인 과정이 따르기 마련인데 그런 것에 전혀 부담 없이 사라졌으면 하는 거지. 그런 이야기를 한 번 써보려고 한다.

마지막 질문! 최근 소소한 행복은.
살이 너무 쪄 고민인 요즘이다. 전날 많이 먹었는데 아침에 체중 변화가 적으면 정말 기쁘더라!


2019년 11월 11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사진제공. 명필름

0 )
1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